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하얀 꽃이 흐드러지게 핀 5월이다. 감포 전촌에서 호동리(虎洞里)로 들어가는 10리에 이르는 꼬불꼬불한 긴 골짜기에도 달콤한 아카시아 향기가 은은하게 풍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질 좋은 맥반석이 난다고 알려진 호동. 아직 오염되지 않은 깊은 골짜기에 자리한 탓에 도랑에 흐르는 물을 그냥 퍼 먹어도 되는 깨끗한 자연상태를 보존하고 있다. 마을 앞에 흐르는 시냇물이 얼마나 맑은지 도랑에 이끼 하나 없고 도랑바닥의 돌 자갈이 말갛다.
호동은 송림으로 유명한 감포 전촌해수욕장 북서쪽 골짜기에 있다. 동쪽은 오류리와 감포리, 남쪽은 전동리와 팔조리, 서쪽은 노동리와 양북면 와읍리, 용동리, 북쪽은 포항시 장기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깊은 골짜기에 자리한 산골마을로 겹겹이 둘러싸인 산들과 그 산들이 빚어 놓은 골짜기를 따라 굽이굽이 돌아가며 그 언덕바지를 의지하여 터 잡고 사는 10가구 내외의 작은 마을 3개로 이루어졌다.
지형이 마치 네 마리의 범이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 같다고 해 ‘너범’, ‘사호리(四虎里)’라고 불렀다고 한다.
경주에서 국도 4호선을 타고 감포 전촌에서 전촌다리를 건너기 전에 왼쪽으로 거랑둑길을 따라 약 4km 들어가면 호동의 힌티마을에 이른다. 이곳에서 몇 굽이를 더 돌아 들어가면 아랫너범에 이르고, 웃너범은 다시 산모롱이 몇개를 돌아 거의 산 정상부에 있다.
웃너범에 서면 동해바다가 저만치에 보이고, 올망졸망한 산봉우리들이 발아래에 도열해 있는 듯 경치가 장관이다.
양북 어일을 지나 노동리에서 달밭골재를 넘어 웃너범마을로 가는 지름길이 있지만 아직 길이 좁고 험해 불편하다. 경주시청에서 36km, 45분 거리이다.
청청지역으로 인진쑥, 미나리 재배
호동은 총 38가구에 80여명의 주민이 생활하고 있다. 주로 벼농사에 의존하고 있고, 단감과 인진쑥, 미나리, 고추, 배추 등 밭농사를 하고, 한우 150두 정도를 기른다. 옛날에는 골짝골짜기에 집이 들어서 200호가 넘는 큰 마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작은 산골마을로 마을주민 대부분이 70~80대 노인으로 구성된 초고령화 마을이 되었다.
이 마을 최고령자는 올해 92살의 김우순 할머니로 불국사 진현에서 스물에 이 마을로 시집와 5남매를 기르며 평생을 이 골짜기에서 살았다고 한다. 병원에 간적도 없고, 아직 아픈 데가 없다는 김 할머니는 100수를 바라보는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곱고 건강했다. 눈과 귀도 총명하고, 아직 허리도 굽지 않았다. 아직은 시집가도 될 만큼 곱고 건강하다고 했더니 “어디 좋은 영감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맞받아 쳤다. 요즘도 아침마다 꾸준하게 운동을 한다는 김 할머니는 사진을 찍는 동안에도 연신 덩실덩실 춤을 추며 즐거워했다. 저렇듯 즐거운 마음으로 살았으니 건강할 수밖에 없겠다 싶다. 뭐든지 잘 먹고 조금씩 먹는다고 건강의 비결을 살짝 일러 주었다.
범 네마리 나란히 앉아
호동(虎洞) 마을의 지형이 마치 범 네마리가 나란히 앉아있는 것 같다고 하여 ‘너범’, ‘사호리(四虎里)’라고 불렀다. 또 옛날 이 마을에 숲이 울창하여 범이 살았다고 해서 ‘호동’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호동은 ‘아릿너범’과 ‘웃너범’, ‘힌티’ 등 3개 마을로 이루어졌다.
