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걸음
백두대간상 유일한 고원 습지인 ‘못제’
견훤의 자취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신의터재 - 윤지미산 - 화령재 - 봉황산 - 비재 - 못제 - 갈령삼거리
9월 1일 22시에 출발, 보름 전날이라 하늘에는 휘영청 밝은 달이 대지위의 만물들을 속속들이 비추고 있으며, 이제 서서히 가을로 접어드니 밤 기온이 차가운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그런 쌀쌀한 날씨다.
1시 36분 신의터재에서 산행을 시작하는데 반대편 도로에 관광버스 한대가 서서히 멈추어 서면서 대간꾼들이 내리기 시작한다.
이 밤중에 산행을 온 것을 보니 우리 말고도 산에 미친(美親) 사람들이 꽤 많나보다. 그들은 버스에서 내려 반대편으로 진행을 한다.
농로를 따르다 산길로 접어들면 소나무숲 능선이 이어지다 넓은 농로가 나오고 저수지와 복숭아밭을 지난다.
3시 20분경 뻐꾸기 한마리가 한밤중의 고요한 정적을 깨뜨리며 구슬프게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사랑하던 짝을 잃었는지(?) 무엇이 그리도 서러운지... 문득 유리왕이 지었다는 ‘황조가’를 떠올리게 한다.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에 올라 첫 휴식을 취하고, 538m의 윤지미산에는 4시 23분 도착한다.
들깨밭을 지나 4시 48분 임도를 걷는데 손승락 회원이 걸으면서 졸음이 쏟아져 비틀거리자 뒤따라오던 김정훈 회원이 조심하라고 주의를 준다. 얼마나 잠이 오고 피곤하였으면...
소나무 숲 능선을 지나 5시 23분 화령재에 도착하니 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상당히 넓은 주차장이 있으며 우측에는 화령정이라는 팔각정이 있다. 여기서 아침을 먹기로 한다.
조선시대 때 상주시 화서면 소재지가 화령현이었는데, 상주는 옛부터 "삼백"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그 세 가지 흰 것이란 쌀, 누에고치, 목화였는데 최근에는 목화 대신 곶감을 삼백으로 꼽는다. 특히 상주 쌀은 질이 좋아서 조선시대에는 진상품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교통의 요지로 조선 세종 때에는 경상도 감영이 설치되었는데, 여러 군을 아우르는 `경상도`라는 명칭을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경주(慶州)와 상주(尙州)에서 한 자씩 따와서 지은 것을 보아도 상주의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아침을 먹고 기다렸지만 일출을 보기가 어려울 것 같아 출발한다.
잡목이 우거진 능선을 헤치면서 급경사 지대를 올라가니 산불감시초소가 나오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앞에 뾰족하게 솟아 있는 산이 봉황산이며, 멀리 속리산 연봉들이 서로 키재기를 하면서 자신들의 아름다움을 자랑이라도 하는 듯 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전망대 봉우리를 지나고 힘들지 않은 능선을 오르내리다 암릉을 우회하고, 안부에 이르러 왼쪽으로 꺾어 경사지대를 오르고 돌길을 지나면 740.8m의 봉황산으로 삼각점도 설치되어 있다. 봉황산에서 오른쪽 능선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암릉구간이 시작된다.
가파르게 내리막길을 내려오다 완만해지면서 밤나무 단지가 나오고 마을 사람들이 밤을 줍고 있어 우리도 몇 개 주워서 내려오니 320m의 비재로 8시 54분이다.
‘나는 새의 형국이라’ 비조재, 비조령이라 불리며 도로를 건너면 절개지 급경사면에 철사다리가 설치되어 있다.
다시 가파른 능선을 오르다보면 암릉 구간과 바위가 계속해서 나타나며, 안부를 지나 오르막길을 오르면 백두대간상의 유일한 고원 습지인 못제(천지)에는 10시 3분 도착한다.
혹시 샘이 있을까 싶어 억새숲을 헤치고 들어가 살펴보지만 샘은 없고 잡풀만 무성하다.
못제는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이 황충 장군과 싸울 때마다 연전연승하자, 황충 장군은 견훤이 이기는 비법이 어디에 있는지 알기 위하여 부하를 시켜 염탐하게 하였다.
그 결과 견훤이 이곳 못제에서 목욕만 하면 없던 힘도 저절로 생겨 승승장구한다는 사실과 견훤이 지렁이 자손으로 지렁이는 소금물에 약하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 황충 장군은 부하를 시켜 못제에 소금을 몰래 풀었다.
이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견훤은 못제에서 목욕을 하고 난 뒤 힘을 잃고 말았다고 하는 전설로 보아 당시에는 물이 풍부했을 것이라 추측된다.
‘삼국사기’에는 견훤(867-935)은 상주 가은현(지금은 문경시 가은읍) 출신으로 본래 농사를 짓다가 뒤에 가세를 일으켜서 장군이 된 아자개의 아들이라고 전하고 있다.
못제를 뒤로 하고 봉우리를 하나 넘어 내려선 후 약간 가파르게 오르면 헬기장이 나오고, 중간 중간 산사태지역이 나타나며 암릉이 나온다.
암릉을 기어오르니 최현찬 산행부대장이 뒤따라 올라오고 손승락, 김정훈 회원은 왼쪽으로 난 우회로로 올라온다. 다시 또 경사가 급한 암릉지대가 나오는데 우회로가 있지만 모두 암릉을 타고 올라가니 바위 위에는 세 부부가 맥주와 통닭, 땅콩을 펼쳐 놓고 먹고 있다가 같이 먹자고 한다.
맥주를 얻어 마신 후 잠시 올라가니, 11시 정각 660m의 갈령 삼거리에 도착한다. 밤티재까지는 너무 먼 거리라 여기서 산행을 마치기로 하고 갈령으로 내려서는데 황악산 이후 야산지대라 산행하는 재미와 즐거움은 다소 떨어졌지만 봉황산을 지나면서부터 다시 멋진 경치에 취해 산행하는 묘미도 서서히 살아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