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내면 소재지로 행정, 상업, 교통의 중심 유난히도 무더웠던 날씨가 입추, 말복을 지나면서 한풀 꺾인 듯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가운데 지구촌 최대잔치 올림픽이 열리는 베이징에서 전해오는 태극전사들의 잇단 승전보가 답답한 가슴까지 시원하게 한다. 의곡(義谷)은 산내면의 중심 마을로 산내면사무소와 산내시장, 산내농협, 의곡초등학교, 산내중상업고등학교, 산내우체국 등 주요 관공서와 상가들이 이 마을에 있다. 옛날에 어진 촌장이 마을을 잘 다스렸다는 뜻에서 ‘어실’, ‘의실’, ‘의곡’이라 불렀다고 한다. 의곡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넓은 분지에 일자산이 마치 못에 잉어가 노는 듯이 떠 있는 잉어혈이라고 한다. 그런데 일제 때에 그 혈을 잘라 그 후로 의곡이 발전하지 못한다고 한다. 의곡은 면사무소가 있는 ‘일자산’과 그 동쪽의 ‘창각단’, 그 서쪽의 ‘장터’, 남쪽의 ‘역촌’ 등으로 이루어진 ‘의곡’이 의곡1리, ‘숲골’이 의곡2리를 이루고 있다. 마치 못에 잉어가 노는 듯 의곡1리는 180가구 205세대에 445명의 주민이 생활하고 있다. 장터를 중심으로 상업에 종사하는 주민과 농업에 종사하는 주민이 반반정도이다. 주로 벼농사에 의존하고 고추와, 고사리(1천300평), 한우(150두)를 기르고 있다. 의곡2리는 34가구 68명의 주민이 사는 작은 마을로 주로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벼농사와 한우(130두), 고추(1만여평), 고사리(1천5백평), 더덕, 도라지 등을 재배한다. 이 마을이 산내 단고사리로 유명한 단고사리 작목반이 있다. 의곡에서 가장 고령자는 의곡 장터에 살고 있는 정장석(97 전 산내면장) 할아버지로 귀가 좀 어둡고, 허리가 굽었을 뿐 매일 독서와 일기를 쓰고, 시장에 다닐 정도로 아주 건강하시다. 숲골, 김영김씨 집성촌 의곡(義谷) 옛날 이 마을에 어진 촌장이 마을을 잘 다스렸다고 하여 ‘어실’, ‘의실’, ‘의곡’이라 불렀다고 한다. 산내면 소재지로 의곡초등학교, 우체국, 면사무소, 지서 등이 있다. 일자산(一字山) 일자모양으로 늘어선 산등성이에 들어선 마을로 산내면사무소와 우체국, 마을회관 등이 이 마을에 있다. 양지쪽에 자리한 마을로 ‘양지편’이라고도 한다. 일자산에는 장정 두 아름이 넘는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는데 해방직후에 그 나무를 다 베어내고 마을을 만들었다고 한다. 창각단 의곡의 가운데에 있는 사창의 터로, 지금은 마을이 들어서서 창각단이라고 한다. 의곡 동편의 응달쪽에 자리 잡고 있어 ‘음지편’이라고도 한다. 장터 산내시장의 주변으로 들어서 있는 마을이다. 역촌(驛村) 옛날 의곡역(義谷驛)이 있었던 마을로, 의곡역이라고도 하는데, 의곡과 숲골사이에 있었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다. 숲골 의곡의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숲에 덮혀 있었다고 하여 ‘숲골’ 또는 ‘임동(林洞)’이라 불렀다고 한다. 마을 어귀에는 지금도 오랜 느티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김영김씨 집성촌으로 지금도 16가구가 산다. 동제 이 마을에는 수백 년 된 느티나무가 있어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이면 동제를 지냈으나, 1998년부터 지내지 않고 있다. 당나무 마을어귀에 있는 느티나무숲에 있는 수백년 된 느티나무를 마을 당목으로 섬기고 있다. 겨드랑이에 날개 난 장군 일자산(一字山) 의곡에 있는 산으로 붕어혈, 누에혈이라고도 한다. 지금 이곳은 나무들을 다 잘라내어 산은 없어지고 마을이 들어서 있다. 동뫼산 마을 앞에 있는 산이다. 이 산의 못 위에 어떤 이가 살았는데 어느 때 겨드랑이에 날개가 난 장군이 태어나 홈탕골에 묻어 3일 만에 죽었는데 범바우, 용바우가 울고 진동했다고 한다. 숲고개 숲골에서 일부리 산수로 넘어가는 고개로 ‘숲골재’라고도 한다. 질고개 의곡에서 대현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질곡’이라고도 한다. 대현에서 넘어오는 산길로 큰길이었다. 