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종훈의 1대간 9정맥
여섯걸음
폭우가 쏟아진다는 일기예보에도 불구하고
사치재-새맥이재-복성이재-치재-봉화산-월경산-중재
7월 14일 토요일 아침 8시경 장마철이라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걱정이 되어 최현찬 산행부대장께 전화로 낙뢰의 위험이 있다고 하니 ‘평소 죄를 많이 지었느냐’며 그렇지 않다면 강행을 하자고 한다.
수업을 마치고 오후 2시 경주의 중·고등학교 선생님들 모임인 경주향토역사연구회 답사가 있는 날이며, 60여명의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본인이 장기읍성 답사안내 및 설명을 하기로 되어 있다.
흥선대원군때 세운 척화비와 장기읍성 등을 둘러보면서 설명을 하고, 양포해변에서 회와 소주로 회포를 풀다보니 예정 시간보다 많이 지연되어 경주 도착 시간도 늦어진다.
산행 출발 시간이 20시 30분이지만 차량 한대에 모두가 탈 수 없어 두 대에 나누어 타고 1시간이 늦어진 21시 30분에야 출발을 한다.
아침에는 폭우가 낮에는 땡볕이 저녁부터 다시 80mm이상의 비가 더 내린다는 일기예보 때문에 가면서도 많은 걱정을 한다.
지리산 휴게소를 지나 사치재에 1시 18분 도착하여 제3구간 산행이 시작된다.
능선에 올라서니 밤에 비가 내렸는지 나뭇잎은 아직도 빗물을 머금은 채 휘늘어져 길 찾기가 어려운데다 산불이 난 지역이라 우거진 잡목과 고사목들이 길을 가로질러 쓰러져 있어 진행에 많은 불편을 주고 하늘에는 하현달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새맥이재에 도착하니 2시 10분 선두에서 길을 헤쳐 나가다 보니 옷은 물론이고 신발도 물이 들어와 발걸음을 옮길 때 마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하루 종일 이어지고 얼굴에는 온통 거미줄투성이다.
아막산성터는 백제와 신라가 주도권을 잡기 위해 쟁탈전을 벌였던 곳으로 이곳에서 복성이재까지는 계속되는 내리막으로 길이 미끄러워 뒤따라오는 일행들이 수 없이 넘어지는 바람에 해발이 낮아지고(?) 지축이 흔들리는 것 같다.
또한 잠을 자던 산새가 발자국 소리와 랜턴 불빛에 놀라 갑자기 날아오르면서 나의 왼쪽 어깨에 부딪쳐 풀숲에 떨어지고 철쭉과 잡목, 산딸기나무가 팔과 다리를 할퀴면서 진행을 방해하니 여름 산행시에는 반드시 긴 옷을 입고 가야 할 것 같다.
복성이재는 남원시 아영면과 장수군 번암면의 경계로 남원에는 일찍부터 흥부전의 주인공인 흥부와 관련된 지명과 이야기들이 많다.
치재를 지나 꼬부랑재를 향해 가다보니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하지만 오늘도 일출은 볼 수 없을 것 같다.
6시 10분 억새와 철쭉으로 유명한 919.8m의 봉화산 정상에 서니 주위 전망이 좋아서 백운산과 지리산 천왕봉 및 지금까지 걸어온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오고, 우측으로 내려다보이는 마을이 구상리로 ‘아홉명의 재상을 배출했다’하여 유래한 지명이라 한다.
봉화산을 지나 870봉부터는 마루금이 경상남도와 전라북도의 경계가 되며, 7시 28분 산행대장님이 배고픔을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기에 아침식사를 한다.
성삼재를 1시 18분 출발해서 이곳까지 6시간 10분 동안 걸어오면서 처음으로 마음 편하게 휴식을 취한 후, 광대치와 월경산을 지나면서부터 대원중 한분이 힘들어 한다.
하는 수 없이 중재에서 혼자 하산을 하기로 하고, 중재를 향해 내려오는데 오늘 산행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간 종주자를 만난다.
부산에서 온 40대 중반의 여성분으로 어제 무령고개를 출발하여 백운산을 지나, 지리산 천왕봉을 향해 가고 있다고 한다.
여러명이 가도 힘겨운데 여자의 몸으로 혼자서 종주를 하고 있다니 대단하다는 말과 함께 모두들 놀랄 뿐이다.
불교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하는데 처음 보는 분이지만 이 산중에서 잠깐의 만남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중재에서 하산하려던 대원은 여성종주자분을 만난 이후 용기를 얻어 계속 종주를 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9시 15분 650m의 중재 임도에 도착한다.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샘터를 찾기 위해 주위를 살펴보니, 마루금에서 오른쪽으로 약 50m 정도 떨어진 배추밭 중앙에 샘이 있어 식수를 보충하고 휴식을 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