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이모작을 위한 명예퇴직 박 완 규 불국성림원 사무국장/수필가 명예퇴직을 결정하기까지 많은 고심을 했다. 참으로 어려운 결정이었다. 결국 정년을 3년 남겨두고 소위 철밥통의 끈을 놓았다. 20대 홍안의 나이에 들어와 중년고개에 이른, 30년이란 공직세월이 흘렀다.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가족들의 반대와 친척들의 반대도 알게 모르게 거셌다. 법으로 정년이 보장된 공직생활을 굳이 왜 미리 퇴직하려고 하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앞으로 내가 할 일과 기회가 있을 때 놓치지 말고 잡아야한다며 가족들을 설득시켰다. 이렇게까지 힘들게 가족들을 설득시키면서 퇴직을 결심한 또한 속사정은 3년 남은 정년기간 공직의 최고 희망인 승진 등 보직의 변화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일 죽을지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는다”라는 말이 있다. 별 희망이 없이 남은 공직 기간을 철밥통에 연연해 허허롭게 지낼 수는 없다는 판단을 했다. 때마침 그동안 공직기간 틈틈이 불교신도 활동 등으로 깊은 인연을 맺어온 불국사에서 노인을 위한 사회복지사업 운영책임자를 물색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일이고 또 명예퇴임을 생각하고 있던 터라 내 의사를 전달해 쾌히 승낙을 받았다. 나의 인생의 절반이상을 차지한 공직자로서의 기나긴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젊은 공직생활 시절이었다. 동료 직원들과의 술좌석에 앉으면 정년이 다 되어가는 선배들을 안주삼아 “굳이 정년을 다 채우고 나가려고 할까? 후배들의 승진 길을 열어주는 뜻에서 몇 년 앞당겨 명예퇴직을 하면 얼마나 좋으냐” 라면서 “나는 때가 되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정년까지는 안간다”라고 버릇처럼 말해 왔었다. 사람은 물러나는 시기를 잘 선택해야 한다고 본다. “스스로 물러나는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그 또한 멋있는 사람”임을 입버릇처럼 하던 말을 실행에 옮겼다. 퇴직한 후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퇴직한 후 지방신문에 게재된 공무원들의 승진인사 발령명단을 보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현직에 있을 때의 공무원 후배였다. “선배님 덕분에 이번에 승진하게 되었습니다”라며 “식사를 한번 대접 하고 싶다”며 시간을 내 달라했다. 참으로 흐뭇한 순간이었다. 나 한사람으로 인해 후배 몇 명이 연속 승진하는 기쁨을 얻었기 때문이다. 퇴직한 지가 6개월이 흘렀지만 지금 생각해도 후회없는 선택이었다고 본다. 퇴직은 영원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또 다른 새로운 길을 걸어 볼 수 있는 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공직시절 하고 싶었던 일, 펼쳐보지 못했던 일을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은 것이다. 이제 나는 그동안 꿈으로만 생각했던 노인들의 복지를 위해 헌신하려고 한다.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증대와 함께 급속하게 나타나고 있는 고령화시대, 평균수명이 선진국처럼 높아졌다. 얼마 전 세계보건기구가 발표한 “세계보건통계2007”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78.5세로 전세계 194개국 가운데 26위를 차지했다. 한국남성의 평균수명은 75세, 여성의 수명은 82세로 나타났다. 이웃나라 일본이 평균수명 82.5세로 최장수국가의 지위를 굳게 지키고 있다. 우리나라도 초고령화 사회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퇴임을 앞두고 직장에서 배려한 덕분에 소위 선진국이라는 서유럽여행을 아내와 함께 다녀왔다. 로마,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 영국 등지였다. 도심의 거리마다 유달리 노인들이 눈에 많이 띄였다. 우리나라와 달리 노인들이 매우 활기차고 자유스러운 모습이 참 부러웠다. 호텔에서도 노인들이 가운을 입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더구나 유럽의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 중에 하나가 노인복지사업이란 여행가이드의 말을 들으며 노인의 천국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우리나라가 초고령화 시대에 진입하고 있는 즈음에 지천명인 내가 앞으로 할 일들이 중요하다고 생각 했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있다. 아직은 스스로 젊었다고 생각하면서... 아름다운 인생 2막을 열게해 준 명예퇴직제도에 고마움을 느낀다. 그동안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먹고 살고 모으기에만 급급했다. 노인으로 다가가는 시점에 나의 앞을 내다볼 수 있는 노인을 위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나를 위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런 기회가 나에게 주어진 것에 자부심을 가진다. 요즘 인생 이모작이란 유행어가 있다.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과, 무언가 새롭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신바람 나는 일인가. 벌써 가슴이 벅차오른다. 내 삶의 전반기는 앞만 보고 무작정 달려온 길이었다면 앞으로의 후반기는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와 보람을 찾는 길일 것이다. 나는 지금 산 좋고 물 맑은 청정지역, 후한 인심이 살아 숨 쉬는 산속의 고을 경주시 산내면 대현리에 위치한 노인요양시설 불국성림원에서 심호흡을 가다듬고 있다. 한동안 공사업자의 부도로 방치되어 있던 노인요양시설을 내 힘으로 완공 했다는 뿌듯한 기분에 들떠 있다. 나의 희망이 담긴 잘 갖추어진 시설에서 첫 숙직을 하며 밤하늘의 총총한 별들을 쳐다본다. 시내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다. 하늘 맑은 이곳에서 나의 장래를 꿈꿀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무한한 행복감이 밀려온다. 별이 쏟아지는 밤에 인생 이모작을 위한 부푼 꿈을 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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