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 자랑은 팔불출이라지만 눈물 나도록 고맙지” ‘하늘이 두 쪽 나도 서방님 점심상 차려드리는 것은 틀림 없이 하는’ 아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안강 넓은 뜰에서 손자까지 13대째 터를 일구고 사는 홍종길님. 지난 97년 10월경 출근길에 다리가 당기고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갔는데 경추인대 골화증이라는 원인과 치료법도 명확하지 않은 희귀병 진단을 받았다. 포항선린병원에서 1회, 서울대 병원에서 2~3회 수술을 받았지만 침대위에서 꼼짝 못하는 남편을 2시간마다 돌려 눕히고, 음식 먹여주며, 행여 차도가 있을까 목숨 걸고 한 물리치료 덕분인지 1년 전부터는 조금씩 돌아눕는 것이 가능해졌고 또 욕창 때문에 일으켜앉히면1시간 정도 앉아 있을 수도 있다고 하며 미소를 짓는 아내 이정운님. 정신은 멀쩡하게 있으면서 갑자기 모든 것을 잃어버린 남편. 열혈남아로서 월남전에도 참여하고 군장교로 11년을 복무한 뒤 예비군 중대장을 24년이나 지냈다. 대통령표창 1회, 장관표창 4회, 훤칠하고 반듯한 외모에 어디하나 나무랄 곳 없는 사나이가 스스로 받아들이기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렇게 살면 뭐하냐고 속을 뒤집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본인만큼 하겠냐 싶어 한번도 싫은 내색 없이 감내한 세월이 7년이라고 한다. 그 사이 7세, 4세인 손자도 함께 돌보았고, 구순의 노모도 모셨다. 올해 3월 30일 치매까지 앓던 노모가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은 노모를 요양원에 보내라고 했지만 이정운님은 그렇게 할 수 없다며 끝까지 함께 했다. 치매로 너무 힘들 때는 울며 기도했다며 눈물을 글썽이신다. 결혼 후 믿어온 종교 활동이 힘든 순간순간마다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누워있는 것 외에는 걱정이 없다고 하시는 홍종길님은 사랑스럽게 커가는 손자들의 재롱을 보며 행복은 가까운 곳, 주어진 여건에서 느낄 수 있다고 하시며 “젊은 사람은 위만 보고 살지만 우리 같은 나이가 되면 아래를 보고 살아야 한다”고 웃으신다. 주변 사람을 밝게 하는 빛을 가진 아내는 병문안 온 친구들에게 ‘가족에게 잘해라’며 마음의 문을 연 남편이 2004년 이후로는 친구도 만나고 사회활동도 하라고 떠민단다. 이정운님은 남편이 아프기 전에는 적극적인 대외활동을 한 활동파다. 경주시립합창단에서 소프라노를 맡기도 했고, 지금도 경주문화원내 실버합창단으로 일주일에 한번 참석하고 있다. 노래를 너무 좋아하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하고 문화유산 해설에 관심이 많은 지금. 주어지 여건에서 열심히 감사하며 생활하고 있는 이정운님에게는 주변 사람을 밝게 하는 빛이 있다. 친구들이 주부 우울증이니 하며 힘들어 할 때도 눈코 뜰 새 없이 살아와서 아플 시간이 없었다는 이정운님. 힘든 남편과 함께 한 12년.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았다. 전효숙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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