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동읍 제내리의 든든한 버팀목 황필호씨(54). 조용하고 넓은 곳을 찾아서 온 제내리는 도시생활에 적응했던 심신을 오랫동안 살아왔던 고향처럼 편안하게 받아 주었다.
일년에 쌀이 세가마니씩 들어갈 만큼 대가족을 이끌어 온 그녀는 5남5녀 중 넷째며느리이다. 부모 형제들에게 진심으로 대하고 도리를 다 하다 보니 인정받고 사는 것 같아 마음이 넉넉해 진다고 한다. 친정 부모님들이 일찍 돌아가셔서 시부모님을 친부모님처럼 부르면서 살았다는 그녀는 9년 전에 돌아가신 시아버지를 회상하며 눈빛이 촉촉히 젖는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시골에 살아 본 적이 없지만 낯설지가 않고 편안하다며 시골이 참 좋단다. 꽃들을 가꾸는 것도 좋고, 더구나 짐승을 좋아해서 꽃사슴을 키우는데 남편이 우리를 만들어 주어 여러 마리를 키운다고. 그것도 자신의 생각만 하는 것 같아 조만간 그들이 좋아하는 곳으로 보낼 예정이라고 한다.
부산에서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한 경험이 농협 주부대학에서 총무를 맡게 했다. 바쁜 가운데 열심히 사는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잦아졌다. 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인연을 맺은 한 가족이 엄마는 시설로 가고, 아이는 친척들에게 맡겨지기 전 5년 동안이나 반찬을 나누는 정을 베풀었다. 누구에게 보여지기 위한 나눔이 아니라 그녀의 따스한 마음 때문에 그곳으로 발이 옮겨 갔을 뿐이다. 자신보다 더 많이 마음을 나누는 이들이 많다며 겸손해 하는 그녀의 마음은 정말 매력적이다.
장애인종합복지관이 맺어 준 또 하나의 인연은 들것이 아니면 움직일 수 없는 ‘언니’에게 안부전화를 하는 것이다. 눈으로 본 적이 없으니 마음도 쉽게 다가가지 않아서 직접 찾아 갔는데 힘든 상황에도 자신의 할 일을 다 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용기와 힘을 얻었다고 한다.
누워서도 할 수 있게 작은 방에 구들을 뚫어 조리대를 만들고 직접 음식을 만들어 드신다고 한다. 진심으로 우러나 찾아오는 발걸음인 것을 알고 친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번은 아들이 군에 입대한다고 하자 맛있는거 사 주라며 돈을 주더라고.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분홍색을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 이불을 사 갔더니 행복해 하셨단다.
새마을부녀회에서 5년 동안 총무를 맡아 보면서 직장생활의 경험을 살려 일지를 모범적으로 기록해 경북에서 일등을 했고, 중앙에서도 표창을 받았다고 한다. 또 봉사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과 독거노인들에게 정기적으로 목욕 봉사도 하고 있다. 현재 최씨 집성촌인 제내리에서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믿음을 얻어 이장을 맡아 봉사를 하고 있다.
타고 난 손재주로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황필호씨. 그녀의 가장 큰 단점은 ‘예스’를 너무 잘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거절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는 그녀도 가끔은 휴식이 필요하다. 여가 시간을 이용해 배웠던 도자기가 지금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단다. 어느날 친구가 함께 노후생활을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생활도자기를 만들어 보자고 했다. 함께 그 길을 가자고 해 준 친구가 고맙고, 지천명도 지난 친구의 동의가 서로 고마웠다고.
배동에 가마를 만들고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는 그녀는 그곳에서 나오는 수익의 일부분도 이웃과 나누고 싶다고 말한다.
마음이 따뜻한 그녀가 만든 그릇에는 몽글몽글 사랑이 피어오를 것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