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국어 담당이신 권오현 선생(52)의 풍물사랑은 30년이 넘는다. 대학시절 고전문학을 좋아해 전통문화에 눈을 뜰 즈음 탈춤을 접하게 되면서 풍물과 인연이 이어졌다.
교사로서 첫 부임지인 안강여중에서 학생들과 공감할 수 있는 소통의 길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마당극을 한번 해보기로 했단다. 중학교 2학년들이라 양반전을 선택했는데 춤과 장단이 필요해 풍물을 가르치게 됐다고 한다.
그 후 권 선생의 명성이 일파만파 퍼져나가 많은 사람들이 찾아 들었다. 장소가 마땅하지 않아 여름에는 숲속에 텐트를 치고, 겨울에는 과수원 창고에서 풍물사랑을 불태우기도 했다. 88년 포항 환호동에 처음으로 ‘한터울’이라는 작은 공간을 마련하고 순수한 열정으로 여러 단체를 지도했다. 하지만 어수선한 시국이었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교사직을 잃게 된다.
불행 중 다행으로 선생님의 인연이 그 즈음 갈래머리 여고생으로 나타났다. 풍물이 전국 각처에서 붐이 일어난 즈음이라 지금의 부인이 된 김은경(37)씨가 학교 축제 준비로 선생님의 지도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인연은 계속 이어졌고, 소질이 남다르다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본 권 선생은 북을 했던 그녀에게 장구를 권했다. 일취월장이 무색할 정도로 그 실력은 놀라웠다고.
두 사람의 풍물에 대한 열정은 그들을 영덕 옥계계곡으로 이끌었고, 교사 풍물패와 대학생들이 막걸리와 간식을 사들고 수없이 찾아 왔다. 찾아 온 팀별로 산속에서 공연하는 기회를 갖기도 했는데 미숙한 팀을 위해 밤늦게까지 연습을 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계곡에서 지친 심신을 씻고 돌아오다 뱀에게 목숨마저 잃어버릴 뻔한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오래된 이야기를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하는 선생의 기억력은 감탄스러웠다. 지금까지 마음에 앙금으로 남아 있는 일은,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에게 제대로 대접을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새벽까지 비가 오다 하늘이 도와준 시월의 마지막 날, 반월성에서 전통혼례 후 공연까지 기획했는데 비 온 뒤 날씨여서 너무 추웠다고 한다. 도시락과 막걸리 한잔으로 끝이 나 버린 그때의 일이 생각나는지 다시금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 언제라도 꼭 제대로 대접하고 싶다고……
94년 복직 이후 지금까지 한결같이 풍물지도에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를 만큼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한다. 가끔 사소한 일로 티격태격 할 때도 있지만 막상 큰 일이 생기면 대범하다며 아내에 대해 말하는 그의 표정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해 보였다.
조용한 말씨와 단아한 모습 속에 무한한 열정을 소유한 김은경씨가 천상배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어느 드라마의 대사처럼 서로 같은 길을 가는 동반자로 한 치의 손색이 없어 보였다.
각 학교 특기적성 및 여러 단체를 비롯해 지금 운영하고 있는 ‘풍류마당’의 단장으로서, 그리고 세 아이의 엄마인 그녀의 하루는 짧기만 하다. 지금은 경주에 있는 교사들로 구성된 풍물샘의 공연 준비로 부부가 함께 정열을 쏟고 있었다.
무형문화재로 신청해 놓은 영덕의 ‘월월이청청’도 권오현 선생이 소리와 장단을 지도하고 김은경 단장이 반주를 담당한다고 한다.
앞으로 가장 바라는 점은 관심 있는 사람들과 풍물연구소를 운영하는 것이라고 했다. 인문학적 지식이 빈약하면 창조가 어렵고, 풍물학의 문화적 가치관, 세계관 등이 별로 없어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래야 무대예술로서 손색이 없다는 것이다.
동아리 위주로 운영되어 온 풍류마당을 시민들을 위해 10월부터 매주 수요일 7시에 문을 열 계획이라고 한다.
천상에서 나비가 내려와 춤을 추듯 사뿐사뿐 돌아가며 장구를 치는 김은경 단장의 모습과, 그녀를 향한 거침없는 꽹과리의 손놀림은 무언의 대화였다. 소리를 통해 결코 멈출 수 없는 사랑의 언어 같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