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물 나는 ‘찬내’ → ‘냉천(冷川)’ 박정희 대통령 기념식수 젓나무 냉천으로 가는 문무로 가로를 아름답게 수놓았던 활짝 핀 벚꽃은 이미 연분홍색의 꽃비를 뿌리며 포도를 불그레하게 물들이고 있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라고 했든가? 제18대 총선에서 권력을 좇아 모여든 정치 불나비들이 당락의 희비에 울고 웃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꽃잎이 흩날린다. 냉천은 경주시 외동읍지역으로 애기봉산 북서쪽에 자리한 마을이다. 경주에서 7번 국도를 타고 울산방면으로 가다가 연안에서 내남으로 넘어가는 904호선 지방도를 따라 우회전하여 동해남부선 철길을 건너면 산기슭에 자리한 마을이 냉천이다. 동쪽은 연안과 입실리, 서쪽은 제내리, 북쪽은 북토리, 남쪽은 석계, 구어리에 인접해 있다. 냉천은 넓은 마석산과 애기봉산 사이의 올망졸망한 작은 산들을 의지해 대체로 넓은 들을 끼고 있는 농촌마을이었으나 최근 공단이 들어서면서 공단지역으로 변모해가고 있다. 공단지역으로 변모하고 있어 냉천(冷川)은 찬물이 많이 나는 곳에 마을이 있으므로 ‘찬내’라고 부르다가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냉천(冷川)’이라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물이 잘 안 난다고 한다. ‘찬내’, ‘지초’, ‘거산’, ‘대밭골’이 냉천1리. ‘덕동’, ‘새터’가 냉천2리를 이루고 있다. 냉천1리는 102가구에 360여명의 주민이 생활하고 있다. 주로 벼농사와 정구지를 경작하고 있고, 한우(300두)와 돼지(5만두)를 많이 기른다. 냉천2리는 71가구에 150여명의 주민이 벼농사를 짓고 살고 있다. 이 마을은 10여 년 전부터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해 지금은 80여개의 공장이 들어선 공장지대로 바뀌었다. 안동권씨 집성촌으로 지금도 13가구가 살고 있다. 이 마을 최고령자는 김장화(99살 대전댁) 할머니로 평소에 과식을 잘 하고, 회를 좋아하고, 고기도 잘 드신다는데도 건강하게 장수ㅎ하고 있다. 술은 적당히 하고 담배는 전혀 안 한다고 한다. ‘에헴! 지초 돌메 못안’ 찬내 이 마을은 숲과 모래 사이에서 찬물이 많이 솟아 나왔다고 하여 ‘찬내’ 또는 ‘냉천(冷川)’이라 불렀다고 한다. 가장 중심되는 마을이라 ‘큰마을’, ‘대리(大里)’라고도 한다. 거산 동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30가구) 동제 이 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이 되면 동제를 지낸다. 당목 마을 당목은 수령 90년 정도 되는 폭우나무이다. 이 마을 김재식(83) 할아버지가 60여 년 전에 옮겨 심었다고 한다. 지초(芝草) 지치(지초)가 많았다고 한다. 또 토질이 약초재배에 알맞고 약초재배를 많이 했다고 해서 ‘지초’, ‘지초리(芝草里)’라고 했다고 한다. 냉천 북쪽에 있다. 안에 있는 마을을 ‘안지초’, 바깥에 있는 마을을 ‘바깥지초’라 부른다. ‘에헴! 지초, 돌메 못안’이라는 말이 있듯이 북토(돌메), 제내(못안)보다 지초가 더 살기 좋다고 한다. 지금은 약초 재배가 거의 없다. (43가구) 동제 이 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이 되면 동제를 지낸다. 당목 마을 어귀에 제당과 함께 느티나무가 당나무로 섬겨지고 있다. 이 나무는 수령이 100여년 된다고 한다. 거산(巨山) 냉천리에서 가장 큰 산인 독점산(獨占山 또는 獨芝山)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거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7가구) 대밭골 대나무밭이 있는 마을이다. 독점산 밑(동편)에 있다. (18가구) 동제 이 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이 되면 동제를 지낸다. 거산과 대밭골은 같이 지낸다. 당목 이 마을 당나무는 느티나무로 제당 옆에 있다. 본래 당목이 죽고 새로 당목을 정해서 옮긴 게 30여년전이라고 한다. 덕(德) 있는 인재 많이 나 덕동(德洞) 이 마을에 덕(德) 있는 인재가 많이 나왔다고 하여 ‘덕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이야기로는 덕이 있는 마을이 되라는 뜻에서 ‘덕동’이라 불렀다는 얘기도 있다. ‘자지밭’, ‘자지전(紫芝田)’이라고도 한다. 