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해 남
(수필가, 대구광역시의회 경제교통전문위원)
참 오랜만에 불국사를 찾았다. 73년 불국사 주변 정리 사업이 끝난 후로 발걸음을 하지 않았으니 30년이 훌쩍 넘은 것 같다. 불국사는 내 마음의 성지였다. 초등학교 시절 단골 소풍장소였고, 고향 마을 뒷산에 오르면 맨 먼저 두 손 모으며 바라보던 곳이었다. 별빛이 유난히 밝은 날이면 토함산 준령을 타고 내려오는 바람소릴 따라 불국사의 은은한 풍경소리가 가슴으로 울려오곤 했다.
그동안 발걸음을 뚝 끊은 것은 군사정권의 문화유적지 보존 개발사업이 대대적으로 전개한 때문이다.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도 없이 유적지 둘레에 시멘트 담장을 세우고, 코밑에다 주차장을 만들어버렸다.
불국사도 마찬가지였다. 불국사 입구에 이르는 야산을 뭉개어버리고 인공 동산을 만들었다. 토함산에서 자라지도 않는 생경한 나무들을 후다닥 옮겨 심었고 관광객을 유치한답시고 천년고찰에 바짝 붙여 주차장을 만들어버렸다. 불과 1년 만에 불국사 주변 환경이 180도로 바뀌어버린 셈이었다. 군 작전을 방불케 하는 그때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향토예비군과 민방위대원이 동원되었고, 경주시내 전 행정기관의 직원이 차출되어 작업에 나섰다.
서슬 퍼런 청와대 행정관이 직접 현장에서 메가폰을 잡고 지휘하면서 잠시라도 허리를 펴고 있으면 단번에 “저기 일 안하고 놀고 있는 ⅩⅩ 누구야!”하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급기야 K경주시장이 과로로 쓰러져 입원하는 사태까지 벌어졌고, 모든 일은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졌다. 안타까워하는 풍경소리만 추녀 끝을 흔들었을 뿐이다.
그 때의 전투(?) 덕에 불국사까지 쉽게 올라갈 수 있기는 하다. 그런데도 내 마음이 늘 허전한 연유가 무엇일까? 우리나라 문화를 높이 평가해 오던 어느 외국학자는 그 후로 왜 한국을 찾지 않았을까? 그 분은 어느 지인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경주에 무슨 문화유적이 있습니까? 시멘트 문화지”
그렇다.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시멘트를 걷어내자. 옛 것은 옛 것으로 있을 때 향기가 난다. 불국사주차장은 2㎞쯤 밑으로 조성하고 한국의 정취를 풍기는 관광 상품 거리를 만들자. 신라적 냄새가 나는 옛집을 만들면 어떨까? 야산을 복원하여 오솔길도 만들고, 참새도, 굴뚝새도, 뻐꾸기도 불러들이자. 이젠 옛 우리의 문화를 한 단계 승화시켜 전 세계에 내어놓을 때이다. 전 세계 문화의 길이 경주로 향하도록 새로운 문화의 수도를 만드는 일은 우리들의 몫이다.
신라인이 그린 불국(佛國), 이상적인 피안(彼岸)의 세계가 우리 후손들에게 펼쳐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