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며 꺼리던 영남의 선비들
궤방령-가성산-눌의산-추풍령 표석-금산-사기점고개- 작점고개
이틀 연속의 장거리 산행에 밤늦게까지 마신 곡차 덕분(?)에 대원들의 몸은 무거웠다.
이 동네는 식당들이 문을 늦게 열기 때문에 누워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손정락 회원님이 식당에 아침을 부탁해 두었다고 했다.
이른 아침에 식사를 준비한 관계로 1인분에 1만원. 가격은 비싸지만 맛은 좋은 편이었다.
7시 5분 궤방령에 도착, 손정락 회원님과 작별을 하고 산행을 시작하여 약간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내리다 보니 주위는 온통 운무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질 않다가 숨이 턱에 차 오를 때쯤인 8시 59분 가성산 표지석 앞에 선다.
왼쪽으로 바위를 끼고 두번째 내리막을 내려가다 갑자기 중간에 가던 손승락 대원이 코피를 흘려 10여 분간 휴식을 취한다. 평소에는 산에 다니지 않다가 연속산행으로 인해 너무 무리(?)를 한 것 같다.
그러나 이번 백두대간을 종주하면서 첫구간인 지리산 종주를 끝내고는 몸무게가 무려 6kg이나 빠졌던 그. 그 덕분인지 산행 실력이 일취월장 하고 누구보다도 강인한 정신력으로 종주에 임하고 있다.
더 이상 코피가 나지 않아 안심하고 산행을 하는데 최현찬 산행부대장 집안(인척)에 초상이 났다는 연락이 왔다. 고민 끝에 오늘 계획된 구간까지는 산행을 하기로 했다.
장군봉을 오른 후 몇 차례 헬기장을 지나면 넓은 잔디밭 공터와 헬기장이 있는 743.3m의 눌의산 정상으로 10시 15분이다.
멋진 조망을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덮쳐온 운무로 인해 추풍령과 경부고속도로 등의 조망은 더이상 허락되지 않는다.
다시 헬기장과 방공호를 지나면 오른쪽 급경사 지대는 경사가 워낙 심해 고속도로까지 보통 50분정도 걸리는데 25분 만에 내려선다.
고속도로 다리 밑을 지나 철도 건널목을 건너면 4번국도 위 추풍령 표지석 앞에 닿는데 남상규의 노래 추풍령 고개가 적혀있다.
사명대사가 고개를 넘을 때 가을바람처럼 선선한 바람이 불어 추풍령이 되었다는 이곳은 백두대간 선상의 가장 낮은 지점으로 마을은 둘로 나누어져 반은 경상도 김천이요, 반은 충청도 영동이니, 그 옛날 고갯마루에 경상도 주막과 충청도 주막이 나란히 있었다고 한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경상도 술꾼들이 경상도 주막에서 술을 마시다가 자정이 되면 통행금지가 없는 충청도 주막으로 건너와서 마셨다는 일화가 있으며, 서울과 부산의 중간지점으로 구름도 쉬어가고 바람도 자고 간다는 고개이다.
하지만 이름도 하필이면 추풍이라 과거 길에 나선 선비들은 모두 추풍령을 마다하고 한사코 궤방령을 넘게 되는데 금기란 본래 갈수록 태산이라 나중에는 인근에 부임하는 관리까지도 관직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 하여 추풍령을 피했다고 한다.
11시 10분 표지석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고, 멈출때까지 기다리다 우측 포도밭 사이를 지나 산길로 접어드니, 풀잎에 맺혀있는 빗방울이 금방 옷과 신발을 적셔버리고 약간 가파른 길을 올라서면 384m의 금산으로 11시 45분이다.
정상에 서면 선혈이 낭자한 환경파괴의 현장,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어쩌면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르는 금산인데, 수백길 낭떠러지를 이룬 채석장은 현기증을 일으키게 하고 마음을 우울하게 한다. 다시 평탄한 능선길을 오르내리다보면 13시 10분 사기점 고개이다.
임도와 숲길을 드나들게 되고 가파른 오르막이 잠시 이어지다 난함산 통신중계소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오는데 여기서 많은 종주팀이 길을 잘못 든다는 곳이다.
우리도 여기서 길을 찾느라 1시간 이상 헤매다 시멘트 도로를 따라 내려오면 우측에 신애원 농장과 좌측에 납골당이 있고 농로와 소나무 숲길을 진행하다 15시 13분 2차선 포장도로가 나오는 340m의 작점고개에 내려선다.
이곳은 노선버스가 다니지 않는 관계로 용문산 기도원 입구까지 걷지만 버스를 타려면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능치리 마을까지 걸어와서 기다린다.
무더운 날씨에 배는 고프고 차는 오지 않고... 한참 기다리다 보니 봉고차가 오는 것을 보고 손을 드니 김천까지 태워준다.
터미널에 도착, 경주 막차를 타니 온몸에서 나는 땀 냄새와 신발 냄새가 뒤섞여 버스 안을 진동 시킨다.
우리는 최소한의 피해만 주기 위해 제일 뒷좌석에 자리를 잡았는데 승객들이 뒤로 오다가 전부 코를 틀어막고 앞으로 가버리니 승객들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