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장대의 ‘금장(金藏)’ → 금지팡이 ‘금장(金丈)’으로 3기8괴 금장낙안 신흥주거지역으로 금장(金丈)은 현곡면사무소가 있는 마을로 형산강 서쪽, 와룡산(동국대학교를 감싸고 있는 산) 북쪽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서천과 알천이 서로 만나 얼싸안고 빙글빙글 춤을 추면서 이룬 애기청소와 깎아지른 듯 솟아 있는 금장대가 어우러진 황홀한 경치에 날아가던 기러기조차 쉬어갔다고 하여 신라 3기8괴(三奇八怪)의 하나인 ‘금장낙안(金藏落雁)’으로 꼽혔던 금장대(金藏臺)가 있어 ‘금장(金藏)’ 이라 불렀다고 한다. 또한 옛날 이곳에 한 스님이 살고 있었는데, 금(金)지팡이에 시주바랑을 달아 놓으면 그 지팡이가 혼자 나가서 식량을 시주해 왔으므로 ‘금장(金丈)’ 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본래 ‘금장’, ‘옹기골’, ‘새각단’, ‘석장’ 등이 금장리를 이루었으나 석장 온방골에 동국대학교가 들어서면서 1987년 1월 1일 당시 현곡면 금장2리였던 석장이 경주시 석장동으로 분리되어 성건동으로 편입되었다. 그때 와룡산 정상부를 마을의 경계로 나누다보니 금장대와 암각화 애기청소 등 금장리 마을이름의 진원지와 주요 유적들이 지금은 석장동으로 편입된 상황이라 아쉽다. 황홀한 경치에 기러기 떨어져 ‘금장낙안(金藏落雁)’ 금장은 면지역의 농촌마을이었다. 그러나 형산강을 사이에 두고 도심과 인접해 있고 경관 좋은 형산강변에 위치한 이로움 때문에 집단주거지역으로 각광 받으면서 인구가 급팽창하고, 급속히 도시화 되어가고 있다. 계속 인구가 늘어나면서 올해 금장초등학교와 화랑중학교가 이 마을에 새로 문을 열었다. 금장은 현재 6개의 행정리로 구획되어 있으며 총 3천813세대에 1만2천8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금장1리는 현곡면사무소가 있는 ‘금장’과 나원초등학교 일대의 ‘새각단’으로 이루어진 마을로 최근에 우남리버빌 등 다세대 주택이 들어섰다. 총 556세대에 1천400명의 주민이 살고 있고, 이중 자연부락 주민은 200여 세대이다. 이 가운데 100여세대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금장2리는 철길 건너편 산기슭에 있는 ‘옹기골’로 88세대에 주민 수는 228명이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이 농민으로 주로 벼농사와 축산에 종사하고 있고 한우 150두 정도를 기르고 있다. 금장3·4·5·6리는 지난 1995년경부터 들어서기 시작한 아파트단지에 해당한다. 나원초등학교 앞의 금성아파트와 최근에 들어선 세정과 주공아파트, 금장초등, 화랑중학교 등이 금장3리에 해당하고, 삼성아파트가 금장4리, 신안아파트가 금장5리, 신흥과 세한이 금장6리를 이루고 있다. 이 마을 최고령자는 금장마을 면사무소 앞에 사시는 올해 95살의 김필선(백유동댁) 할머니로 백상승 경주시장의 모친이다. 육류보다는 주로 채식을 즐겨 자시고, 술과 담배는 일체하지 않는다고 한다. 스스로 시주하는 금지팡이 금장(金丈) 금장낙안(金藏落雁)이라 하여 신라 때부터 3기8괴(三奇八怪)의 하나로 꼽을 만큼 경치가 빼어나 날아가던 기러기도 쉬어갔다고 하는 금장대(金藏臺)가 있어서 ‘금장(金藏)’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후에 암자에 살던 한 스님이 금(金)지팡이에 시주바랑을 달아 놓으면 그 지팡이가 혼자 나가서 식량을 시주를 해 왔으므로 ‘금장(金丈)’이라 불렀다고 한다. 동제 이 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12월 25일 오전 10시에 동제를 지낸다. 당나무 본래 있던 나무는 현재 삼성아파트 앞 강변에 소나무 숲이 있었으나 홍수로 떠내려가고 지금은 새로 심은 느티나무로 수령 80년 정도 되었다. 애기청소로 가는 도로 옆에 있다. 빌라를 지으면서 뿌리를 다쳐 나무의 상태가 그리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새각단 금장마을 북쪽의 나원초등학교 주변 지역으로 원래 하천부지였으나 일본인들이 과수원으로 개간하고 새로 마을을 이루었다. 지금 이곳은 아파트단지가 형성되어 있다. 가삼골 금장의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이 마을에서 가삼(家蔘:인삼)을 재배하였다고 해서 가삼동(加蔘洞)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혹은 홍수 때 강물이 불어나 여기에 가삼(가자미)을 잡았다고 하여 ‘까자미골’, ‘까잠골’이라 부른다고도 한다. 또 약 120년 전부터 이 마을에서 옹기를 많이 생산하였는데 그 후 마을이름도 ‘옹기골’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970년 중반까지도 옹기생산이 활발하였으나 지금은 가마가 없다. 옹기골의 윗마을을 ‘웃점’, 아랫마을을 ‘아랫점’이라고 구분하여 부르기도 한다. 이 마을 주민 설관주씨(전 현곡새마을금고 이사장)에 따르면 “80년도 경지정리 때 신라시대 토기조각과 기와조각들이 많이 출토되었으므로 신라시대부터 옹기를 생산했을 것”이라고 했다. 웃점 옹기골의 위쪽 마을. 아랫점 옹기골의 아래쪽 마을. 