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막바지이던 따사로운 봄날,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랠리시에 거주하는 재미교포 유현주(43)씨와 차 강(12), 차 반야(10) 남매가 13년만에 만난 한국, 경주나들이에 동행했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지고 연초록의 잎들이 돋아나기 시작해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는 반월성 앞에는 유채꽃이 아직도 만발하다. 와~소리치며 꽃 속으로 뛰어드는 아이들과 함께 덩달아 가슴이 부푼다. 20여일 남짓한 단기방학을 이용하여 한국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여러 곳을 찾아보다가 결정한 곳이 경주라 했다. 내 생각에도 가장 한국적인 곳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곳이 경주가 단연 으뜸이다. 29일 오전9시 40분 경주도착. 먼저 대릉원에 들렀다. 왕릉보다 나무가 먼저 시선을 끈다. 미국의 나무와 한국의 나무는 확연히 다르다며 나무의 굽이치는 곡선은 예술 그 자체라고 감탄했다. 천마총의 천마도와 금관을 보며 천년도 더 전에 이런 것을 사용한 문화에 놀라워했고 귀걸이와 팔찌는 지금 사용해도 너무 예쁠 것 같다고 했다. 미추왕릉 앞에서는 삼국유사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이곳이 바로 그곳이구나 하고 아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은편 신라문화체험장에서 십이지신상 탁본과 금관을 만들고 전통차도 마셨다. 아이들은 미국 돌아가서 친구들에게 자랑할거라며 신이 났다. 첨성대를 돌아보고 반월성을 올려다본다. 그 사이로 노랗게 펼쳐진 유채꽃이 넘실대는 파도 같다. 계림을 돌아 향교에 들렀다. 지금의 중·고등학교와 비슷하게 생각하면 된다는 문화유산 해설사의 설명에 향교가 새삼 친숙하게 다가온다. 양반과 더불어 평민도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는 것에 놀라워하며 공부하는 명륜당 대청마루에도 앉아보고 기숙사 기능을 했다는 동재, 서재의 문도 열어본다. 그리고 월정교 터 돌무더기에 앉아 남산을 바라보며 아쉬움을 달랬다.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의 본을 보인 경주 최부자 집에 들러 교동법주를 만드시는 할머니와 기념사진도 찍었다. 해맑게 웃으시는 모습이 정원의 꽃들보다 고우시다. 안압지 모과나무 그늘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김밥과 오곡밥, 두릅, 엉게, 가죽, 취나물, 울릉도 부지깽이나물, 돌냉이, 부추, 물김치와 함께. 연못 뻘 속에서 발견되었다는 ‘14면체 주렴구’의 벌칙을 보며 한바탕 웃었다. 그때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구나 생각했다. 이날의 마지막 일정으로 살아있는 우리 문화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한 양동마을로 향했다. 들어서는 마을 어귀부터 고운 자태와 색다른 운치를 느낀다. 바라보고만 있어도 편안하고 아늑한 그림같이 예쁜 서백당, 무첨당, 향단 , 관가정. 조선초 이후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가 양대 문벌을 이루어온 동성마을이고 지금도 그 정서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양동민속마을에 어둠이 곱게 내려앉은 모습은 바라만 보아도 마음속 고향이 바로 이곳인 듯하다. 다음날 노곤함을 씻어내고 황성공원 김유신장군 동상에 올라 경주를 느껴본다. 삼국통일을 이룩하고 우리문화의 모태를 완성한 그 분들, 삼국유사 이야기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존 인물임을 아이들에게 심어주고 싶은 바람이 욕심이지 않기를 기도했다. 선덕여왕과 원효대사의 얼이 깃든 분황사와 황룡사지를 거쳐 불국사에 이르렀다. 국보 여섯점이 모두 한자리에 있다는 설명을 듣지 않아도 그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숨이 멎는다. 마지막 발길은 불국사 극락전 불전에 삼배하고 초파일 등공양 접수하고 복덕행 보살님과 따뜻한 대화로 마무리했다. “따뜻한 사람들이 있어 경주나들이를 스쳐 지나가버리지 않고 미국에서 떠올려도 가슴 훈훈해질 추억으로 만들었다. 엄마의 마음처럼 강이와 반야도 한국의 모습, 경주의 모습을 가슴에 담고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어진다”는 말을 남기고 세 식구는 미국으로 돌아갔다. 전효숙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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