터가 자라형국으로 냉천 남쪽에 있다. (40가구) 동제 이 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이 되면 동제를 지낸다. 당목 이 마을 당나무는 소나무로 본래 오래된 당목이 태풍에 쓰러지고 20여 년 전에 새로 심었다. 새터 100여 년 전에 새로 형성된 마을이라고 한다. ‘새태’, ‘새터’, ‘신기(新基)’라고도 한다. 덕동의 서쪽에 있다. (30가구) 동제 이 마을은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에 동제를 지낸다. 당목 이 마을의 당나무는 1962년에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었던 박정희 대통령이 기념식수한 젓나무이다. 이 마을이 사방공사를 잘해서 전국에서 1위를 했고 박정희 대통령이 이를 기념해 이곳에 나무를 심었다. 처음엔 길머리에 있었는데 40년 전에 도로가 나면서 당집부근으로 옮겼으나 태풍에 쓰러져 3년 전에 다시 재당 옆으로 옮겼다. 효열부 일국당 김봉학 효열비각 일국당 김봉학(1935~2000) 여사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2007년 거산마을에 세웠다. 여사는 경주시 외동읍 제내리 사일에서 태어나 17살에 이 마을 최석두와 결혼한다. 그러나 6.25 전쟁에 참전한 남편이 전사한다. 홀로 된 여사는 유자녀를 훌륭하게 키우며 시댁어른들을 잘 모시고, 시숙모까지 병구완하며 평생을 봉양하는 등 남다른 효행을 실천하였다. 장한 어머니상, 삼성문화재단 효행상, 한국보훈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나원역장 최해암(56)씨가 아들이다. 심강서당(心岡書堂) 지초에 있는 서당으로 1970년에 일청 최명교(一靑 崔明敎)가 선조를 위해 세웠다고 전한다. 3칸 건물에 가운데 마루 양쪽에 방을 배치했다. 무의정(武宜亭) 밀양박씨의 재실로 호군(護軍)을 지낸 조상을 추모하기 위하여 8세손 복수(福洙)가 세운정자이다. 울산에 공단이 개발되면서 1975년에 이곳으로 이주해 와서 지었다. 혜리원(惠利院)터 경주부윤을 지낸 조선 태종 때의 문신 하륜(河崙)이 울주(울산)에 다녀오다가 천왕사 스님으로부터 경주와 울주 사이에 있는 덕방동(德方洞)에 여행자를 위한 원집을 지어 오가는 길손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소원임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훗날 원집을 짓고 ‘혜리원’이라는 현판을 써 주었다고 전한다. 주민들은 덕방지 못위에 원집이 있었다고 한다. 독짐절 냉천 독지(獨芝)산 중턱에 있는 절로 1852년에 창건하였다. 일명 ‘영지암(靈芝庵)’이라고도 한다. 30여 년 전에 산기슭으로 이전했다. 아기처럼 생긴 바위 아기봉산 외동읍의 냉천리, 구어리, 입실리, 연안리에 걸쳐 있는 높이 227m의 산으로 마치 아기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고 하여 ‘아기봉’, ‘아그봉산’, ‘아암산(兒岩山)’이라고도 한다. 아기봉삐알 아기봉산에 서쪽에 있는 산비탈이다. 북녘산 새터 북쪽에 있는 산으로 현재 공장부지로 개발하고 있다. 이산에 부엉이골이 있다. 점안산 덕동 북쪽에 있는 산으로 쇠부리터가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큰갓뻔디기 가방골 동쪽, 애기봉산 서편 아래쪽에 있다. 냉천에서 제일 크고 넓은 편편한 산이다. 진등 독지산에서 동으로 길게 뻗은 등성이다. 다리목거리에서 바깥지초까지의 고개길로 ‘진들길’이라고도 한다. 당심(堂心)이 안지초에서 바깥지초로 연결된 길로 고갯길이다. 못골고개 덕동 북쪽에서 연안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그 아래에 못이 있다고 하여 못골고개라고 한다. 내남으로 넘어가는 도로변에 있었는데 3년전에 메웠다. 못안고개 새터 남쪽에서 구어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못의 안쪽에 있다. 문고개 새터 서쪽에서 덕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덕동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된다고 해서 ‘문고개’라고 한다. 서낭고개 덕동 서쪽에서 제내리의 사이로 넘어가는 고개로 서낭당이 있었던 곳이다. 점안고개 덕동에서 찬내로 넘어오는 고개로 점안산에 있다. 한밭고개 일명 ‘찬내고개’라고도 하며, 이 고개를 분수령으로 해서 냉천으로 오는 물은 동쪽으로 흘러 울산 태화강에 합수되고, 한밭으로 가는 물은 형산강으로 흐른다. 