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사육단계 HACCP 인증농장 만들기 소는 가족이었다. 논일도 밭일도 함께 했고 가끔 뒷동산으로 소풍도 함께 갔다. 우리가 먹던 음식을 싱싱한 풀과 섞어 먹었고, 그래선지 오랜 기억속의 소는 싫지 않은 냄새를 가졌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마을에 축산농가가 들어온다 하면 온동네 사람들이 발 벗고 나선다, 파리와 악취는 기본이니까. 예전의 방식으로 소를 키워서는 안되는 세상이 되었다. 듣도 보도 못한 병원균이 등장했고 소의 먹거리도 더 이상 자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천년한우의 대표농가인 서라벌농장(대표 정병우·사진)도 예외가 아니었다. 1997년 4월 농장 설립 당시 악취가 없고 오염원을 최소화하는 친환경농법으로 경영하겠다 했는데도 마을사람들이 반대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작년 10월, 서라벌농장은 국내 최초로 한우사육단계 HACCP(해씁) 적용농가로 인증을 받았다. 정병우 회장은 차단방역 및 시설관리, 각종 검사 등으로 표준 위생관리 체계를 수립하고 농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위해요소를 HACCP 시스템을 적용하여 안전한 브랜드육 생산에 노력한 결과라고 말한다. HACCP 시스템이 뭔가요? HACCP(Hazard Analysis Critical Control Point)란 ‘위해요소 중점관리 기준’으로 원료와 공정에서 제품위생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생물학적, 화학적, 물리적 위해요소를 분석하고 방지, 제거해 안전성을 확보하고 체계적·과학적으로 중점관리하는 사전 위해관리시스템을 말한다. 1959년 우주인에게 무결점 식품을 공급하기 위한 미항공우주국(NASA)의 요청으로 식품회사에서 처음 도입한 이 시스템은 1993년 국제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보건기구(WHO)에서 HACCP 적용 지침을 제공했고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서 채택했다. 우리나라는 1997년 동물성식품을 대상으로 시행하면서부터 적용했으며 그 해 12월 축산물가공처리법이 개정되어 도축장 및 축산물 가공장에 HACCP를 도입하도록 법적 제도를 마련하게 됐다. 이미 사료공장으로부터 도축장, 식육포장 처리업, 축산물 가공장, 축산물 보관·운반·판매업까지 축산물의 모든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 인증 받은 가공품은 우측 상·하단 또는 좌측 상단에, 육류는 어깨, 등, 가슴, 배, 앞다리, 뒷다리 등에 HACCP 마크가 인쇄된다. 전국1호는 자존심과 도전이었다 2006년, 경주시농업기술센터 황영기 과장과 김태우 담당자는 ‘천년한우’ 브랜드를 전국시장에 알릴 방법을 찾고 있었다. ‘후발주자이면서 단번에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은 HACCP 시스템’이라는 결론을 짓고 정병우 회장을 설득했다. 김태우 담당자는 3번씩이나 방문하는 열정을 보였고 천년한우의 대표농가로서 의무적으로 해달라는 말에 정 회장은 사명감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HACCP 관리기준원에 본인이 만든 위해요소 관리기준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국내는 축산에 대한 아무런 기준도 없었던 터라 기준서 양식을 만드는 일이 제일 어려웠다고 한다. 서울을 30번도 넘게 다니며 기준원 담당자와 함께 논의하며 만들었고, 힘들었던 만큼 경주에서 1~4호가 인증 받아 한우의 메카로서 자존심을 지키게 됐다. 정병우 회장은 “신청 날 서산가축개량사업소와 전국 1호를 놓고 경합이 붙었는데 김태우씨와 축협의 김재영씨가 그 앞에서 밤을 꼬박 세워 기준원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며 “1년여의 기간 동안 관련 담당자들이 함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뉴질랜드, 프랑스, 영국, 캐나다, 미국 등 선진국의 축산환경은 완벽할 정도라고 한다. 이제 아시아권에서는 우리나라가 유일한 HACCP 인증국이 되었다. 현재 서라벌농장을 찾는 방문객은 연간 800~1천여명이며 일본, 중국에서도 견학을 온다고 한다. 천년한우 HACCP 적용 어떻게? 