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역에서 화랑로를 따라 서쪽으로 내려오면 왼쪽으로 꺾이는 황성로가 나온다. 구 신라백화점쪽으로 들어가는 길목이며 경주교회와 맞보고 있는 건물이 경주휴게소다. 이를 살펴보면 ‘口’ 자형으로 사방에 길이 나 있는 외딴집이다. 경주 도심 한 가운데 특이한 형태를 지닌 이 건물은 어떠한 지형 변화를 겪으면서 이 같은 모습을 지니고 있을까? 사적 96호인 경주읍성(慶州邑城)은 고려 현종 3년(1012)에 처음으로 쌓았다. 임란 때 성벽이 크게 허물어졌던 것을 인조 때 증수하였고, 영조 22년(1746)에 마지막으로 개축한 기록이 남아있다. ‘동경잡기’에, 읍성은 돌로 쌓았다. 둘레는 4천 75척이고 높이는 12척이며 읍성 안에 우물이 80개 있다고 했다. 현재 1/1200지적도를 통해 산출한 성벽 길이는, 동쪽은 약 624m, 서쪽은 약 612m, 남쪽은 약 570m, 북쪽은 약 606m로 총 2.412m이다. 동쪽 성벽은 경주휴게소에서 황성로를 따라 현재 발굴 중인 계림초등학교 동편 담장 북단까지이고, 남쪽은 성문밖1길과 옹기전길이 끝나는 아래 시장 부근 일점오안경타운까지이다. 본디 이 길은 성벽 아래 큰 도랑인 해자(垓字)를 덮고 개설한 것이다. 읍성은 사방에 네 개의 대문이 있었다. 동쪽은 향일문(向日門), 서쪽은 망미문(望美門), 남쪽은 징례문(徵禮門), 북쪽은 공진문(拱辰門)이다. 1798년에 만든 집경전구기도(集慶殿舊基圖)를 보면 읍성 안의 관아 건물의 배치도가 상세히 나타나 있다. 조선 시대 읍성 안에는 객사가 그 중심 자리에 있었다. 객사 동편에는 훈련원 등 무관이 있었고, 서루(西樓)에는 문관이 사용하였다. 경주 부윤이 집무하던 일승각(一勝閣) 건물이 객사 서쪽에 자리한 것도 그러한 배치에서 기인하고 있다. 읍성 동문인 향일문에서 성벽을 따라 남쪽으로 호적소와 무학당(武學堂)이 있었고, 동남 모퉁이에 군기고(軍器庫)의 앞마당이다. 이를테면 경주 군관들이 군사 훈련을 하고 창검 등 무기를 쌓아놓은 무기고는 지금 경주교회자리이고, 그 동남 코너가 지금의 경주휴게소다. 1950년대까지 현 고바우약국 앞 도로 한 가운데 큰 회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이는 옛 지공청(支供廳) 앞에 고목이었던 것이다. 1910년 11월 일제 강압에 의해 읍성 안의 일승각, 향청 등 조선시대의 명칭이 없애버리고 군청, 재판소 등 관청 이름이 사용되었다. 1923년 11월에 경주 읍성 안팎의 도시 정비 작업이 이뤘어지면서 읍성 동남쪽은 상당 파괴되거나 철거되었다. 또한 이 때 경주역의 이전하였다. 1918년 11월에 동해남부선 철도가 개통되었을 때 경주역은 현 경주공업고등학교 바로 북편에 있었다. 1935년 부산진에서 포항간 철도가 개통되자 시내를 통과하는 철도 노선이 변경되었고, 경주역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시가지는 역을 중심권으로 하여 점차 발달하였다. 따라서 역에서 서쪽으로 자로 재듯 큰 도로를 뚫으니, 읍성은 그만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즉 남쪽 성벽을 그대로 둔 채 새로운 도로가 난 것이 화랑로다. 이 길이 개통됨으로써 읍성 동남 코너의 ‘┎ ’ 자 모양은 ‘ㄷ’ 자로 바뀌었다. 화랑로에서 내려오다가 다시 남쪽으로 황성로가 트였다. 이 길은 읍성 동편 성벽의 해자에서 바로 뚫지 아니하고 서쪽으로 내려가서 도로가 났다. 그리하여 경주휴게소는 ‘口’ 자 모양의 외딴 집으로 떨어져 남을 수밖에 없었다. 역사의 잔영(殘影)과 개발이라는 허상이 함께 어울러져 빗어낸 산물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읍성 안에는 세 개 마을로 분할되었다. 숭례문 북편 법원네거리에서 북문인 진공문까지 뚫린 길은 봉황로이다. 이 도로를 사이에 두고 옛날에는 서쪽에는 비교적 사람들이 적게 살았고 전체 면적이 동쪽보다 약간 작았는데, 이를 서부동이라 불렀다. 동편은 다시 경주여자중학교 앞 북성로를 나눠 북편은 북부동, 남쪽은 동부동이라 한다. 또한 읍성을 중심으로 마을 이름이 생겨났다. 읍성 동쪽에 있다 하여 성동동이라 부르지만 본래 동명은 좌우동(左右道)이었다. 또한 읍성 서북쪽 마을이라 하여 성건동(城乾洞)이라 한다. 건(乾)은 건방(乾方)으로 곧 서북향을 가르친다. 읍성 남문 앞 도로를 사이에 두고 동쪽은 노동동, 서쪽은 노서동이라 불렀다. 노동동과 노서동, 동부동과 서부동이 나뉜 네거리는 화랑로의 법원네거리가 아닌 그 앞의 옹기전길 네거리이다. 동부동은 읍성의 약 1/4 면적이며 동남쪽에 자리잡고 있다. 읍성을 등분하여 이동(里洞)으로 편성하였기 때문에 경주휴게소는 황오동에 속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동부동 2-28번지인 것은 이 같은 변화 과정이 있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