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기회다. 이번 마라톤에 참여한 나의 마음속 외침이다.
작년8월 왼쪽 무릎 인대파열로 인해 관절경 수술을 했다. 아직도 계단을 내려갈 때는 무리가 온다. 꾸준히 운동해서 근육을 키워야한다고 했는데 날마다 게으름으로 운동은 뒷전이라 올해는 계획을 세웠다.
경주 벚꽃 마라톤 10km 완주. 가족들은 ‘무리다. 그러다 덧나면 어떻게 하느냐’며 나의 결심을 흔들어댔다.
해마다 벚꽃마라톤대회를 지켜보며 나도 한번 뛰어야지 하면서도 간절함이 없었다. 사십대 중반을 바라보는 지금, 관리하지 않으면 앞으로 얼마나 더 흐트러질지 불을 보듯 뻔하다. 먹는 것보다 운동하는 것을 더 챙기라고 했는데 스스로 뒤돌아보면 생각뿐이었다.
2월 마지막 주부터 자전거로 보문단지를 돌았다. 약간의 땀이 나고 관절에 무리가 많이 되지 않는 수준으로 일주일에 세번 이상 3시간정도는 운동을 하리라 다짐했다. 처음에는 딸과 함께 돌고 다음에는 아들도 동참을 하고 다음엔 남편과 자전거로 보문을 달렸다. 차츰 달리는 것이 수월해지고 주변의 자연에도 눈이 가기 시작했다.
삼월 중순이 가까워지니 주변의 산색이 달라지고 있었다. 황성공원을 거쳐 북천 강변에는 냉이, 꽃다지, 별꽃, 개쑥갓, 큰 개불알 풀, 광대나물 등이 어여쁜 꽃을 피우고 뒤이어 지칭개, 뽀리뱅이, 달맞이, 개망초, 쑥, 꽃바지, 꽃말이 등이 얼굴을 내밀었다. 보문호수 주변에는 홍매화, 청매화, 산수유가 만개하고 북천생태연못에는 갯버들과 회향나무가 자기만의 꽃을 피워 올렸다.
나도 나만의 꽃을 피우고 싶은 바램으로 보문의 아름다운 산책길을 달렸다.
4월5일 제17회 경주벚꽃마라톤대회 당일. 오전 7시까지 경주세계문화엑스포광장 앞에 집결한 약 1만2천여명의 참가자와 가족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었다. 그 넓은 광장에 발디딜 틈이 없었다. 가벼운 몸풀기 운동을 하고 출발선에 섰다. 풀코스, 하프코스, 10km, 5km 순으로 출발했다. 입술을 질끈 물고 결심했다, 걷지 않기로, 달리기로, 아무리 힘들어도.
3km지점을 지나자 발바닥에 약간의 경련이 느껴졌다. 살짝살짝 반보씩만 뛰며 달리는 시늉만 내었다. 조금씩 통증이 가시기 시작했다. 5km지점을 지나면서 경주대학교 학생들의 단체 달리기에 동참해 조금씩 제 속도를 유지하기 시작했다. 힘들다는 생각이 들면 전체 파이팅을 외치며 격려하는 소리에 내 마음도 추스르고 다시 속도를 내었다. 혼자와 함께 달리는 것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함께 하면 더 큰 힘을 낼 수 있음을 실감했다. 결승점이 멀리 보이자 벅차오르는 뿌듯함. 1시간 30분 내에 완주하는 목표를 달성했다.
맑은 날씨와 환하고 탐스러운 벚꽃의 아름다움이 더 강하게 다가온다. 결승점에 앉아서 풀코스 완주자들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내년에도 뛰어야지. 하프코스, 풀코스도 도전하리라 다짐해본다, 나의 봄날을 위해.
완주기념메달을 목에 걸어보았다. 짜르르 전율이 느껴진다. “야~~드디어 내가 해냈다” 하고 크게 웃으며 소리쳤다. 어떤 사람은 그까짓 10km완주쯤이야 하고 가볍게 여길 수 있지만 나에게는 정말 소중한 경험이다.
완주후 스포츠마사지도 받고, 수지침압봉 시술도 받았고, 참가 기념사진도 무료로 찍었다. 피곤함이 날아갈 듯 상쾌하다. 배꼽시계도 출출하다고 소리친다. 잔치국수, 도토리묵, 계란을 무료시식 할 수 있다는 곳으로 가니 많은 분들이 봉사하고 있었다. 오늘은 온통 누리는 날이다. 잔치국수를 먹을 수 있는 코너에서는 어린학생이 봉사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5km완주하고 봉사하고 있는 김현서, 현익 쌍둥이형제(용황초 5년)의 모습이 하도 예뻐 내내 지켜보았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함께 참여하는 경험을 하게 하면 정말 따뜻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남편과 마주앉아 잔치국수 두 그릇씩 비우고 계란과 도토리묵을 먹으며 올려다본 하늘은 파랗고 맑은 하늘.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경주벚꽃마라톤의 기쁨을 함께 하고 싶다, 내 이웃과.
전효숙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