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安洞)은 양북면 지역으로 선무도로 널리 잘 알려진 골굴사가 있는 마을이다. 경주에서 4번 국도를 따라 관해동 고개 넘어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한수원 본사 부지로 거론되고 있는 장항리이고, 이어서 대종천을 끼고 함월산 기슭에 자리한 안동이다. 안동은 마을이 골짜기 안에 있다고 하여 ‘안골’이라고 불러오던 것을 ‘안동(安洞)’으로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마을이 사람이 살기에 편안하다고 해서 안동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이는 후일 한자표기대로 뜻을 풀면서 생긴 것으로 보인다. 안동은 4번 국도에서 기림사로 들어가는 깊은 골짜기 어귀에 자리한 마을로 기림사가 있는 호암리를 북쪽에 두고 있다. 동쪽에는 와읍과 용동, 남쪽은 읍천, 서쪽은 장항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경주시청에서 25km, 35분 거리에 있다. 기림사 들어가는 어귀마을 ‘양지마을’, ‘야부내’가 안동1리를 이루고 있고, ‘굿마을’, ‘성돌림’, ‘짠바우’, ‘자리밭’이 안동2리를 이루고 있다. 안동은 주로 벼농사에 의존하고 있고, 한우(100두)와 복분자(2정보), 고추를 많이 재배하고 있다. 안동1리는 70가구에서 150명의 주민이, 안동2리는 83가구에서 192명의 주민이 생활하고 있다. 김해김씨 집성촌으로 지금도 30가구 정도가 산다. 이 마을의 최고령자는 김만응(89 연산어른) 할아버지로 나이에 비해 족히 10년은 젊어 보였다. 30~40년전에 담배를 끊었다는 김 할아버지는 마을회관에 나와 마을 내력에 대해 말씀해 주실 정도로 아주 건강했다. 신문왕이 세수하고 쉬었던 곳 양지마을 안동1리 어귀의 양지바른 쪽에 있는 마을로 월성이씨 집성촌이다. (60가구) 동제 이 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9월 9일에 동제를 지낸다. 당목 마을 입구에 있는 포구나무를 당목으로 섬기고 있다. 야부내 안동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뒷산이 마치 가마솥 모양으로 생겼다고 하여 소두방산이라고 부르며 이곳에서 흘러내리는 거랑을 끼고 마을이 있어 ‘야부내’, ‘야부천(也釜川)’이라 부른다. 물이 아주 좋고, 이 물을 이용해 딱종이를 만드는 공장이 있다. (10가구) 당목 이 마을에서는 오래된 소나무가 있었으나 태풍에 쓰러지고 후계목으로 느티나무를 심었다. 동제 이 마을은 지난 2000년부터 동제를 지내지 않는다. 세수방(洗手坊) 마을 냇가에 마치 선녀가 세수하는 것 같이 생긴 ‘세수바우’가 있어 마을이름도 ‘세수방’, ‘세수뱅이’라고 한다. 다른 이야기는 신라 때 신문왕이 동해에서 만파식적을 얻어 돌아갈 때, 이곳에서 세수하고 쉬어 가 ‘세수방’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야부내 안쪽 골짜기 마을로 20년 전까지는 마을이 있었으나 지금은 사람이 안 산다. 산세가 사물처럼 생겨 굿마을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세가 사물(꽹과리, 장구, 북, 징)의 형국이라 ‘굿마을’이라고 한다. 마을 남동쪽에 있는 독산이 징처럼 생겼고, 남쪽 맞은편 산은 장구, 그 사이에도 징채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예전에 풍물놀이대회에서 이 마을 풍물패가 늘 수상하였는데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도로가 나면서 대부분 훼손되었다. 또 지대가 낮고 꺼져있어 ‘굼마을’이라고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양지마을 반대편 음지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음지마을’이라고도 한다. 기림사 입구 도로변에 있다. (35가구) 동제 정월보름에 지내는데 10여년 전부터는 지내지 않는다. 당목 음지마을에 있는 시무나무로 수백년된 것으로 추정된다. 약 300년 된 것으로 추정한다. 짠바우 마치 돌을 쌓은 축대처럼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큰 돌이 쌓인 언덕이 많다고 하여 ‘짠바우’, ‘축암’이라 불렀다고 한다. 안동 서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36가구) 감나무골 감나무가 많은 마을로 짠바우 일부에 속하는 마을이다. 성돌림 음지마을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성이 있었다고 한다. ‘성마을’, ‘성편’이라고도 한다. (14가구) 자리밭 주치(자초, 지초)가 많이 났다고 하여 ‘자리밭’, ‘자지전(紫芝田)’, ‘지전(芝田)’이라 불렀다고 한다. 안동 서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11가구) 동제 매년 10월에 지냈으나 20여년전부터 지내지 않는다. 