아릿너범 너범의 아래쪽에 있는 마을로 ‘아릿너범’, ‘하리(下里)’라고 부른다. 김해허씨 집성촌. (15가구)
웃너범 너범의 위쪽에 있는 마을로 ‘웃너범’, ‘상리(上里)’라고 부른다. 월성이씨 집성촌이다. (12가구)
힌티 백토(白土 규조토)가 나는 산 고개 아래에 마을이 있어 ‘힌티’, ‘힌팃골’, ‘백현(白峴)’이라고 한다. 가장 아래쪽 골짜기 입구에 있는 마을로 경주최씨 집성촌이다. (7가구)
당나무 웃너범과 아랫너범에 각각 당나무가 있다. 웃너범에는 오래된 소나무가 당나무로 섬겨지고 있었는데 몇년전 솔잎혹파리로 죽고 지금은 느티나무를 새로 심었다. 아랫너범은 말채나무로 수령이 500년 정도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말채나무는 이미 절반 정도가 죽어 가고 있는 상태였다.
동제 이 마을은 웃너범과 아랫너범이 각각 음력 삼월삼짓날 동제를 지낸다.
옥녀가 배를 짜는 형국
옥녀봉 호동리, 노동리 사이에 있는 산으로 옥녀바위가 있다. 옥녀가 이곳에서 태어나고 참샘에서 물을 떠다 옥녀를 키웠다고 하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또 산 형상이 옥녀가 배를 짜는 형국이라고 한다. 노동리에 ‘도토마리’라는 지명도 남아 있다.
태숨산 호동리와 오류리 사이에 있는 산으로 명지가 있는데 아직 찾지 못해 숨어 있다고 하여 태가 숨어 있다는 뜻으로 ‘태숨산’이라고 했다고 한다. 너범에 천석꾼이 나는 명당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고 한다.
뻑대산 호동 북쪽에 오류와 장기, 양북의 사이에 있는 산으로 측량의 기준점인 폴대가 있는 산이다.
안산 호동마을 앞에 있는 산으로 마을의 안산이라 ‘안산’이라고 한다.
뒷등 마을 뒷등성이로 옛날 군사훈련장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 일대에서 삼지창이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꼬불꼬불한 고갯길 ‘꼬끄랑재’
꼬끄랑재 힌티의 동북쪽에서 오류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바위산으로 지형이 꼬불꼬불하여 ‘꼬끄랑재’, ‘곡제현(曲梯峴)’이라고도 한다. 이 길이 옛날에 감포로 넘어가는 주요 길이었다.
늘밭골재 늘밭골 위에 있는 고개로 호동리 윗너범에서 팔조리로 넘어가는 고개다.
달밭골재 웃너범에서 노동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달밭골 위에 있다.
굇재 아랫너범에서 용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괴밑위에 있는 고개다. 권이, 용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노루미기 호동에서 오류골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선바우 아랫너범에서 윗너범으로 가는 길 옆(서쪽)에 바위 2개가 서 있어 선바위라고 한다. 영험해서 기도처라고 한다. 지금은 숲이 우거져 길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괴양바우재 아랫너범에서 오류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괴양바우가 있다.
선돌배기(후바우) 아랫너범 북쪽에 2개의 바위가 서 있었는데 이곳에 묘를 선 사람이 묘에 안 좋다고 해서 돌을 깼는데 그러고는 그 집이 망했다고 한다. 지금은 없다.
괴양바우 아랫너범에서 오류로 넘어가는 고개에 있는 바위로 이곳에서 빌면 아들 낳는다고 해서 지금도 빌러오는 사람이 많다.
한 호박이 되면 나가야
괴밑골 괴양바우의 아래쪽에 있는 골짜기로 윗너범 북쪽이 된다. 방앗간의 호박의 괴에 6개의 발이 있듯이 이곳도 6집 이상 살지 못한다고 했다. 또 한 호박이 되면 나가야 된다고 하여 어느 정도 살림이 되면 이사했다고 한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다.
선창골 힌팃골 서쪽에 있는 괴밑골 안골짜기 중에 동쪽으로 난 골짜기이다.
웅골 힌팃골의 서쪽에 있는 괴밑골 안골짜기 중에 서쪽으로 난 골짜기이다.
