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은 형태로 그려지지 않는다. 서쪽 하늘 가득히 내리는 저녁 노을을 바라보면서 아무 느낌도 받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붉은 하늘이 뜨거운 태양을 머금고 토해내는 진한 울림의 감동을, 어떤 사람은 쓰러져가는 빛의 여운을 인생의 노년에 비유되는 허무감을, 또는 종교적인 숭고한 영혼의 빛으로 생각하기도 할 것이다. 한 화가가 이러한 노을 풍경을 그린다면, 사실화풍의 화가는 붉게 물든 구름과 역광의 실루엣으로 비치는 나무, 건물, 사람같은 자연의 형상을 적절하게 조화시켜 화면을 꾸밀 것이다. 이에 비해 추상화가는 시각적으로 들어오는 자연물상의 형태를 떠나 가슴속에 내재된 감정을 색채나 점, 선 같은 미술적 요소를 동원하여 화면을 구성할 것이다. 더 단순하고 직접적으로 노을을 표현한다면 화면 전체를 붉은 물감으로 덮어 버리는 작업도 가능할 것이다. 이럴 경우 우리는 사실화와 추상화 둘중에서 어느 쪽이 더 직관적인 호소력을 지닌 그림인가에 대해서는 감상자의 견해에 따라 다르긴 할지라도 추상화쪽이 더 솔직한 감정의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 첼리스트가 연주하는 첼로의 소리에는 가사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곡을 들으면서 가슴에 어떤 울림을 받는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꼭 사물에 대한 설명을 곁들이지 않아도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을 색깔 한 가지 만으로도 전달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 그림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 마트 로스코(Ma가 Rothko, 1903~1970)의 작품이다. 그는 제목을 붙이지 않고 라고 하여 그림에 사용된 색깔 이름만 나열하였다. 노을이나 구름은 가없는 하늘을 가득 채운다. 구름은 쉴새없이 모양이 변한다. 빛을 투과시키도 반사시키기도 한다. 실상은 반사체이지만 발광체와 같이 빛난다. 노을도 그러하다. 로스코의 색깔도 화면을 가득 채운다. 무한한 확장감을 주는 비정형의 가장자리(soft edge)때문이다. 색의 교묘한 대비로 화면 뒤로부터 빛이 새어나오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 마치 구름과 같다. 저녁 노을이 타듯 그의 그림도 빛을 발하며 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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