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5일, 가을의 문턱으로 접어드는 산행하기 좋은 계절이라 다소 무리가 되더라도 갈령에서 버리미기재까지 계획을 세운다. 꽤나 먼 거리를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약간의 걱정도 되지만 그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다.
그런데 최현찬 산행부대장이 아침에 출근하다 교통사고가 나서 폐차를 시켰지만 다행히 몸은 괜찮다는 연락이 왔다. 천만다행이다.
그래서 산행을 취소하자고 하니 약속은 지켜야 한다면서 걱정하지 말고 무조건 가자고 한다. 최현찬 산행부대장의 강인한 정신력과 불굴의 투지와 집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예정보다 다소 늦은 20시 30분 출발하여 고속도로에 진입을 하니 건천휴게소 근처에서부터 막히기 시작하여 칠곡 휴게소에 도착하여 간식을 간단히 먹고 갈령에 도착하니 16일 새벽 1시 정각이다.
만물이 잠들어 있는 1시 11분 갈령을 출발하여 갈령삼거리에 올라서니 2주전 내려올 때와 지금 올라온 시간이 거의 비슷하게 걸렸다.
아마 우리 종주하는 세 사람이 빠른 산행을 할 수 있는 것도 오르막이나 내리막을 거의 비슷한 속도로 걷기 때문일 것이다.
갈령삼거리에서 직진을 해서 오르막 구간을 오르다 보면 경사가 심해지면서 앞에 바위가 우뚝 서있는 803.3m의 형제봉에 오르니 1시 54분이다.
갈령에 있는 이정표에는 형제봉까지 1시간 30분으로 되어 있지만 43분밖에 걸리지 않았으며 형제봉에서 급경사지대를 내려서면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고 바위구간을 지난다.
오르내리기를 몇 차례 반복하다 바위지대를 통과하게 되고 완만하게 내리막을 내려오다 보면 숲으로 우거진 사거리 공터에 닫는데 여기가 피앗재로 2시 24분이다.
왼쪽으로 만수동 내려가는 하산길이 뚜렷하며, 휴식을 취하면서 산행기를 적다가 하늘을 쳐다본다.
나뭇가지 사이로 초롱초롱한 별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이 반짝이니, 소시적 모깃불을 피워놓고 평상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면서 별동별을 바라보던 추억이 되살아난다.
그러나 도시에서 생활하면서부터는 새벽 밤하늘을 쳐다 볼 여유가 거의 없었는데, 대간을 종주하면서 자주 쳐다보는 것은 혹시 비라도 내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계속 진행하다보면 오른쪽 숲 사이로 장각동 마을의 불빛이 깜빡거리며,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니 멀리 어둠속에서 다정한 봉우리 두개가 보이는데 조금 전 올랐던 형제봉이다.
3시 39분 전망좋은 낭떠러지 바위지대를 지나 계속 오르막 구간을 올라가면 묘가 나오고 4시 9분 다시 바위지대를 지나니 어둠속의 전망이 좋다.
곧이어 대목리 하산길에 도착하니 안내판에는 문장대까지 등산로가 그려져 있다.
직진길의 나무계단과 바위지대를 지나면 산죽이 나오고, 다시 밧줄구간과 산죽지대를 올라서면 1057.7m의 천황봉 정상으로 4시 28분이다.
서쪽 하늘에는 하현달이 힘없이 걸려있고 머리 위로는 유난히 반짝이는 별들이 새벽하늘을 밝히고 있는 가운데 눈앞에는 사방으로 거칠 것 없는 올망졸망한 봉우리들이 마치 키재기를 하는 듯하다.
천황봉을 주봉으로 하는 속리산은 한남금북정맥의 분기점으로 봉우리와 능선의 암봉들은 오랜 세월의 풍우로 인해 갖가지 형상을 빚어내는데, 아홉 개의 봉우리가 있다 하여 구봉산으로 불리던 것이 신라 때부터 세속 속(俗), 여읠 리(離), 뫼 산(山), 즉 세속을 여의는 산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의 삼대 명수인 삼파수, 달천수, 우통수 중 삼파수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삼파수(三派水)란 동으로 낙동강, 남으로 금강, 서로는 남한강으로 흐르는 물을 말하며, 여말 선초의 문신 이행은 달밤에 술통을 실은 소를 타고 산수를 노닐어 기우자라는 호를 얻은 사람인데 충주 달천의 물맛을 으뜸으로 치고 속리산 삼파수를 그 다음으로 꼽았다고 한다.
좌측으로 내려다보이는 법주사가 대찰로서의 규모를 갖추게 된 것은 진표율사가 이곳을 미륵신앙의 중심도량으로 삼아 발전시키면서 이후 금산사, 동화사와 함께 대표적인 법상종 도량으로 불법의 등을 밝히고 있다.
미륵불을 주존불로 모시는 법상종 도량답게 가장 먼저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거대한 청동미륵불이다.
그 외에도 5층 목탑의 팔상전과 대웅보전, 원통보전 같은 건축물과 쌍사자석등과 사천왕석등, 석연지, 마애여래의상 등의 보물들이 있다.
신라의 대문장가인 최치원은 법주사와 여러 암자들을 둘러보고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고 한다.
‘道不遠人 人遠道 山非俗離 俗離山-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으나 사람이 도를 멀리하고, 산은 세속을 여의지 않으나 세속이 산을 여읜다’
▲속리산 문장대에서 기념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