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종훈의 1대간 9정맥 일곱걸음 온몸엔 상처투성이, 마음만은 행복했던 중재-백운산-영취산(금남호남정맥 분기점)-깃대봉-육십령 중재를 지나 중고개재에서 백운산 정상까지는 숨이 턱에 닿을 정도의 급경사 길이라 힘은 많이 들지만 조망대 바위에서의 전망은 멋지다. 오전 10시경 총무님은 서울에는 37년만에 가장 짧은 시간 300mm가 넘는 비가 내려 수십명의 희생자가 발생하고 곳곳이 침수가 되는 물난리가 났다며 종주대가 걱정이 되어 전화를 했다. 그러나 지금 이곳은 맑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 산행하기에 불편함이 없다. 정상이 다가오는데 최현찬 산행부대장의 왼쪽 다리 근육이 이상하다고 한다. 오전 11시 18분 1,278.6m의 백운산 정상에 올라서자 결국 다리 근육이 뭉쳐 굳어지는 바람에 더 이상 산행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그렇지만 자신이 가지고 다니던 수지침으로 허벅지와 종아리를 10여군데 찔러 피를 내는 무서운 정신력을 발휘하고 나니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 신산경표에 나오는 전국의 27개 백운산(흰 구름 산)중에서 두 번째 높이를 자랑하며, 동쪽으로 금원, 기백산의 진양기맥, 북쪽으로 덕유산의 넉넉하고 태평스러운 자태, 서쪽으로 장안, 팔공산의 금남호남정맥, 남쪽으로 노고단에서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의 장대한 파노라마를 감상할 수 있는 멋진 조망을 자랑하는 산이다. 백운산을 내려가는데 산죽이 갈 길을 자주 방해하고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친근한 싸리나무 군락이 나온다. 싸리나무는 어린 시절 소에게 풀을 먹이러 가서 빗자루를 만들기 위해 꺾던,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에 나오는 빨치산들이 밥을 할 때 마르지 않아도 잘 타며 연기가 나지 않는 나무로, 탈 때는 향기로운 냄새를 발산하는 연한 보라색의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낮 12시 38분 1천75.6m의 영취산에 올라서니, 금남호남정맥이 서쪽으로 분기하는 분수령으로 비가 내리면 빗물은 기구한 운명에 빠지게 되는데, 아빠는 낙동강으로, 엄마는 금강으로, 아들은 섬진강으로 헤어지는 안타까움을 영취산은 알리라. 여기서 연장산행 문제로 갈등을 하다가 계속 진행할 것을 약속하고 민생고를 해결한다. 영취산 북쪽의 장수군 대곡리 주촌마을은 주논개의 고향으로 임진왜란 중 2차 진주성 싸움에서 이긴 왜군이 촉석루에서 자축연을 벌일 때 왜장을 남강가로 유인하여 끌어안고 강물에 빠져 순절한 의기로, 육십령휴게소에는 수주 변영로 선생이 지은 논개시비가 있다. 변영로의 음주 편력기 ‘명정(酩酊) 사십년’을 보면, 백주대낮에 오상순, 염상섭, 이관구 등 당대의 문사들과 성균관 뒤 잔디밭에서 술을 퍼마시다 소나기가 쏟아지자 전라의 몸으로 소 한마리씩을 잡아타고 대로를 활보하는 기행도 서슴지 않았던 분으로 세간에서는 `천하제일의 술꾼`으로 기억하는 민족 시인이다. 977.1봉을 지나고 15시경 대진고속도로 터널 구간을 지나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송전탑을 지나면서 폭우로 변한다. 깃대봉 오름길의 억새풀밭과 잡목 숲을 지날 때는 팔과 다리가 쓰리고 따가우며, 15시 53분 깃대봉에 오르니 남덕유산을 비롯한 덕유산의 연봉들이 조망되며, 200m쯤 북진한 뒤 북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서면 육십령은 바로 앞에 보이면서도 1시간 가까이 걸려서야 도착하니 17시 7분이다. 이곳 육십령은 영남 선비들의 본 고장 함양과 전라도의 오지인 장수를 이어주는 옛 고개로 산적들이 많아서 함부로 넘나들지 못했는데 이곳을 넘기 위해서는 산 아래 주막에서 며칠씩 묵어가면서 육십명의 장정들이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죽창과 몽둥이로 무장하고 떼를 지어 넘었다는 고개이다. 이로서 제3구간 15시간 49분의 산행을 마무리 하지만, 아직도 비가 내리는 가운데 육십령고개 동쪽 50m지점에 있는 육십령 식당에 와서 주인할머니(백두대간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백두대간 타는 사람들은 보면 안다고 하신다)와 종주대원들이 함께 기념촬영을 한다. 그리고 식당에서 등산화와 양말을 벗으니 15시간 가까이 물에 불어 있었던 발은 살아있는 사람의 발이라 할 수 없을 지경이며, 팔과 다리, 얼굴 등 온몸은 영광(?)스러운 상처투성이였지만 마음만은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행복감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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