경주시농업기술센터는 한·미FTA에 따른 쇠고기 수입에 대응하고 한우의 안전성 확보로 차별화하기 위해 천년한우농장 HACCP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는 13개 농장을 대상으로 추진 중에 있으며 내년까지 40농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천년한우 HACCP 농장은 차량 및 대인 소독, 축사 자동환기 제어시스템 등을 설치해 농장 외부로부터 질병 유입을 사전에 차단하는 방역시스템을 가동한다. HACCP팀을 구성하고 계획적, 지속적 교육 및 관리를 해나가야 한다. 체혈로 질병검사, 전염병 매개체인 쥐 박멸은 기본이고 소똥을 무작위로 추출해 대장균과 살모렐라 검출이 없어야 하는 등 무균에 가까운 환경이어야 한다. (소똥의 수분을 40%미만으로 떨어뜨리면 균들이 활동을 못해 파리, 모기가 기생하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이외에도 출생, 질병, 방역, 백신, 육성단계, 판매까지 소에 대한 모든 관리와 기록이 되어 있어야 한다. 경주한우가 가야할 길 정부는 지난달 11일 식품안전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내년 6월부터 수입쇠고기 이력추적시스템을 전면 시행하고 2010년까지 전자태그, 바코드를 이용한 경로추적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또 육류 판매업자는 이달부터 원산지표기 거래명세서를 반드시 작성해야 한다. 이와 함께 정부는 올해 말까지 국제무역사무국(OIE)에 광우병 위험평가를 신청해 2010년까지 광우병 위험통제국 지위 획득을 추진할 계획이며 2012년까지 제조업소와 축산농가 등에 HACCP 적용률을 현재 30%에서 95%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축산농가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임을 감안해 농가들과 기관이 함께 힘을 모아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할 때이다. 경제적 풍요에 따라 소비자들은 더욱 위생적이고 안전한 축산물의 공급을 희망할 것이고, 국제무역에 있어서도 위생관리가 제대로 안된 축산물은 수출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정병우 회장은 “HACCP은 소득도 없고 비용만 들어갈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인증을 받고나니 농장이 확 달라졌다. 현재 10% 정도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쇠고기에 함유된 불포화지방산의 일종인 ‘올레인산’은 맛을 좌우하는 주요인으로 콜레스테롤 저하, 동맥경화, 심장병 예방, 폐암과 유방암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보고가 있다. 한우(48%)는 수입육(일본 42%)에 비해 올레인산 함유량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출하 시에는 1등급 판정으로 농가수익이 증대되고 많은 곳에서 공급받기를 원하는 최상급 대우를 받는다”며 “한우는 절대 혼자서는 성공할 수 없다. 천년한우 농가 전체가 한팀이 되어야 한다. HACCP 인증 농가가 경주에 100개 정도만 되면 전국적인 여론은 물론 국제경쟁력도 충분할 것이다. 향후 5년여 지나면 HACCP 인증 천년한우의 가치는 가시화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한우의 족보가 이제 5년여 되었다. 그 이전인 1995년부터 육종개량에 지속적으로 투자해 한우 역사의 발판을 마련했으며 2006년에 육종농가로 선정된 서라벌농장은 개인 자산이지만 어찌보면 국가적으로 중요한 곳이 아닐 수 없다. 해서 좋든 싫든 큰아들에게 물려주어야한다는 생각으로 2년 넘도록 설득했다는 정병우 회장. 처음엔 들은 척도 않더니 작년 3월에 직장을 울산으로 옮기고 남은 시간에 농장일을 거들기 시작했다. 올해 1월부터는 농장의 전반적인 경영을 맡겼다고 한다. 대를 이어가는 농업. 이런 바람직한 농촌의 모습은 가슴을 뿌듯하게 한다. 소똥냄새 없고 파리 잡을 일 없는 축산농장을 상상 못한 것처럼 어느 집이나 농사일 대물림 할 수 있는 넉넉하고 풍요로운 농촌이 되는 소원성취도 머지않았다. 황재임 기자 사진= 최병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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