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일출과 장미 세송이 비로봉-국망봉-구인사 갈림길-고치령 소백산은 국립공원으로 우리나라 12대 명산 중의 하나이다. 특히 이중환의 “택리지”에 보면 조선 명종 때 남사고 선생이 소백산에 올라 ‘이 산은 사람을 살리는 산’이라 하여 감탄했으며, 저서에서도 태백산과 소백산은 병란과 기근을 피할 수 있는 이른바 ‘십승지지’의 한군데로 꼽았다. 소백산 비로봉 커다란 화강암 표지석에는 1천439.5m라 음각해 두었으며, 뒷면에는 서거정의 시가 적혀 있고, 돌탑이 세워져 있다. 국망봉을 향하니 바람은 더욱 거세다. 어의곡리 갈림길까지 초원의 능선길은 강풍에 매서운 추위가 살갗을 파고들었다. 4시 37분 밧줄이 설치되어 있는 곳을 내려선 후 굴곡이 심한 능선을 오르내리니 큰 바위들이 자주 눈에 띄며 비박굴을 통과한다. 초암사 갈림길을 지나 5시 28분 정상에 서니, 국망봉 1천420.8m를 알리는 표지석 뒤 바위봉우리에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다. 안내판에는 신라 마지막 제56대 경순왕이 나라를 왕건에게 물려주고 명산대찰을 찾아다니다가 제천의 백운면 방학리 궁뜰에 동경부를 짓고 머무를 때, 덕주공주는 월악산의 덕주사에 머무르고 신라회복에 실패한 마의태자는 엄동설한에 베옷 한 벌만 입고 금강산으로 가는 도중 이곳에서 신라의 도읍 경주를 바라보며 망국의 눈물을 흘리다가 월악산의 덕주공주를 찾은 후 개골산으로 향했으며 이후부터 국망봉이라 불렀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바위봉우리에 올라서니 밝은 달빛아래 펼쳐진 전경이 너무너무 멋있다. 북으로 신선봉과 형제봉, 동으로 선달산, 문수산 능선이 멀리서 아련히 다가오고, 남으로는 비로봉, 연화봉, 도솔봉, 묘적봉이 먼 바다로부터 밀려오는 파도처럼 시야를 파고든다. 북동쪽 1,280봉을 지나 1천394m의 상월봉에 올라서니 6시다. 서서히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상월봉에서 북쪽으로 내려서면 늦은맥이 고개 안부다. 우측 능선에는 서리가 많이 내려 나뭇가지에 꼭 눈이 내린 것처럼 흰 빛으로 반짝인다. 곧이어 신선봉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은 신선봉을 거쳐 천태종 총본산인 구인사로 가는 길이다. 6시 50분 일출이 곧 시작될 것 같아 전망이 좋은 적당한 장소에서 일출을 기다리니, 서서히 주위가 밝아 오면서 빛을 잃은 별들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밤새도록 산객들을 비추어 주던 밝은 달마저 어둠과 함께 서쪽 하늘로 밀려나고... 맞은편 능선에는 마치 네온사인을 켜 놓은 듯, 아니 불이 났다고 해야 할까, 능선이 온통 시뻘겋게 타오르더니 6시 56분, 찰나의 순간 너무나 찬란한 불덩어리 하나가 빛을 내뿜으며 불쑥 얼굴을 내밀고 솟아올랐다. 불혹에 수없이 일출을 보아 왔지만 이렇게 화려한 일출은 처음이다. 오늘 일출이야말로 으뜸 중에 으뜸이라 하겠다. 장미꽃 세송이(여성회원 세 분)는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비록 고생은 되지만 정말 잘 왔다면서 해를 향해 절을 한다. 아침 식사는 장미꽃 세송이 덕분에 14구간을 오면서 가장 푸짐한 진수성찬이다. 지금까지는 고작해야 1회용 도시락이었는데 오늘은 포식을 한다. 마당치를 지나 형제봉 삼거리에 도착하니 형제봉은 대간길에서 벗어나 있지만 낙엽이 엄청 쌓여 있어 앉으니 푹신하고 따뜻한 느낌이 든다. 여성회원들은 도저히 박달령까지는 무리일 것 같아 고치령에서 산행을 마치고 부석사를 구경하기로 한다. 그리고 저녁에 박달령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고 먼저 출발한다. 한참을 내려서니 다른 나무들은 벌거숭이인데, 낙엽송은 아직도 노란 옷으로 갈아입고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잠깐 오르막이 나오고 노송들이 제법 숲을 이루고 있다. 다시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10시 24분 고치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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