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할 일을 한 것이 과분한 칭찬으로 돌아온 것 같다”
그녀가 하는 일은 언제나
더불어 함께하는 사랑이 넘쳐…
#이야기 하나, 강하지만 부드럽고 너무 솔직한 그녀
“내속으로 낳은 딸보다도 인연으로 만난 딸(결혼이주여성)들 때문에 마음이 아팠던 적이 더 많았습니다. 손자·손녀(결혼이주여성 2세)들의 손을 잡고 어린이 집에 갔을 때 나에게 이런 행복을 준 딸들에게 너무 감사했습니다”
“피부색이 다르고 우리말을 잘하지 못한다고 동정어린 눈빛을 보내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우리의 이웃, 우리의 형제라고만 생각해 주십시오”
최근 우리사회 전반에 국제결혼이 늘어나면서 경주지역에도 결혼이주여성들이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낯선 환경에서 정 붙이고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우리의 이웃들을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이끌고 있는 (사)자비원 박삼희(56) 이사장.
기자가 박삼희 이사장을 처음 만났을 때가 아마도 지난해 방폐장과 관련해 서울에서 열린 국제세미나에 취재를 갔을 때 였던 것 같다. 그 자리에 참석해 인사를 나눈 박 이사장은 대뜸 기자에게 양북면에 바자회 행사가 있는데 꼭 한번 참석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것도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 않고 투박하면서도 큰 목소리로…….
기자는 박 이사장에 대해 양북면에서 새마을부녀회장을 맡고 있다는 것과 원전과 관련해 지역주민들과 뜻을 같이하며 결혼이주여성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이 알고 있는 전부였다. 그러나 그날 박 이사장에 대한 첫인상은 다소 성급한 듯 하면서도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솔향기가 그윽한 솔직담백함과 바다보다 넓은 마음을 가진 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야기 둘, 가족 모두가 더불어 사는 삶 실천
박 이사장의 결혼이주여성들에 대한 사랑과 지역사회에서의 왕성한 사회봉사 활동 때문에 가족들이 섭섭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았으나 기우에 불과했다.
박 이사장은 “늘 바깥일에 매달리다보니 신랑에게 아이들에게 미안했다”며 “그러나 지금은 가장 든든한 후원자요. 함께 일하는 동지로서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부군인 정연가(65)씨와 아들 훈교(27)씨는 농사를 지으며 박 이사장의 물적 지원을 하고 있고 큰딸 소영(32)씨와 둘째 소나(30)씨는 자비원에서 결혼이주여성들에게 우리말 교육과 문화를 가르치고 교통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만사 제쳐두고 든든한 발이 되어주고 있다. 그리고 박 이사장의 나눔 사랑법을 따라 대학에서 사회복지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이처럼 박 이사장의 가족을 보노라면 마치 사랑의 복지공동체를 보는 것 같다.
#이야기 셋, 딸부자, 손자·손녀부자 박삼희.
박 이사장에게는 딸과 손자·손녀들이 많다. 이국 만리타향에서 의지할 곳 없는 결혼이주여성들에게 대모(代母)로서 온갖 어려움을 같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의 2세를 손자·손녀 이상으로 돌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사)자비원에는 베트남과 캄보디아 등 동남아에서 온 결혼이주여성 40여명이 우리말과 문화, 음식 만들기 등을 배우며 생활하고 있다. 또 이주여성들의 2세들은 어린이 놀이방에서 보살피고 있다. 박 이사장은 “베트남에서 시집온 탐탐이(24)는 생활을 하면서 모은 돈을 고향에 보내는가 하면 쌍둥이 엄마(베트남·29)는 동생들을 초청해 그들이 돈을 벌어서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너무 흐뭇했다”며 “솔직히 내속으로 낳은 딸들이 아플 때보다 데리고 있는 딸들(결혼이주여성)과 손자·손녀들이 아팠을 때가 더 가슴이 아팠다”고 회고했다.
또 “신랑이 지체장애인인 베트남에서 온 딸이 처음에는 살기가 힘들어 이혼하겠다는 말을 할 때 너무 마음이 아팠다”며 “그러나 지금은 모두 한 가족처럼 적응하고 잘사는 모습에 마음이 놓이지만 항상 걱정을 안고 살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그 많은 딸들과 손자·손녀들을 보살피면서도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인데 과분한 칭찬으로 돌아오는 것 같다”는 박 이사장은 “자립을 위해 일을 하고 싶어 하는 딸들이 많은데 꼭 기회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야기 넷, 지역사회 봉사에 언제나 앞장
부산이 고향인 박 이사장은 75년 결혼을 하면서 경주에 정착했다. 그리고 몸은 하나지만 지칠 줄 모르는 왕성한 활동은 이미 지역에서도 정평이 나 있었다.
그리고 지역에 관한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고 있다. 박 이사장은 현재 양북면 새마을부녀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깨끗했던 농촌지역이 폐비닐, 농약병, 생활쓰레기로 오염되자 회원들과 함께 곳곳을 누비며 깨끗한 마을을 가꾸는데 앞장서왔다,
뿐만 아니라 회원들과 함께 홀로 사시는 어르신과 생활이 어려운 어르신들을 위해 김장을 담아 나눠주고 집수리를 해주거나 몸이 편찮으신 어르신들을 보건소로 직접 모시고가는 행동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야기 다섯, 베풀고 나누지만 항상 부족하다는 그녀
박 이사장은 어려운 형편 때문에 공부를 하지 못했다가 경주로 시집을 와서 마흔이 훌쩍 넘어서야 한림야간중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내년에는 더 많은 딸들과 손자·손녀들을 보살피기 위해 대학에 들어가 사회복지분야의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박 이사장은 자신이 지금 이렇게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주위의 많은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개인적으로 일을 시작했지만 경북도와 경주시, 월성원자력본부 그리고 이웃, 새마을부녀회원들 모두의 도움이 없었다면 경주로 시집온 딸들이 보다 나은 혜택을 볼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 딸들에게 한글을 배울 수 있도록 봉사하고 있는 월성원자력 홍보과 직원들에게 감사의 말도 잊지 않았다.
처음에는 곳곳에서 지원을 많이 받기 때문에 옳은 길인가 생각도 해 보았지만 뜻있는 마음을 모아 손길이 필요한 더 많은 딸들과 어려운 이들과 나눌 수 있다면 좋지 않겠느냐는 박 이사장의 말은 ‘더불어 함께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열어가는 실천가 같았다.
박 이사장은 “결혼이주여성들은 비록 피부색과 말, 그리고 풍습이 다르지만 모두가 우리 시민이요 이웃”이라며 “그들에게 동정의 눈빛으로 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와 함께 해주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이사장은 머지않아 월성원자력본부의 도움으로 딸들이 생활할 수 있는 수련관을 짓는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딸들에게 자립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기 위해서이다.
박 이사장은 딸(결혼이주여성)들과 함께 바자회를 열어 마련한 기금으로 베트남에서 시집온 딸 가족에게 고향 방문을 주선했다. 그리고 이 사업은 기관의 지원을 받아 올해부터 폭을 넓혀 더 많은 딸들을 고향에 다녀올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박 이사장은 자비원에서 우리말과 문화, 음식을 만드는 것을 배우고 있는 딸들을 보면서 훌륭한 경주시민으로 더 불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가슴에 품고 오늘도 쉬지 않고 달리고 있다.
이성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