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초파일에만 개방하는 봉암사를 내려다보며… 지름티재-희양산-배너미평전-이만봉-곰틀봉-백화산-황학산-이화령 지름티재에서 희양산까지는 계속되는 오르막 구간으로, 바위지대를 오르는데 노송사이로 붉은 불덩어리가 살며시 고개를 내밀며 동쪽 하늘 구름사이에서 찬란한 빛을 발한다. 잠시후 갈림길에서 직진하면 세미클라이밍을 해야 하는 급경사 위험구간이 나오는데 특히 겨울철 눈과 얼음이 얼었을 때는 각별히 조심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세미클라이밍 지대를 힘들게 올라서니 6시 40분 희양산 정상 갈림길이다. 왼쪽은 대간길이고 오른쪽으로 5분정도 오르면 큰바위로 이루어진 998m의 희양산 정상이다. 앞에는 방금 지나온 구왕봉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그 위를 여러마리의 까마귀가 아침 하늘을 날아다닌다. 발아래는 수십길의 화강암 낭떠러지로 봉암사가 아름답게 내려다보이고, 간식을 먹으려 하지만 차가운 날씨에다 찬바람까지 불어 음식이 제대로 넘어가지 않는다. 봉암사는 우리나라 절집 가운데 가장 찾아가기가 어려운 곳이다. 그 이유는 사월 초파일 하루만 일반인에게 산문을 개방하는 수도도량이기 때문이다. 희양산은 옛부터 `절이 들어서지 않으면 도적이 들끓을 자리`로 여겨져 왔으며, 봉암사는 신라하대 구산선문의 하나인 희양산파의 종찰로서 불교도들의 선 도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리고 창건주인 지증대사의 부도와 부도비가 있는데 둘 다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부도비는 신라하대의 명문장가인 고운 최치원이 지은 유명한 `사산비명`의 하나이다. 계곡에는 거대한 암반과 기암괴석이 맑은 물과 어우러져 폭포와 소를 만들고 아름다운 백운대와 마애불이 있다. 희양산 정상에서 되돌아 나와 북쪽 능선을 타면 성벽이 나오고 신라 옛 산성이라고 전하는 희양산성이 있다. 성벽을 따르다가 로프가 설치된 바위지대를 어렵게 올라선 후 오른쪽으로 꺾어 오르면 성벽이 끝난다. 시루봉과 963m봉 사이의 배너미평전은 능선상에 분지를 이룬 특이한 곳으로 야영터와 숲 좌측에 계곡이 있고 옛 성터와 집터가 있는데, 옛날 천지개벽을 할 당시 배가 올라 왔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곳에는 故지현옥 산악인을 추모하는 뜻에서 세운 서원대학교 산악부 표지목이 안타깝게도 누군가에 의해 뽑힌 채 쓰러져 있다. 동남방향의 대간길은 이화령까지 급하게 돌아나가게 되며 이만봉까지 이어지는 대간 마루금은 거대한 자연성곽처럼 날카롭게 이어져 나가고, 급경사의 이만이골에는 도막마을의 민가 4~5채가 보이고 990m의 이만봉을 8시 36분에 올라선다.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2만여 가구가 피난을 들어와서 붙여졌다는 전설이 있다. 아찔한 절벽과 미끄러지기 쉬운 바위길을 내려서면 안부가 나오고 돌길을 다시 오르면 조금은 이상한 이름을 가진 915.3m의 곰틀봉에 도착하게 된다. 옛날에는 반달곰이 많이 살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전망이 좋아 북으로는 이화령 고개가 손에 잡힐 듯 내려다보이고 그 너머에는 조령산 줄기가 다가온다. 동쪽으로는 백화산이 그 웅장한 자태를 자랑이라도 하듯이 서 있으며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면 이만봉이 뾰족하게 솟아 있다. 사다리재와 평전티를 지나 바위지대를 오르내리는데 단풍나무는 붉고 고운 몸매를 한껏 자랑하고, 급경사 오르막을 오르니 10시 37분 1063.5m의 표지석이 세워진 백화산 정상이다.희양산성에서 백화산까지 길은 양호 하지만 바닥에 작은 돌들이 많아서 발바닥이 아플 정도로 걷기에는 불편하다. 정상에서 동쪽으로 문경시가 바둑판처럼 내려다보이고 그 너머로 운달산과 지나온 이만봉, 시루봉, 희양산 등이 낙타등처럼 파노라마를 이루고 있으며, 분지리 골짜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백화산은 겨울철 산봉우리의 눈덮인 모습이 마치 하얀 천을 씌운 듯 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과거 박해받던 천주교인들의 은신처로 이용되었다. 헬기장에서 황학산을 향해 가다 대간 종주자 두 분을 만나고, 산불이 난 경사진 초원의 억새밭을 지나 910m의 황학산 정상에 올라서니, 돌탑 옆에 부부 4쌍이 쉬고 있다. 산판도로가 나오고 군 참호 시설도 곳곳에 보인다. 첫번째 헬기장 이후 7-8분 정도 가시덤불 속을 뚫고 지나가면 이후부터 발에 부딪히는 게 토종밤이지만 그걸 보고도 그냥 지나치려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어쩌랴! 아직도 가야할 길(조령 3관문)은 멀기만 하고 배낭의 무게는 최소한으로 줄여야 할 처지니... 밤나무 지대를 지나면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고슴도치 한마리가 길 가운데 밤송이와 뒤섞여 있는 것을 보고 건드리니 살아서 꿈틀 거린다. 임도와 조봉을 지나 군사 통제지역을 우회하여 계단을 내려서면 529m의 이화령이며 시계는 13시 정각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잘 모르는 사람들은 문경새재가 여기인 줄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연풍쪽을 바라보는 조망도 멋지며, 이화령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파전과 동동주를 시켜 나누어 마신다. 모두가 애주가들이지만 종주 중에는 처음 마시는 곡차라 혹시나 취기가 오를까 걱정이 되어 서로 많이 마시길 권하면서도 양보(?)하는 미덕도 발휘하니, 푸근한 인심과 술맛에 도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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