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서는 경주시 양남면지역으로 동대산 삼태봉(629m)이 동해로 뻗어 내리면서 이룬 골짜기의 어귀에 위치한 마을이다. 환서는 본래 ‘중서(中瑞)’라고 했다. 지금의 양남 일대는 신라6부시대에 금산(金山) 가리촌(加利村)에 속했는데 당시 촌장이었던 지타(祗陀)공이 이곳을 ‘서촌(瑞村)’이라고 했다. 지금의 서동리(瑞洞里) 일대(상계, 수렴 등)를 ‘상서(上瑞)’라고 했으며, 그 가운데에 위치한 환서리 일대(석읍, 석촌)를 ‘중서(中瑞)’, 그 아래에 위치한 하서는 ‘하서(下瑞)’라고 불렀다. 월성원전이 있는 나아리 일대(나산)는 신라 석탈해왕의 탄생설화와 관련한 아진포(阿珍浦)로 ‘아서(阿瑞, 兒瑞)’라고 불렀다. 따라서 지금도 양남지역에는 땅이름에 ‘서(瑞)’자가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서동(瑞洞)’을 제외한 나머지 땅이름은 모두 ‘서(西)’자로 바뀌었다. 이것은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의 일로 추정된다. 환서의 경우도 그렇다. 그러나 중서가 환서로 바뀐 연유는 잘 알지 못한다. 양남일대 땅이름 ‘서(瑞)’자가 ‘서(西)’자로 바뀌어 환서는 동대봉산에서 흘러내리는 하서천을 중심으로 그 남쪽에 있는 ‘송정’, ‘전방’, ‘원산’이 환서1리를 이루고, 그 북쪽에 있는 ‘구만’, ‘덕골’이 환서2리를 이루고 있다. 이 마을은 울산에서 10분정도의 거리에 있어 울산경제권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최근에 울산에 직장을 가진 사람들이 이 마을에 들어와서 전원주택을 짓고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현재 마을주민들의 약 20%가량이 외지인이고 갈수록 그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환서1리는 60가구에서 100여명의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다. 벼농사와 고추, 파프리카, 한우 등이 주산물이다. 파프리카의 경우 경주시의 ‘1읍면 1특작물’ 정책에 의해 파프리카단지 6천500평을 조성하고 있다. 지난해 비닐하우스 3천500평을 지었고, 올해 3천평을 짓고 있다. 지난해 첫 파프리카 수확에서 4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는 10억원정도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고추는 1만2천여평, 한우는 80두정도 기른다. 환서2리는 40가구에서 7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로 벼농사와 고추, 버섯, 한우를 기른다. 고추는 3천여평, 버섯은 1농가에서 표고버섯 2동, 한우는 120두정도이다. 이 마을 최고령자는 구만리에 사는 정선옥(91 달동댁) 할머니로 지금도 밭에 김매고, 산에도 다닌다. 술을 즐겨 자신다는 정 할머니는 일 나갈 때 술병을 차고 다닌다고 한다. 잠시도 쉬는 적이 없다는 정 할머니는 기자가 찾아갔을 때에도 빨래를 하고 있었는데 그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울산까지 10분 ‘울산경제권’ 송정(松亭) 옛날 이곳에 큰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정자(亭子)가 있었으므로 ‘송정’이라 불렀다고 한다. 환서의 동쪽에 위치한 이 마을은 다시 나누면 ‘굴골’, ‘송정’, ‘물무골’로 구분된다. (29가구) 동제 이 마을은 해마다 음력 정월보름에 동제를 지낸다. 