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이웃에 있는 동양화가가 중국에서 부쳐온 호랑이 그림을 보여주었다. 크기로 보나 그림솜씨로 보아 한국화가가 그렸다면 200만원은 족히 될만한 그림인데 15만원에 부쳐온 것이라고 한다. 이 그림을 산 사람은 여백에다 나무나 바위같은 풍경을 그려 한국적인 호랑이 그림으로 만들어 달라고 한 것이다. 물론 공간구성이 다 된 다음에는 도장도 찍고 글도 넣어 그럴 듯하게 한 폭의 호랑이 그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부탁을 받은 화가는 여백에 풍경을 채우기위해 그림의 먹색깔이나 필처를 자세히 살피는 과정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였다. 털을 그린 가는 선들이 아주 정교하고 일률적이어서 도저히 붓으로 그렸으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잘 관찰하여 보니 정교한 복사 제품인 것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특수 복사기로 동양화 종이를 넣어 교묘하게 복사를 하고 채색을 한 것이었다. 참으로 웃기는 일이었다. 하기야 올림픽 개막식에 부른 여자아이의 노래도 짝퉁이라고 하니 이런 상품그림이야 말할 수 있겠는가. 요즈음 이런 종류의 그림들이 국내에 종종 돌아다니고 있다. 중국에 부탁만 하면 어떤 그림이든 원하는 대로 만들어 보내준다. 그림 공장에서는 주문받은 그림을 똑같이 수없이 만들어 내고, 정교하고 수공이 많이 가는 호랑이 그림같은 경우에는 복사기까지 동원하는 것이다. 이런 그림을 한국에 가져와 좀더 가필을 하고 화제 쓰고 작가의 도장을 찍으면 그럴듯한 그림이 된다. 만일 이런 그림을 자랑스럽게 걸어두고 후에 식견있는 사람이 보고 “짝퉁작품”이라고 지적하여 준다면 모처럼 생색내어 거금을 투자한 작품이 우스겟꺼리가 되지는 않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그림을 벽사와 기복의 신앙적 대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그림은 특히 동양화에 해당되는데, 이를테면 호랑이그림은 삼재를 막고 악을 쫓아내는 영물의 그림으로, 신선이나 도사같은 그림은 집안의 안위를, 모란도는 부귀를, 학과 거북은 장수를 가져온다는 생각으로 그림을 걸어둔다. 이러한 소박한 민중의 꿈은 아름다운 것이다. 꿈과 소망으로라도 집안에 그림을 걸어두고 즐거워 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일까. 그런데 이런 그림들이 부적처럼 이용되어 민중을 현혹하는 상품으로 전락되고 짝퉁으로 대량생산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그림은 수맥까지 막아준다는 선전을 하여 아픈 사람들을 유혹하는 어이없는 일까지 볼 수 있다. 그림은 어디까지나 그림이다. 그림속의 꿈같은 풍경이 마음을 평화롭게 하며, 시원한 푸른색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붉은 꽃은 열정적인 생기를 돋구어준다. 밝고 화사한 화면은 집안 분위기를 명랑하게 해주며 푸른 초원의 그림은 들뜬 아이들을 진정시켜 준다. 그림은 눈으로 확인하는 심신의 한 치유 방법이며 그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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