갓 쓴 모양의 바위 가방골 덕동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산 가운데 들이 있다. 갓짱골 냉천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갓을 쓰고 있는 모양의 바위가 있고, 바위 아래 약수터가 있다. 환자들이 많이 나았다고 한다. 지금도 물은 나오는데 조금 나온다. 골새 갓짱골 너머에 있는 골짜기로 새들이 많이 서식했다고 한다. 또 골이 좁아서 그렇게 불렀다고도 한다. 지초마을 남쪽에 있다. 덕동 뒷골 덕동 뒤에 있는 골짜기. 덕동 앞골 덕동 앞에 있는 골짜기. 덕방골 새터 남쪽에 있는 골짜기인데 논이 많다. 막닥골 냉천 서쪽에 있는 큰 산에서 내려오는 골짜기로 다락논이 30마지기가 있는데 더 올라가면 골짜기가 막혀 있다. 밖골 냉천 서편 골짜기로 성지골 옆이 된다. 지금은 현대중공업물류센타가 들어섰다. 부엉이골 부엉이가 둥지를 틀고 살던 골짜기로, 새터 서쪽에 있다. 지금 현재 공장부지로 개발하고 있다. 새앙골 새터에서 연안으로 넘어가는 골짜기이다. 성지골 냉천 서편에 있는 골짜기로 막달골 남쪽이 된다. 북녘산에 있다. 암자골 절터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 절이 있었다고 한다. 점안산에 있다. 절터골 밖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점안산에 있다. 점안골 쇠부리터가 있었다고 하는 골짜기로, 덕동 서쪽에 있다. 물이 층층으로 폭포 이뤄 물층층 물이 층층으로 폭포를 이루는 바위로, 찬내 서쪽 점안골에 있다. 거산골 거산마을 앞에 있는 들인데 골짜기에 있다. 남녘들 찬내 남쪽에 있는 들이다. 옛날에 경주와 울산을 오가는 도로가 이곳을 지나갔는데 다리목거리에 주막이 있었으며 ‘장승배기’라고도 한다. 덕배이 덕방지의 북쪽에 있는 들이다. 남쪽은 못안들이다. 뒷골 덕동 뒤쪽 골짜기로 지금은 공장부지가 되었다. 샛들 냉천 동쪽에 있는 논으로 옛날부터 물이 샛다(많았다)고 한다. 자명들 냉천 동북쪽에 있는 논들로 찬내와 거산 사이에 있다. 지형이 동쪽으로 기우러져 있어서 제일 먼저 해가 뜨는 밝은 곳이라 ‘자명들’이라고 했다. 황산골 독지산에서 둑으로 흐르는 물이 큰 거랑이라 비라 잦으면 황토물이 흐른다 하여 ‘황산골’이라고 한다. 특골 당심이 너머에 있는 골짜기의 논으로 안지초와 바깥지초 사이 북쪽에 있다. 귀신 “목 잡는다”고 소리쳐 덕방골못 덕방골에 있는 못으로 덕방지(德方池)라고도 한다. 뒷골못 덕동 뒤쪽 골짜기에 있는 못인데 지금은 공장부지가 되어 없다. 남녘들보 남녘들에 물을 대는 보로 지금은 없어졌다. 황산천 독점산에서 흘러내리는 거랑으로 거산마을 뒤에 있다. 구모티 지초마을 북쪽 입구에 있는 들이다. 큰 당수나무(150년)가 있어 여름이면 그늘이 짙어 마을 사람들이 나와 쉬었는데, 1982년 경지정리를 하면서 없어졌다. 지초마을 옆에 있어서 그렇게 불렀다. 다리목거리 지초마을 앞에 있는 도랑에 옛날 한길에서 동리 입구까지 큰 바위로 다리를 놓았는데 섬 채만한 바위를 들판에 깔아놓았다고 한다. 이 도랑에 물이 많아 귀신이 비만 오면 물소리 때문에 제 목소리가 안 들린다고 “목 잡는다”고 소리쳤다고 전한다. 이곳에 있던 큰 객사가 일제시대(70여 년 전)에 없어졌다고 한다. 말과 가마가 늘 대기하고 있을 정도로 이용객도 많았다고 한다. 영지-구어 간 도로 빨리 했으면 영지에서 구어로 연결되는 도로가 새터에서 구어까지는 아직 공사가 안 되고 있다. 이 길을 빨리 했으면 한다. 또 자명들 중간에 새마을 사업으로 닦은 길이 비포장으로 통행에 어려움이 많다. 이 길을 포장했으면 한다. 그리고 이 마을을 지나는 철탑이 수맥을 건드려 밭에 물이 계속 솟아나 곡식이 안 된다고 한다. 이에 대한 조치를 바라고 있다. 이 마을에는 새터에 새마을사업으로 지은 경로당이 있는데 자리도 협소하고, 접도구역이라 증축이 안 되는 것을 최근 심영섭 읍장과 김일헌 시의원이 많이 노력해 마을 뒷산에 새로 짓게 되었다고 주민들이 감사해 하고 있었다. 이 마을 출신으로는 권순복(79 전 경남부지사), 이종길(65 전 울산중앙초등학교 교장), 박숙환(63 전 경주시청 교통계장), 이종기(62 월성동 사무소), 이규찬(60 예비역 공군 대령), 권영택(57 행정고시), 최해암(57 나원역장), 이복우(36 전 국회서기관 현재 미국유학중), 김순덕(32 사법연수중) 등이 있다. 김거름삶 최병구 기자/ 정리 이채근 기자 자문 허계수(족보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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