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아래 첫 동네라 불리는 내남 고사리에 자리한 만복당. 작은 체구에 쪽진 은발의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분주하다. 눈에서는 광채가 난다. 고단한 속내를 이실직고해야 할 것 같은 어이없음에 웃음이 나고, 가슴가득 겸손함이 몽글몽글 솟아난다.
돌할머니라 불리는 박애금씨(68)는 14년 전 도시생활을 접고 사람이 없는 깊은 산동네에 살고 싶어 어렵게 돈을 모아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믿었던 사람들에게 받은 겹겹의 상처가 사람들을 외면하게 했고, 오직 자연만을 믿고 바라보며 살게 했다. 집은 비만 피할 수 있으면 되고, 옷도 먹는 것도 최소한만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야외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넓은 마당에는 돌탑들이 가득하다. 이사 오던 이듬해 우연히 마당에 자란 풀을 보며 자신처럼 아무것도 없는 설렁한 마당에 화단이라도 만들면 좋을 것 같아 담장을 쌓기로 했단다.
집 뒤에 지천인 돌을 소쿠리에 담아와 진흙을 말끔히 씻어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 쌓아보니 너무 보기가 좋았다. 그래서 하나 둘 쌓다보니 계속하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받침이 든든하지 않아 자꾸 떨어져서 쌓고 쌓는 일의 연속이었지만 마음은 행복했다. 밥 먹는 시간조차 아까워 물만 마셔가며 12년 동안 신명을 바쳐 돌탑을 쌓았다.
목숨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그것들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눈에는 사랑스런 손자를 바라보는 애정 그 이상이 듬뿍 담겨 있다. 옛 말에 하늘이 감동해야 돌이 붙는다고 했는데 정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박애금씨의 돌탑은 비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다.
돌탑을 쌓기 시작하던 그 해, 세상풍파에 찌들어 사람들을 피해 산골에서 생활하다보니 필요 없는 옷들이 많아 태우려고 정리 하고 있었는데, 라디오에서 ‘내일은 정월대보름입니다’라는 말을 듣고 복조리를 사서 걸던 풍습이 생각났다. 불현듯 복조리 대신 복주머니를 만들어 달면 좋을 것 같아 박복한 자신의 인생에 한이 맺혀 쌓아 둔 무더기에서 색이 고운 것을 찾아 복주머니를 하나 만들었다고 한다.
어설프게 보여 리본으로 장식을 했더니 한층 예뻤다. 욕심을 내어 세 개를 만들어 엮어 벽에 걸어보니 꽃보다 더 예뻤다. 그 이후로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복주머니에 흠뻑 매료되어 6년여 동안 잠자는 시간을 줄여 가며 한 땀 한 땀 깁은 복주머니 수십만개가 서른평 남짓한 방을 가득 채우고 있다. 신비하기까지 하다.
몇 년을 낮에는 돌탑을 쌓고 밤에는 복주머니를 만드는 그 멈출 수 없는 집착으로 차라리 죽고 싶을 때도 있었다고 한다. 밥먹는 시간, 잠자는 시간을 아껴가며 일하는 자신이 미친 줄 알았다고 한다.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다짐하며 신들린 듯 보낸 그 시간이, 서른한살부터 시작된 힘든 삶과 믿음에 대한 배신을 치유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고.
고단한 삶을 잠시 잊어도 될 것 같고 도회지의 숨 막히는 공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그 곳, 만복당은 한 때 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았고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도 높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보존회도 있었다. 여러 방송에 출연해 세상에 알려졌고, 문화, 관광, 학술, 종교적인 면에서 관심을 받았던 만큼 관광객들이 줄을 이었다. 그곳을 찾는 사람들과 관심 있는 사람들이 기증한 민속품과 벽화는 작은 박물관을 연상케 한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숨소리조차 조심스럽게 했던 그곳을 지금은 아무도 찾지 못하게 네 개의 자물쇠가 즐비하게 서 있다. 낮은 대문에 ‘할머니 기도 중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사람들을 돌아서게 한다. 이유는 그저 ‘사람이 싫다’였다. 낯선 사람들의 방문 전화에는 사정없이 욕설이 날아간다고 한다.
사람에 대한 신뢰를 바닥까지 들여다보았고 자물쇠보다 마음의 문을 더 꼭꼭 잠그고 있는 박애금씨. 이제 그곳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은 단 3명 뿐이다. 자신이 신뢰하고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이지만 미리 전화를 해야 하고, 찾아가면 대문 앞에 앉아서 기다린다. 단호하게 외치는 ‘사람이 싫다’는 말이 ‘나는 사람이 그립다’는 절규로 들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돌탑 사이에서 예쁘게 사진 찍어 달라며 미소 짓는 한 여자를 보았다.
꽃을 좋아하는 그녀가 돌탑 가장자리에 영산홍이 활짝 피는 날 마음을 열고, 걸어잠근 대문을 활짝 열었으면 좋겠다.
박인복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