문학의 고장에 살고 있으면서 문학을 제대로 느끼지 못함은 옥구슬을 두고 옥소리를 듣지 못함과 다름이 없다고 본다 “배꽃가지 반쯤가리고 달이 가네. 경주군 내동면 혹은 외동면. 불국사 터를 잡은 그 언저리로 배꽃가지 반쯤가리고 달이 가네” 가을이 성큼 다가온 시월의 휴일 한 문학기행에 참가한 일행은 경주시 보문단지 한가운데 자리 잡은 ‘박목월 시비’ 앞에 모여 앉아 목월 선생의 시를 노래한 신작 가곡인 ‘달’을 함께 불렀다. 다소 쑥스러웠지만 이른 아침 야외에서 생소한 사람들 틈에서 라이브로 함께 노래 부르는 느낌이 약간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그들은 우리나라 문학계의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 경주 출신 소설가 김동리 선생과 시인 박목월 선생의 작품배경을 찾아가는 문학기행에 참가한 일행으로 이른 아침 황성공원에서 출발해 첫 탐방지인 이곳 ‘박목월 시비’를 찾은 것이다. 일행은 일정에 따라 동리 선생의 장편 역사소설 ‘대왕암’의 작품 소재지인 양북면 대본리 문무대왕암으로 향했다. 동해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다 바람이 왠지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어 동리 선생의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는 ‘무녀도’의 등장인물인 ‘욱이’ 아버지의 활동 무대였던 양북 어일 장터를 스쳐 지나갔다. 몇대로 나눠 탄 버스 안에서는 경주의 기라성 같은 원로 문인 세분이 탑승 하셔서 동리·목월 선생님의 문학 세계에서부터 과거 개개인의 발자취까지 거침없이 토해 내시는 입담이 또 다른 재미를 더했다. 문학과는 벽을 쌓고 있는 아내 덕분에 혼자 참여해야 하는 아침 길의 투정이 이쯤에서 오히려 행복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오후 일정으로 일행은 통일전 부근 도로변에 하차해 논둑길을 잠시 걸어 들어가 황토로 된 빨간 산줄기 ‘황토골’을 바라봤다. 둘로 굽이치는 용의 형상을 가진 ‘쌍룡설’과 치술령 줄기인 ‘솔개재’가 눈앞에 들어왔다. 이곳이 바로 1938년 동리 선생의 작품 ‘황토기’와 ‘찔레꽃’의 작품 배경이라고 했다. 논둑길 넘어 자란 벼가 탐스러워 보였다. 다음 목적지인 서면 모량리에 위치한 목월선생의 생가를 향했다. 목월선생의 생가는 현재 기와 한식집으로 개량해 다른 분이 살고 계시는데 마당에 서 목월선생의 과거 일대기를 한참 듣고 있는데 방안에서 밖을 빠꿈이 쳐다보시는 할머니 한분의 모습이 머릿속에 계속 남는다. 목월선생은 이곳에서 4학년까지 통학하다 건천으로 이사해 학교를 졸업하였는데 이러한 어린 시절 배경을 바탕으로 청노루, 윤사월, 나그네 등의 작품이 탄생하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됐다. 출생 후 약 100일간 고성에서 머물렀다는 사실 하나로 고성에서는 생가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다음 목적지로 성건동에 위치한 동리 선생의 생가를 찾았다. 원래 모습과 달리 지금은 현대 가옥으로 바뀌었고 세대주가 셋으로 쪼개져 입구가 양쪽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작은 골목길 안쪽에 숨은 듯 서 있는 입간판이 이곳이 한국 최고의 문인의 생가인지 의심케 했다. 아무튼 목월선생과 동리선생의 생가를 찾아보았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 이어 동리선생 초기 대표작으로 1936년 발표한 ‘무녀도’의 중심 배경인 ‘예기청소’로 향했다. 잘 조성된 서천둔치 운동공원에서 보는 예기청소는 오늘따라 더욱 사연이 있어 보였다. 예기청소는 명주실을 한없이 풀어 끝이 닿지 않는 신비스런 곳으로 이무기가 살고 있고 매년 아이를 끌고 가기 때문에 굿을 벌리고 밥을 던져 영혼을 달래야 한다는 등 각가지 설화가 전해지는 곳이라고 했다. 동리선생의 집과는 지척지간으로 어린 시절 이곳에서 행해지는 많은 굿을 보며 무녀도를 탄생시키게 되었을 것이라 추측됐다. 이어 일행은 마지막 행사지인 황성공원으로 돌아가 ‘박목월 노래비’ 앞에 모였다. 두부김치 몇 점과 막걸리 한사발로 목을 축인 일행은 모두 손뼉 치며 ‘얼룩송아지’를 열창하며 문학기행의 일정을 마쳤다. 짧지 않은 세월을 경주에서 보냈지만 한국 문단의 두 거인인 김동리, 박목월 선생이 경주 출신이라는 사실을 늦게야 알고는 많이 부끄러워했던 시간이 있었다. 이번 기행을 통해 두 분의 숨결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어 다소 위안이 됐다. 문학의 고장에 살고 있으면서 문학을 제대로 느끼지 못함은 옥구슬을 두고 옥소리를 듣지 못함과 다름이 없다고 본다. 사람들은 경주를 ‘역사문화의 도시’라고 표현하지만 경주는 문화재는 있어도 문화가 없는 도시라는 생각이 가끔 든다. 문화가 없는 경주를 어찌 상상할 수 있으랴? 월성원자력은 이 지역 출신의 동리ㆍ목월 선생의 문학정신을 계승하고 지역사회의 문화적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기업의 메세나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시상금과 소요경비 약 1억 3천만원을 지원해 ‘동리ㆍ목월 문학상’을 제정키로 했다. 대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쁨이 너무 앞서고 감동이 밀려온다. 12월 5일 제1회 수상자가 결정되어 온 국민의 관심 속에서 시상식을 이곳 경주에서 가질 예정이다. 경주시민 모두의 따뜻한 관심과 애정이 경주 문화 발전의 ‘밑돌’임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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