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월성에서 남천내를 건너면 남산이 있다. 그 남산을 신라인들은 불국토로 만들었다. 왜 그렇게 했을까. 저승길을 흔히 황천을 건너서 간다고 한다. 왕궁인 반월성에서 사람이 죽으면 저승에 가야 하는데 신라인들은 황천을 남천으로 생각하고, 남천을 건너자마자 바로 잇닿아 있는 남산을 저승으로 생각하여 불국토로 만든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신라인들은 참으로 기발한 착상을 한 사람들이다. 즉, 죽음의 세상을 강 건너 가까이에 만들어 놓고, 그곳에 마음을 닦는 도량을 세워 죽은 사람을 불심으로 교화하여 개과천선시킨 후 잠시 마실 나갔던 사람이 다시 돌아오는 것처럼 불러들인다는 기대를 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죽음을 이 세상을 떠나는 영원한 이별로 생각하지 않고, 곧 돌아오는 것으로 믿고,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저 세상이 있다는 믿음과 이 세상에 다시 돌아온다는 믿음은 이 세상의 모든 삶을 저 세상의 준비로 생각하고, 이 세상에 다시 돌아오는 보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고통을 고통으로 생각하지 않고, 희생과 봉사를 즐겁게 할 수 있는 토양으로 삼았을 것이다. 국가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는 것이 다음 생의 종자돈이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러한 에너지가 한 곳에 모여 신라가 이룩한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된 것은 아닐까. 역사에 의하면 남산에 200여개나 되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는 불교 유적들은 우리나라 불교문화의 산 교육장이 되고 있다. 경주 남산은 소중한 우리 문화의 보고로서 잘 보존되어야할 가치가 있는, 경주가 자랑하는 문화유산이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재 보존의 참 의미는 그것을 보호하여 후세교육의 장으로 삼자는 데 있는 것이 아닌가. 그냥 묻어두고, 숨겨두자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개발은 무조건 파괴가 아니라 잘 계획된 개발은 오히려 차원 높은 보존이 될 수도 있다는 역 발상을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오직 보존이라는 의미로 관람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로도 정비할 수 없어서 일반 등산객들이나 관람객들이 이리저리 마구잡이로 길을 내어 장마나 홍수 때 산사태를 나게 하면 오히려 파괴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적어도 남산의 유적지에 대한 자연친화적인 도로를 보수하여 관람객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한다. 막연하게 길만 보수하는 것이 아니고 문화제에 대한 보호까지를 포함하여 한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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