당목 이 마을의 당나무는 느티나무로 100여년 된 것으로 추정된다. 12곳에 석굴가람 조성 골굴사(骨窟寺) 기림사 창건과 비슷한 시기인 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함월산 남쪽기슭에 있는 석굴사원이다. 이곳 응회암 암벽에는 마애여래입상(磨崖如來立像)이 새겨져 있고 보물 제581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골굴사는 12곳에 석굴을 파고 가람을 조성한 우리나라 유일의 석굴사원이다. 이 불상은 높이 약 4m로 미간에 백호를 음각하고, 수인은 항마인을 결하고 있다. 현재 보호각을 설치해 풍화를 막고 있으나 어깨와 무릎, 손 등이 많이 마모되었다. 골굴사는 최근 설적운 스님에 의해 선무도의 도량으로 거듭났으며, 많은 불사를 일으켜 사세가 많이 확장되었다. 부성재(富成齋) 이 마을 파평윤씨들의 재실로 2000년 10월에 지었다. 정면 3칸의 콘크리트구조물에 골기와를 이은 이 재실은 자리밭에 있다. 구무구적 ‘구룡일옥(九龍一玉)’이라고 하는데 마치 9마리의 용이 기어가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산으로, 성돌림의 동남쪽 와읍과의 경계지점에 있다. 옥에 해당하는 독산은 도로공사 때 훼손되었다. 그 뒤로 마을에 재앙이 많다고 한다. 창림 성돌림 남쪽에 있는 산이다. 솥태정 성돌림 뒤에 있는 산이다. 불매등 창림산 정상부에 있는 등성이다. 한티버던 한팃재 밑에 있는 버덩이다. 아홉 마리 용이 옥을 다투는 ‘구룡일옥(九龍一玉)’ 굴통재 한팃재의 동쪽에서 호암리의 기림사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불령재 세수방 북쪽에서 호암리의 동개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수월산고개 짠바우 서남쪽에서 장항리 요강원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산세가 명당이라 달이 물에 비친다고 해서 수월산이라고 한다. 장항리와 안동리의 경계지점이다. 외세골 야부내 동쪽 산등성이에 있는 버덩, 옛날 기림사를 지을 때 이곳에서 기와를 구워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웅굿골 짠바우 남쪽에 있는 아주 깊은 골짜기이다. 다라골 짠바우와 성돌림 사이 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옛날에 집이 있었던 골짜기라 ‘짓골’이라고도 한다. 찬새밋골 북쪽에 있다. 홈다라골 다라골과 큰다라골 사이에 있는 골짜기로 홈통을 놓았던 골짜기이다. 큰다라골 짠바우 건너편 남쪽에 있는 큰 골짜기이다. 아랫다라골 성돌림 건너편에 있는 골짜기이다. 찬새미골 찬새미가 있는 골짜기로 하천 서쪽에 있다. 함박골 골굴사 입구에 있는 골짜기로 마치 함박꽃과 같은 형국이라고 한다. 인공으로 석축을 쌓은 것처럼 생긴 짠바우 짠바우 천대산 남쪽 기슭에 마치 축대를 쌓아 놓은 것처럼 자연석이 층계를 이루고 있어 ‘짠바우’, ‘축암’이라고 한다. 지금은 도로공사로 대부분 훼손되고 없다. 마귀선녀바위 옛날 마귀선녀가 내려와 놀았다고 하는 성돌림 앞산에 있는 바위, 마귀선녀가 이곳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다 하늘로 올라간 후, 뒤에 마귀선녀의 아들 형제가 내려와 형인 ‘화기’는 불을 피우고 동생은 ‘서기’는 쌀을 냈다고 한다. 지금도 가위, 태를 잘랐던 자리, 당시 불을 피웠던 호롱의 형태가 바위에 남아 있다. 천태산에 있다. 찬새미 찬새밋골에 잇는 샘이다. 앞들 마을 앞에 있는 들이다. 덕곡들 음지마을 뒤편에 있는 들로 덕곡지 밑에 있어 ‘덕곡들’이라고 한다. 새들 성돌림 서쪽에 있는 새로 생긴 들이다. 안평들 짠바우 건너편(남쪽)에 있는 들이다. 축암들 짠바우에 있는 들이다. 감나무들 감나무마을 앞에 있는 들이다. 양북초등학교 안동분교 터 양북초등학교 안동분교가 있었던 터다. 이 학교는 1996년 3월 양북초등학교에 통합되었다. 국립공원해제와 짠바우 경로당 안동은 마을이름처럼 편안한 마을이다. 산세 좋고, 물 좋고, 인심 좋고 교통이 편리하다. 그러나 이 마을은 기림사와 골굴사 등 신라고찰을 안고 있는 함월산을 끼고 있는 마을이라 대부분이 국립공원지구로 묶여 여러가지 제한이 많고, 사유재산권행사가 어려워 주민생활이 어렵다고 한다. 그리고 또 주민들은 짠바우마을에 경로당이 없어 애로사항이 많다고 한다. 경로당 건립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 마을 출신으로는 김영길(70 전 경주군 의원), 김달수(52 예비역 육군대령), 하상구(46 전 경주경찰서장), 김진욱(38 서울 변호사), 김동욱(33 검사) 등이 있다. 마을취재에 협조해주신 김원수 이장님과 마을 어른들에게 감사드린다. 김거름삶 사진 최병구 기자/ 정리 이채근 기자 자문 허계수(족보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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