대문달 불당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질고개 올라가다가 있다. 신라시대에 김유신장군이 단석산에 공부할 때 피신하지 못한 백성을 이곳에 피신시키고 앞에 바위에 문을 달아 외부인들이 들어오는 것을 통제했다고 한다. 더붓골 의곡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에 남씨들이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논이 되어 있다. 불당골 의곡리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 이곳에 불당(佛堂)이 있었다 한다. 송골 대문달의 아래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염탯골 역이 있었던 안 골짜기라 ‘역태골’이라고 부르던 게 변해서 ‘염탯골’이라고 한다. 또 염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의곡 동남쪽에 있다. 한골 의곡 동쪽 골짜기로 공을 들여 자식을 낳은 불선바우가 있다. 공자가 이곳에서 공을 들여 출세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터를 비울자리가 못되어 한골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작은 한골 한골의 작은 골짜기. 홈탕골 의곡못 너머에 폭 꺼져 있는 골짜기이다. 목욕하면 땀띠 나은 ‘참수드미’ 범바우 질고개에 있는 바위로, 모양이 마치 범처럼 생겼다고 한다. 또 이곳에 범이 났다고도 한다. 불썬바우 영검하여 아들이 없는 부인이 불을 밝혀 치성을 드리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한다. 작은 한골에 있다. 용마암(龍馬岩) 불당골에 있는 바위로 ‘용마바우’, ‘용머리’라고도 한다. 이곳에 용도 나고 말도 났다고 한다. 또 장군이 났다고도 한다. 조개드미 강당소 동쪽 맨 위에 있는 바위로 ‘주개드미’라고도 한다. 마치 조개처럼 생겼다고 한다. 참수드미바우 의곡 서북쪽에 있는 바위로 참수드미 옆에 있다. 지금 인공폭포 만들려고 하는 곳이다. 이곳은 아주 찬물이 나는데 이곳에 목욕하면 땀띠가 나았다고 한다. 갯들 의곡 서쪽 냇가에 있는 들로 갯들보의 물을 대어 농사를 짓는다. 뒷들 의곡 뒤쪽, 곧 대현리 입구에 있는 들이다. 마굿들 옛날 말이 교통수단일 때 의곡역의 말을 관리하던 마위전(馬位田)이 있었던 곳에 생긴 들로 의곡초등학교 앞에 있다. 말사래 의곡 남쪽에 있는 논으로 말처럼 생겼다고 하는데 지금은 경지정리하고 없어졌다. 진배미 일자산 서쪽에 있는 진(긴)논이다. 의곡천(義谷川) 고헌산, 문복산 등에서 발원한 물이 대현골에서 합수하여 북쪽으로 흘러 의곡에 이르러서 감산에서 내려오는 도랑과 다시 합수하면서 의곡을 돌아 서쪽으로 흘러 청도 운문댐으로 흘러 들어간다. ‘동창천’이라고도 한다. 홍골거랑 대문달, 불당골 등에서 내려오는 거랑이다. 뒷들못 뒷들에 있는 못으로 본래 있던 것을 일제 때 새로 막았다. 말 물 먹이려 만든 보 강당소 의곡 동쪽 마굿들보 입구에 있는 소로 그 위에 강당이 있었다고 한다. 버들소 부근에 버드나무가 많아 ‘유연(柳淵)’이라고도 한다. 조개드미 소 조개드미의 아래쪽에 있는 소이다. 참수드미 대현에서 내려오는 물과 감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합수되는 곳에 만들어진 소로 의곡 서북쪽에 있다. 갯들보 갯들에 있는 보. 마굿들 보 마굿들에 있는 보로 ‘마위보(馬位洑)’라고도 한다. 옛날 의곡역이 있을 때, 말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이 보를 만들었다고 한다. 당집 터 매년 정월 보름에 당제를 지냈다고 하는 당집의 터. 지금의 의곡초등학교 자리이다. 마당(馬堂) 터 의곡에 있던 마당의 터로 지금은 닥나무 밭이 되었다. 유연정(柳淵亭) 터 버들소 옆에 있었던 정자인 유연정의 터이다. 의곡장(義谷場) 3일, 8일에 열리는 재래시장으로 ‘산내장’, ‘의실장’이라고도 한다. 이 마을 출신으로는 김구석(57 경주남산연구소장), 조용식(55 서울 변호사) 등이 있다. 김거름삶 사진 최병구 기자/ 정리 이채근 기자 자문 허계수(족보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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