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과 동자꽃이 절정인 유월,
능소화 우거진 담장을 만나다
안강읍 양월2리 평범한 촌가의 야생화 어우러진 꽃 마당을 만나니 마음 한쪽이 살짝 부드러워진다. 흐드러지게 핀 백합과 동자꽃이 한 가득 메운 넉넉한 마당에서 가벼운 인사를 나눈 이종분님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꽃 수다가 이어진다. 어떤 사람이라도 꽃 이야기를 하다보면 금방 친해지고 스스럼이 없어지는 것 같다.
이종분(53)님은 6년전 교통사고로 입원해 있던 당시 가까운 이웃인 주미연씨가 선물한 꽃 화분에 마음을 뺏겨 야생화를 가꾸는 또 다른 삶을 열어가고 있다. 평범한 촌락인 양월2리가 나눔을 실천하는 한사람의 넉넉하고 풍요로운 마음 덕분에 꽃 마을이 되어가고 있다. 야생화를 키우고부터는 대문을 없애고 담장을 낮추어 열려있는 공간을 만드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래서 수줍은 짱백이(강아지)는 이 집의 든든한 지킴이다.
말없이 안아주며 아내가 가는 길에 항상 마음으로 배려하는 남편
스스로 내성적이고 표현이 많이 부족하다며 겸손하신 김용섭(55)님은 마당 한가운데 우뚝 선 석류꽃을 따며, 장남한테 시집와 큰 문제없이 살아준 아내가 고맙다며 웃음 지으신다.
올 4월에 큰 아들이 결혼해 살림 내어주고 홍익대 미대 대학원에 다니는 막내딸이 떠나있으니 지금은 시아버님(85)과 부부만의 단촐한 공간이지만 99세까지 장수하신 시할머니를 모시던 이십여년간은 사대가 함께 했던 공간이었다.
시집온 지 삼년 즈음부터 6년동안 시어머니의 병 수발, 3년여 동안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고생한 일 등 그 힘듬을 이겨내기 위해 시작한 것이 서예다. 평소 무엇이든지 배우기 좋아하고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하는 성품 탓에 서예를 시작한 지도 벌써 19년째이다. 또 3년 정도는 불국사를 매주 방문해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을 가졌고 소박하면서도 진중한 차의 참맛을 느끼게 되어 선다회 활동을 하게 됐다고 한다.
오래도록 전해 내려온 풍습은
사는 재미고 푸근한 정을 알게 한다
추억이 재산이고 많은 경험은 더 풍부한 인생을 살게 한다는 생각으로 가족의 기념일 하나도 빼먹지 않고 챙긴 이종분님은 이번 장남 결혼식에도 오징어가면 함진애비를 세워 함을 보냈다. 결혼식전 성년식 하고 며느리 오는 날 일가친척 모두 모여 집안에 발디딜 틈이 없었다고 한다. 사는 재미고 푸근한 정이라고, 생활 속에 스며온 우리 문화를 경험하고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문화의 흐름은 이어질 것이라고 말씀 하신다.
나이가 조금 더 들면 야생화 뜰 한켠에 작은 찻집을 마련하는 바람도 있으시다. 다실에 가지런한 갖가지 종류의 다기세트가 말갛다. 마음 고요히 가라앉히고 하나하나 닦으면 어떤 참선 수양이 그와 같을까 생각될 정도로 마음이 고요해진다.
천장 낮아 아늑한 황토 다실에 앉아
차 한잔 따르니 그대로 선경이다
김용섭님은 부인이 서예와 다도를 즐기고 야생화를 가꾸며 자기 생활을 하는 모습이 대견스럽다고 하신다. 이제는 퇴근 후 화초에 물을 주며 나누는 꽃과의 대화에 조금씩 재미를 들여가고 있으시다.
화려하고 단아한, 또는 흐드러진 꽃들 모두 제 모습 그대로 곱다. 마당 가운데 중심을 잡고 있는 석류나무에게로 쪼르르 달려가 활짝 웃는 꽃들은 이 부부의 알콩달콩 사는 모습 그대로이다.
전효숙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