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종훈의 1대간 9정맥
아홉걸음
새벽에는 추위와 낮에는 찜통같은
무더위와 싸우며 만난 멋진 사람들
삿갓봉 - 무룡산 - 동엽령 - 지봉 - 빼재(신풍령)
아침을 삿갓골재 대피소에서 먹은 후 물을 보충하고, 7시 25분 출발하니 무룡산 오름길 초원지대는 온 천지가 노란색의 원추리꽃과 보라색의 비비추가 만발하여 자태를 뽐내니 산꾼들의 가슴을 황홀경에 빠뜨리며 혼을 빼앗는 가운데 나무계단을 오르니 1천491.9m의 무룡산 정상이다.
멀리 장수덕유산과 남덕유산은 운무로 가려져 있고, 이곳도 동쪽 사면은 운무로 가려져 아무것도 볼 수 없지만 서쪽 사면은 조망이 좋은 편이다.
잡목 숲길을 완만하게 오르내리다 돌탑이 있는 1,400봉에서 울산서 오신 종주자를 만나고, 9시 21분 동엽령에 내려서니 오른쪽은 병곡리, 왼쪽은 용추계곡으로 150여m 내려서면 샘터가 나온다.
동엽령에서부터는 완만한 오름길이 이어지며, 백암봉에서 직진하면 중봉과 북덕유산으로 오르게 되고 마루금은 오른쪽으로 뻗은 능선을 타야 한다.
백암봉에는 1999년 10월 10일 거창, 마산, 창원의 천봉산악회가 세운 백두대간 구간 완주기념 표지석이 있고, 중봉에서 가이드 산행 단체팀이 내려온다.
이들은 동엽령에서 하산을 하는데, 우리가 출발하니 여러 사람이 무심코 뒤따라오다 되돌아간다.
넓고 완만한 내리막에는 신갈나무가 숲을 이루며, 귀봉 헬기장을 지나 횡경재에 도착하니 거창에서 오신 부부 두 쌍이 복수박을 먹고 있다가 우리에게도 한 조각씩 나누어 준다.
11시 45분 철쭉과 신갈나무숲의 오르막을 오르니 1천302.2m의 지봉이다.
마침 가족 종주자분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SK건설에 다니시는 정기광님 부부와 신일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정진필군, 정덕초등학교 3학년 정인경양이다.
5년 계획으로 종주를 하는데 이제 1년이 지났으며, 어제는 동엽령에서 야영을 하다 보니 무거운 배낭을 어린 학생이 직접 둘러메고 다니는데 기특하고 자랑스러운 대한의 건아들로 ‘아자, 가자, 백두대간’이라는 표지기를 사용하는 것이 너무나 부럽고 존경스러운 가족들로 영원히 기억에 남으리라.
어른들도 참고 견디기 힘든 찜통더위와 폭염 속에서 아직도 갈 길은 먼데, 어린아이들이 물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듣고도 우리 역시 물이 부족해 도와주지 못하니 가슴이 아프다.
왼쪽으로 내려서서 잡목 숲을 가파르게 내려가면 월음령이다.
다시 급한 오름길에 엄청난 싸리나무 군락지가 나오고 조망이 좋은 정상에 12시 50분 올라서니 수원서 오신 정용호님이 식사를 하고 계시다가 김밥을 권하지만 우리는 사양을 하니 동동주를 권한다.
한병 밖에 없기 때문에 많이는 못 준다면서도 두 잔이나 주시고, 집에서 만들었다는 빵도 주시는데 정용호님은 수원 지방법원에서 구두닦이를 하면서 몇 년 전 백두대간을 중1 아들 조해와 함께 42구간으로 종주를 끝내고, 한때 공익광고에도 출연했으며 ‘아들아 세상을 품어라’의 저자다.
조금 전 만난 정기광님 가족 이야기를 하니 기다리고 있다가 만나보고 가야겠다고 하며, 정용호님은 1대간 9정맥 중 한북정맥만 남겨 두고 있다고 하니, 나는 이제 겨우 백두대간을 시작한 걸음마 수준인데 존경스럽고 부럽기만 하다.
마루금은 오른쪽으로 꺾어 잡목을 헤치고 내려서야 하지만 내리막이라 크게 힘들지는 않으며 신갈나무숲 능선을 오르면 약 1천190m의 대봉이지만 조망이 불가능하고 내려서는 길도 급경사로 대봉 도착시간은 13시 20분이다.
마루금은 작은 봉우리들을 몇 번 오르내리면서 다소 지루한 감이 드는데 도로 절개지 위에서 오른쪽 임도를 타고 내려서니 빼재다.
빼재의 또 다른 이름 신풍령은 추풍령을 본 떠, 바람도 쉬어 넘는 새로운 고개라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무주와 거창을 잇는 727번 포장도로가 지나고 있으며, 신풍령 휴게소에 도착하니 14시 20분 아직도 시간은 많지만 날씨가 너무 더워 더 이상 산행이 어려워 소사고개까지 계획은 포기하고 돌아오면서 계곡에서 삼겹살을 구워먹고 놀다가 경주로 돌아온다.
누구에게나 어둠은 찾아들고 세상의 어떤 길도 늘 환하지는 않다.
어두운 길을 더듬어 새벽을 마중 나가지 않는 사람에게는 결코 희망이란 존재 할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