돌기둥 팔각정자 사격연습으로 무너져 금장대(金藏臺, 琴藏臺) 황홀한 경치에 취해 날아가던 기러기가 떨어졌다는 ‘금장낙안(金藏落雁)’으로 신라 3기8괴(三奇八怪)의 하나로 꼽혔던 금장대(金藏臺)는 와룡산이 동쪽으로 뻗어 내리다가 형산강의 서천거랑과 알천거랑의 합수하는 지점에 이르러 높은 바위벼랑을 이룬 채 우뚝 솟은 산 정상부이다. 이곳에 돌기둥으로 된 8각정의 정자가 있었으나 6.25당시 현곡지서에서 돌기둥을 사격표적으로 사용하여 무너져 버렸다고 한다. 또 이곳 남면의 애기청소가 있는 높이2m, 폭9m의 암벽에는 방패형, 도토리형, 꽃문양 등의 선사시대 암각화 27점이 경상북도 기념물 제98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금장나리 금장에서 황성동으로 건너가던 나루가 있었던 터로 ‘금장도선장’이라고도 한다. 지금도 배를 묶었던 돌 말뚝이 나루터에 남아 있다. 와룡산 금장리와 석장리 사이에 있는 산으로 지금의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를 에워싸고 있는 산이다. 모양이 마치 용이 누워있는 형국을 하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앞산 이곳에 금장대가 있었다. 금장마을의 앞쪽에 있다고 하여 앞산이라고 부른다. 부첫등 옛날 돌부처가 있었다고 하는 등성이로 이처넛골 동쪽에 있다. 고개에 돌부처가 있었는데 빌면 소원을 들어준다고 전해온다. 아내 찾다가 넋나간 남편 온방골고개 가삼동 아랫마을에서 동국대학교 정각원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동국대학교가 있는 온방골로 넘어가는 고개다. 고개가 짧아 단숨에 넘나든다고 하여 ‘일천고개’라고 한다. 공동산고개 가삼골의 남서쪽에 있는 고개로 그 산기슭에 공동묘지가 있다. 등반골 석장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금장 서쪽에 있다. 이처넋골 기도를 하러갔던 아내를 찾아갔던 남편이 아내를 찾지 못해 넋을 잃어 버려서 ‘이처넋골’이라고 했다고 한다. 금장 서쪽에 있다. 불썬바웃골 이처넋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전에 돌부처가 있었다고 하며 이곳에서 밝을 밝히고 치성을 드리면 소원을 이룬다고 한다. 개바대 개바대보의 물로 농사를 짓는 들로 금장 북쪽에 있다. 신라 때 큰물이 나서 이 일대가 물바다를 이루었으므로 ‘개바대’라고 했다고 한다. 등나무 서쪽 들이다. 세평들 금장 북쪽 들로 안강-현곡간 새로난 도로 동쪽에 있는 들이다. 재두들 옹기점 앞의 들로 이곳에서 기와조각이 많이 나와 그것으로 논둑을 쌓았다고 하여 ‘재뚝들’이라고 부르다가 변하여 ‘재두들’이 되었다고 한다. 금광못 가삼골 서북쪽에 있는 못으로 ‘금광지(金光地)’, ‘금광제(金光堤)’라고도 한다. 도시계획도로, 인터체인지 접근로 개설해야 금장은 최근에 각종 아파트 등 집단주거지역으로 급부상하면서 인구도 늘어나고 도시화되면서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각종 기반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아 주민들의 어려움이 많다. 특히 금장1·2리 자연부락의 경우 늘어나는 인구와 차량으로 기존의 마을길로는 한계가 있어 불편이 많다고 한다. 따라서 주민들은 면사무소 앞길을 도시계획도로로 개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면사무소에서 마을회관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무허가건물이 점유하고 있는데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한다. 옹기골의 경우도 계속해서 신축건물은 들어서고 있으나 마을진입로와 마을안길이 좁아 통행에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빠른 시일 내에 도시계획도로의 개설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한다. 또 안강-현곡간 도로가 개설되면서 옹기골 아랫마을에 인터체인지가 생겼는데 교차로를 입체화하면서 노면이 높아져 마을에서 도로를 이용하기가 어렵고, 오히려 마을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역효과를 내고 있다. 이에 대한 개선이 요구된다. 그리고 옹기골에서 내려오는 생활폐수가 세평들로 내려오는데 기존 도랑이 좁고, 하천정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비만 오면 범람하여 농민들의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주민들은 세평들을 가로질러 오류까지 나 있는 하천을 정비하여 범람을 막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백상승(73 경주시장), 주혜성(59 신광초등학교 교감), 최용석(52 경농연구원), 김만진(40 공군중령) 등이 이 마을 출신이다. 바쁘신 가운데 마을취재에 협조해주신 박태수 현곡면장을 비롯한 최만도(금장1리) 이장, 오득양(금장2리) 이장 등 마을 주민들에게 감사드린다. 김거름삶 사진 최병구 기자/ 정리 이채근 기자 자문 허계수(족보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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