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는 우리의 생활 혁신은 우리의 미래 자율은 우리의 인격 기계는 내 운명 언제나 지역사회와 함께 #기계와 함께 살아온 삶 이창호 사장(61·세화기계(주)·외동읍 문산리)의 고향은 의성이다. 울산으로 유학을 와 울산공고 기계과와 울산대학교 기계과를 졸업한 뒤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18년 동안 배우고 기계와 씨름하며 이룬 기술로 1995년 외동읍 문산리에 소규모 개인공장을 열었다. 차가운, 때로는 뜨거운 쇠붙이를 완제품으로 만드는 기술이야 말로 자신의 인생 그 자체였다는 이 사장은 기계와는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엔지니어의 자존심이 넘쳐났다. 이 사장은 현대중공업 근무시절 기술진들과 함께 선박엔진 가공기술을 국산화하는데 성공했으며 당시 회사에서 창업지원제도가 있어 큰 뜻을 두고 창업에 도전했다고 했다. 그리고 현재 생산해 내는 모든 완제품을 현대중공업에 납품하고 있다. #어려운 시작, 그러나 기술이 있으면 산다 개인공장에서 출발해 이 사장이 세화기계(주)를 설립한 때는 1996년. 그러나 이듬해 우리나라 경제를 위기에 빠뜨린 IMF는 이 사장도 피할 수 없었다고 한다. 당시 유치했던 6억원의 외자에 대한 환율이 급등해 이자가 11억원을 빌린 것과 같아 자금난으로 고생을 했으며 조선 산업조차도 썩 좋은 시기가 아니어서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이 사장의 최대 무기는 기술력. 조선경기가 점차 호전되면서 지금은 제2공장을 지어 사세를 확장하고 그곳에서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사장의 이 같은 추진은 앞으로 벌어질 기술경쟁에서도 어느 누구에게도 뒤질 수 없다는 엔지니어로서의 강한 자존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사장은 “앞으로 해상공해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 기계식선박엔진부품이 아무래도 환경오염이 많기 때문에 전자식으로 바뀔 것을 대비해 이에 대한 준비를 시작했다”며 “1공장은 단순가공품을, 연구소까지 갖춘 제2공장은 기술연구를 통해 신규 아이템을 개발하고 고난도의 기술을 요하는 제품을 생산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기술력을 더욱 높여 현대중공업에 이어 창원의 두산엔진 쪽으로도 영업을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행정이 기업을 이해해야 기업유치 쉽다 이 사장이 경주에 회사를 창업한 것은 외동읍이 주 거래처인 울산 현대중공업과 인접한 것도 있지만 공장부지가 저렴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이 사장은 “울산은 대기업 중심의 행정을 하고 경주는 지역 특성상 중소기업 위주의 행정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경주가 기업하기 좋은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신속한 업무처리와 기업을 이해하는 친기업 행정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일 때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직원들과 함께 하는 기업으로 세화기계(주)의 사훈은 ‘ 창의는 우리의 생활, 혁신은 우리의 미래, 자율은 우리의 인격’이다. 이 사장의 기술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정신과 직원들이 스스로 자부심을 갖도록 하는 사내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사장은 “직원들 대부분이 젊은 층이 많기 때문에 기술을 배우면 금방 다른 회사로 눈을 돌리는 경우가 있는 반면, 회사분위기가 활기찬 면도 있어 역동적”이라며 “직원들이 평생직장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자녀교육과 복지부문에 혜택을 늘여나가겠다”고 밝혔다. 세화기계(주)는 현재 70여명 규모의 작은 회사지만 금년부터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직원은 학자금 전액을, 대학생은 등록금은 50%를 지원하고 있다. #경주시민상 과분,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기업으로 이 사장은 “솔직히 처음에는 경주시민상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 많이 망설였다”며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며 앞으로 지역사회발전에 많은 일을 하라는 뜻으로 알고 경주시민상 수상자에 걸맞게 건실하고 투명한 기업운영과 지역사회에 봉사의 역할을 다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사장은 또 “나는 엔지니어로서 평생을 기계와 함께해 왔으며 앞으로도 기계와 함께 할 운명이라고 생각한다”며 “최선을 다해 얻은 결과에 대해서는 기꺼이 받아들이고 회사의 이익을 지역사회와 직원들과 함께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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