옛날에는 굴골, 송정, 물무골 등 3군데에서 동제를 지내다가 10여년전부터 통합해서 송정 회나무에서 지낸다. 당목 송정마을 가운데 우물가에 있는 수백년 된 회나무를 당나무로 섬기고 있다. 원산(遠山) 이 마을이 왜 원산인지는 알지 못한다. 송정과 전방의 가운데 있는 마을이다. 마을회관이 이곳에 있다. (18가구) 동제 이 마을은 해마다 음력 정월대보름에 동제를 지낸다. 당목 마을 가운데에 있는 수백년 된 회나무이다. 전뱅이 이 마을은 밭이 경작지의 대부분을 차지하므로 ‘전방(田坊)’이라 했다고 한다. 또 신라시대 병사들이 이곳에서 활 쏘는 연습을 했다고 하여 ‘전방(箭放)’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금도 ‘전방(箭放)’, ‘전방리(田坊里)’라고 한다. 송정리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20가구) 동제 이 마을은 해마다 음력 정월대보름에 동제를 지낸다. 당목 마을 가운데 오래된 느티나무가 당나무로 모셔졌으나 고사하고, 20여년전에 후계목으로 느티나무를 다시 심었다. 구만석부자 묘 잘못 쓰고 망해 구만리(九萬里) 옛날 이 마을에 살던 윤씨(尹氏)가 구만석을 했다고 해서 마을이름을 ‘구만리’라 불렀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어떤 지관이 이 마을을 보고 만석군이 나올거라고 했는데, 윤씨가 들어와서 만석이 다 되어 가는데 마을 앞 동내봉에 묘를 잘못 써서 쫒겨나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실제로 이 마을에 윤씨가 있었는데 대단한 부자였다고 한다. (34가구) 동제 이 마을은 해마다 음력 정월대보름에 동제를 지낸다. 당목 당나무는 200여년 된 느티나무로 당집과 함께 마을 뒷산기슭에 있다. 덕골 구만리 서쪽 골짜기로 뽕나무가 잘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뽕나무가 많다. (6가구) 해마다 별신굿 올려 성황당(城隍堂) 구만리에 있는 당집으로 본래는 들판 가운데 서낭할매가 쉬어 간 자리라고 알려진 곳에 있었다. 옛날 이 마을 노인들의 꿈에 동산령의 산신령이 나타나 “내가 가리키는 곳에서 하늘에 제사하라” 하여 그곳에 사당을 짓고 매년 무녀를 불러 별신굿을 했다고 한다. 집집마다 돌아가며 굿을 해 왔는데 50여년전 어떤 사람이 욕을 하며 굿을 하지 않겠다고 해서 그 뒤로 굿은 하지 않고 동제만 지낸다고 한다. 지금의 성황당은 옛날 건물이 낡고 허물어진 것을 20여년전에 이곳으로 옮겨 새로 지었다. 동내봉(洞內峰) 구만리 마을 안에 산이 있어 ‘동내봉’이라 한다. 옛날부터 이 산에 묘를 쓰면 마을에 재앙이 온다고 한다. 그런데 9만석을 했던 부자(윤씨)가 마을사람들 몰래 이곳에 묘를 쓰고 나서 집안이 망했다고 한다. 그 후에도 어떤 이(정씨)가 이곳에 묘를 썼는데 역시 집안이 망했다고 한다. 뒷메 송정 마을 뒤에 있는 산이다. 오발산 양남면의 환서리, 읍천리, 나아리에 걸쳐 있는 높이 162m의 산으로 산등성이가 발처럼 다섯 줄기가 뻗어 있다. ‘오족산(五足山)’이라고도 한다. 묘만 쓰면 망하는 동내봉 그늣골재 환서 구만리에서 나아로 넘어가는 고개로 오발산에 가려서 그늘이 많이 진다고 한다. 대밭고개 대나무밭이 있는 고개로 구만리 북쪽에서 나산 큰말로 넘어간다. ‘대밭장재’라고도 한다. 농물뒤에 큰갓산 뒤에 농 같이 생긴 바위가 있는 고개로 전뱅이 서남쪽에서 지름골과 신서리 굇피이로 넘어간다. ‘농물고개’라고도 한다. 뒷메고개 뒷메에서 신서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잘목고개 지형이 잘록한 고개로 구만리 북쪽에서 나산리의 보덕암으로 넘어간다. 