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숙 여사, 57년을 하루같이… “시부모님 의지해 살고, 아들 의지해 살았지요. 돌아보니 까마득한 세월인데 그때는 살기 급급해서 앞만 보고 지냈어요. 머잖아 돌아가면 만나야 할텐데, 서로 알아보기나 할런지. 그분 목소리도 모습도 아득하네요” 현충일을 며칠 앞두고 찾아간 내남면 화곡리의 이성숙 여사의 첫 말씀이다. 1928년 외동읍 냉천리에서 태어나 시숙모의 중매로 1950년 화곡으로 시집 온 이성숙 여사는 59년째 화곡땅을 지키며떠나지 않고 있다. 1951년 아들을 얻은 기쁨도 잠시, 52년 4월에 남편 권의영 선생은 전장으로 떠났고 느닷없는 전사 통지서를 든 군인이 집으로 찾아온 것이 9월이었다고 한다. 떠날때 장티푸스 앓던 부인을 못내 안쓰러워하던 권의영 선생은 포천 전투에서 전사했고, 시아버지와 주위 분들이 유해를 모셔와 집 가까운 곳에 안치했다. 젊은 시절에 묘소가 가까워서 자주 찾을 수 있었으니 큰 위안이 됐다는 말씀과 함께 “그때 심정은 말로 할 수가 없지요. 내 하나인 줄 알았는데 현충일 날 황성숲에 모인 수천명의 유가족들을 보면서, 남편은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버렸는데 자식 잘 기르고 시부모님 봉양하며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지요. 아들이 자라면서 어찌나 착하고 공부를 잘하던지 그것이 큰 보람이었어요” 이성숙 여사가 자랑스러워하는 그 아들은 대구에서 성공한 기업가로서 주변이나 고향 경주를 위해서 봉사를 아끼지 않고 있는 (주)태흥상사 권순호 사장이다. 권 사장의 효심은 누구나 인정할 만큼 대단하다고 소문이 나있다. “아무리 세심하게 보살핀들 어머님의 외로움을 덜어드릴 수 있겠습니까. 안타까울 따름이지요”라는 권 사장은 이날도 팔순을 넘긴 모친을 위해 새로 들여온 건강식품을 챙겼다. 요즘도 텃밭을 일구어 고추농사를 하신다는 이성숙 여사는 며느리 이연우씨와 손주 권용신, 권용의, 손녀 권지원씨가 한평생 잘 지은 농사라고 자랑하신다. “중국에 지진이 나서 어린애들이 깔려죽는 것을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팠지요. 이 세상에 무서운 전쟁이나 지진이 사라지길 빌어봅니다” 의연한 어머니의 가슴이 녹아내려 이 나라의 밑거름의 되었음을 다시 한번 되짚어보게 한다. 님께서 가신 길은 영광의 길이옵기에……. 황명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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