절텟골 절터가 있는 골짜기로 괴밑골 안골짜기 중에 가운데에 있는 골짜기이다.
늘밭골 지형이 늘어진 듯이 밋밋한 골짜기로 힌팃골 서쪽에 있다.
달밭골 늘밭골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월전곡(月田谷)이라고도 한다.
뻣나무골 벚나무가 있었던 골짜기로 괴밑골 서쪽에 있다.
오이골 힌팃골의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오니골’이라고도 한다. 오얏이 많았다고 한다.
중산골 괴밑골 들어가는 어귀에 있는 골짜기이다.
등잔골 지형이 마치 등잔처럼 생겨 ‘등잔골’이라고 한다.
오릿내미 오류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골짜기로 마을 북쪽 선돌배기 안쪽 골짜기이다.
돌작골 돌이 많아서 ‘돌작골’이라고 한다. 자갈산으로 마을 북쪽 선돌배기 서쪽 골짜기이다.
활대삐알 윗너범 뒷산으로 옥녀봉 동쪽 기슭이다. 대나무작대기처럼 쭉 뻗어있다.
활구불대기 돌작골에 있는 산으로 활처럼 굽어 있다.
배꿈마리 지형이 사람의 배꼽처럼 생겼다고 해서 ‘배꿈마리’라고 한다.
불선골 영험하여 기도하러 온 사람들이 불을 켰던 곳이라고 한다.
외시들 기와를 구웠던 기와굴이 있던 곳으로 본래 ‘와시들’이 변해서 ‘외시들’이라고 했다고 한다. 지금도 기와가 많이 나온다는 아릿너범 북쪽에 있는 들이다.
힌팃골논 힌팃골에 있는 논이다.
오이곡지 오이곡에 있는 들이다.
맥반석 생수 개발했으면
감포에서 인물은 호동에서 난다고 할 정도로 이름 있는 마을이다. 작은 마을 치고는 인물이 많이 났다. 또 이 마을을 주민화합도 잘되고 화목하게 지낸다. 그래서 마을 일도 협력해서 잘 해 나간다. 마을 진입로의 경우도 주민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도로를 내고 확포장 했다고 한다.
이 마을의 안 골짜기인 괴밑골이 산 전체가 맥반석으로 형성되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질이 좋은 맥반석이라고 한다. 물이 사시사철 나와도 이끼가 끼지 않는다고 한다. 주민들은 이곳에 맥반석생수를 개발하여 마을 소득을 올렸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이곳의 생수를 경주시 브랜드로 개발해도 좋겠다고 한다.
오지마을이라 마을에 특별한 소득원이 없고, 어려움이 많아 소득원을 개발하려고 맥반석 생수 개발을 추진하고, 인진쑥을 재배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우리고 있다.
마을 진입로에 벚나무를 심어 꽃길을 조성해 관광객을 유치하려고 한다. 그리고 마을에서 괴밑까지 들어가는 길을 내었으면 한다.
이 마을은 아직 회관이 없다. 아랫마을의 경로당도 마을 주민들이 원전 지원금을 수년간 모아서 자력으로 지었다고 한다.
마을 지도자가 경로당 부지 내어 놓고, 그곳에 경로당을 지었다.
지난해부터 마을 경로당에 심야보일러를 설치해 난방을 하고 마을 노인들이 이곳에서 겨울을 났다고 한다. 고령자와 독거노인이 많고, 기름 값이 천정부지로 뛰는 상황에서 집집마다 보일러를 가동하기가 만만찮은 상황에 마을회관이 따뜻한 보금자리가 된 것이다.
이 마을 출신으로는 최실영(65 울산 원창한의원), 최세영(63 예비역 육군대령), 한성부(61 조달청 서기관), 이진희(57 동경주농협조합장), 박용학(57 경주경찰서), 오철근(52 예비역 해군소령), 한재봉(42 대구지법 판사) 등이 있다.
마을취재에 협조해 주신 최준열 이장, 허문구 지도자, 박용학 님을 비롯한 마을 어른들에게 감사드린다.
김거름삶
사진 최병구 기자/ 정리 이채근 기자
자문 허계수(족보도서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