대밭골재 뒤가 된다. 재미기 덕골의 서북쪽에서 기구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까끔등 까끔(말림갓)이 있는 등성이로 구만리 남쪽에 있다. 깟골등 구만리 동쪽에 있는 등성이다. 당수나뭇등 당숫골 위에 있는 등성이다. 독짓골등 독짓골 위에 있는 등성이로 덕골 안쪽에 있다. 동멧등 구만리 서남쪽에 동산이 있는 등성이다. 동산갓등 동네 공동 소유의 말림갓이 있는 등성이로 구만리 북쪽에 있다. 뒷등 당숫골 남쪽에 있는 등성이로 구만리 마을 뒷등성이다. 바우골등 바우골 위에 있는 등성이로 구만리에 있다. 도장굴등 구만리 서쪽에 있는 등성이다. 번벅등 지형이 펀펀한 등성이로 까끔등 서쪽에 있다. 봇갓등 이곳의 나무를 베어 개정자보를 수축했다고 하는 등성이로 구만리 서쪽에 있다. 황소로 흙을 끌어 모아 불당등 불당골 위에 있는 등성이로 구만리 서쪽이다. 황소밭등 구만리 서쪽에 있는 등성이로 윤씨네가 황소를 가지고 흙을 끌어 모았다고 한다. 가자골 구만리 서쪽에 있는 골짜기다. 고죽골 새잣골 맞은편에 있는 골짜기로 환서 서북쪽에 있다. 그늣골 구만리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그늘이 많이 진다고 한다. 다락골 구만리 동쪽에 있는 골짜기다. 당숫골 동제를 지내는 당수나무가 있었던 골짜기로 고짓골 남쪽에 있다. ‘당수나뭇골’이라고도 한다. 덕골 닥나무, 뽕나무가 많았다고 하는 골짜기로 구만리 서북쪽에 있다. 지금도 닥나무가 많다. 독짓골 돌이 많은 골짜기로 불밋골 북쪽에 있다. 구만리 북쪽이다. 바우골 바위가 많이 있는 불밋골 북쪽 골짜기다. 구만리 북쪽이다. 불당(佛堂)골 불당이 있었던 골짜기로 구만리 서쪽에 있다. 불밋골 불밋간(대장간)이 있었던 골짜기로, 구만리 북쪽에 있다. 새잣골 지형이 마치 새의 모가지처럼 생긴 골짜기로 덕골 서쪽에 있다. 성짓골 독짓골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다. 큰골 고짓골 남쪽에 있는 큰 골짜기로 원산마을 서쪽이다. 허골 빈터가 있는 골짜기로 구만리 북쪽에 있다. 사방 10리 펼쳐진 괴정자나무 개정잣 들 괴목나무 정자가 있었던 들로 전뱅이 서북쪽에 있다. 옛날 이 괴목나무는 가지가 사방 10리나 펼쳐져 있었다고 한다. ‘개정자’라고도 한다. 밭잔들 밭이 많았던 들로 구만리 서쪽에 있다. 사무짬 밭잔들 서쪽에 있는 들로 기구와 환서의 경계지점에 있다. 사부릿들 전뱅이 동쪽에 있는 들이다. 서낭들 서낭당이 있었던 들로 구만리 앞에 있다. 섬봇들 섬보의 물을 대어 농사를 짓는 들로 중봇들 북쪽에 있다. 중봇들 중보의 물을 받아 농사를 짓는 들로 송정리 동쪽에 있다. 황샛들 황새가 많이 살았다고 하는 들로 섬봇들 북쪽에 있다. 물이 제일 좋았다. 중보(中洑) 황새보와 하서리의 궁잇보 중간에 있는 보이다. 개정자 보 개정잣들에 있는 보다. 섬보 섬봇들에 물을 대는 보로 섬봇들에 있다. 황새보 황샛들에 물을 대는 보다. 마을진입로와 농수로 정비 환서는 동해가 바라보이는 동대봉산 동쪽기슭에 자리한 마을로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면서 바다에 인접해 있어 수려한 경관과 맑은 물과 공기로 살기 좋은 마을이다. 이 마을 주민들은 농수로 정비와 마을 진입로 정비를 바라고 있었다. 이 마을 출신으로는 윤기일(62 법무사), 김태환(60 환경청 서기관), 이상훈(31 성균관대 연구원) 등이 있다. 마을취재에 협조해주신 이장님을 비롯한 마을주민께 감사드린다. 김거름삶 사진 최병구 기자/ 정리 이채근 기자 자문 허계수(족보도서관장)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