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남면 덕천리(德泉里) 덕천은 내남면사무소가 있는 이조리 서쪽에 자리한 마을이다. 유서 깊은 성부산(별뜬산, 소두방산)을 배경으로 단석산 동쪽기슭에 자리한 박달리와 비지리 등에서 흘러내리는 이조거랑의 맑은 물과 넓은 들판을 끼고 있다. 동쪽엔 경주남산의 최고봉인 수리산의 아름다운 자태가 바라보이고, 남쪽은 아홉 개의 산등성이가 마을을 감싸 안듯이 도열해 있으며, 그 아래로 이조천이 굽이쳐 흐르는 천혜의 마을이다. 그러나 70년대에 경부고속도로가 이 마을 동쪽을 지나 최근엔 경부고속철도의 거대한 콘크리트 괴물이 앞·뒷산을 뚫고 이 마을을 관통해 버렸다. 산과 들, 바람과 물이 빚어내던 시골마을의 고즈넉한 정취는 간데없고,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보내는 희멀건 살빛이 압도했다. 가슴 저 깊은 곳으로부터 아련한 아픔이 피어오르는 것은 왜일까? 경주부윤 지낸 노영경이 ‘덕천리’ 덕천은 ‘신을(辛乙)’과 ‘구왕(九旺)’, ‘현동(玄洞)’ 등 3개 마을로 이루어졌다. 이 마을이 덕천리가 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의 일이다. 조선말 경주부윤을 지내고 이곳에 살던 노영경(盧泳敬)이 신을 북쪽에 있는 샘(泉)의 의미를 내세워 ‘덕천(德泉)’이라고 했다고 한다. 또 옛날 이곳에 덕천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그 영향으로 ‘덕천’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경주에서 이 마을에 가려면 35번 국도를 타고 언양방면으로 가다가 내남면사무소가 있는 이조에서 우회전하여 경부고속도로 밑으로 난 굴다리를 지나면 고속철도 구조물에 가린 넓은 들판이 나타난다. 이곳이 덕천이다. 경주시청에서 17km, 26분 거리이다. 고속철도 마을 가로질러 덕천은 동쪽에 들판을 사이에 두고 이조리와 부지리에 접해 있고, 서쪽은 이조거랑을 경계로 상신리에 닿아 있다. 남쪽은 구왕골의 아홉 등성이를 두고 월산리와, 북쪽은 소두방산을 경계로 화곡리와 마주하고 있다. 덕천은 총 169가구에 386명의 주민이 생활하고 있다. 주로 벼농사에 의지하고 있으며, 한우 560두 정도를 기르고 있다. 덕천1리는 74가구에 농가 55가구, 비농가 15가구로 인구 150명이다. 한우 27가구, 120두이다. 덕천2리는 50가구, 116명으로 한우가 12가구, 140여두이다. 덕천3리는 45가구, 110여명이 주로 벼농사에 종사하고 있고, 8농가에서 한우 300여두를 기르고 있다. 이 마을 최고령자는 덕천1리 이턱순(94 시모댁) 할머니로 건강이 그리 좋지 않아 바깥출입이 어렵다. 고씨 문씨 이씨 살아 ‘고문리(高文李)’ 구왕골(九旺谷) 본래 이 마을은 임진왜란 후에 고씨(高氏), 문씨(文氏), 이씨(李氏)가 이주해 와 살았으므로 ‘고문리(高文李)’라고 불러오다가, 마을 앞산에 9개의 등성이가 왕성하다고해서 ‘구왕골’이라고 했다고 한다. ‘구왕동(九旺洞)’, ‘왕댕이’, ‘왕굴’, ‘구왕굴’이라고도 한다. 또 약 100여년 전 경주부윤을 지낸 기장출신 광산인 노영경이 마을이 왕성하라는 뜻에서 ‘왕동(旺洞)’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다. 덕천리에서 제일 큰 마을인 구왕골은 ‘장승배기’, ‘안각단’, ‘선작골’, ‘새각단’, ‘고당수’ 등 5개 마을로 이루어 졌다. 지금은 문씨 10여 호 있고, 고씨와 이씨는 그 후손들이 없다. 고당사(古堂舍) 옛날 당집이 있던 마을로 지금도 그 자리에 당숲을 이루고 있다. 구왕 동쪽에 있다. ‘고당수’라고도 한다. (27가구) 안각단 구왕의 안쪽에 있는 마을이다. (22가구) 새각단 덕천1리 마을회관이 있는 마을로 새로 생겼다고 붙인 이름이다. (10가구) 선작골 선녀가 베를 짜는 형국의 골짜기가 있는 마을이다. ‘선직골’이라고도 한다. 이 마을 앞 논 가운데에 북(베틀의 한 부분으로 씨실을 풀어주는 구실을 하는 나무통)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5가구) 장승배기 큰물이 자주 나고 재앙이 잦아 마을 어귀에 장승을 세웠던 곳에 있는 마을이다. (5가구) 재나무각단 재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던 마을이다. 재나무는 밀원수로 8월에 꽃이 핀다. 지금도 이 일대에 재나무가 있다고 한다. (6가구) 동제 이 마을은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에 동제를 지낸다. 당목 고당수의 당숲에는 느티나무, 회나무, 팽나무 등 약 20그루의 고목이 숲을 이루고 있는데 그 가운데 느티나무를 마을의 당나무로 섬기고 있다. 주민들은 이 나무의 수령이 약 300년 된다고 한다. 이씨 정씨 집성촌 ‘신을’ 신을(辛乙) 본래 상신의 아래쪽에 있다고 해서 ‘하신(下辛)’이라고 했으며, 마을 모양이 을(乙)자를 닮았다고 하여 ‘신을(辛乙)’이라고도 한다. 신을은 ‘웃각단’과 ‘아릿각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씨(15)와 정씨(13)의 집성촌으로 숯가마골 남쪽에 있다. 웃각단 신을 윗마을로 정씨 집성촌이다. (29가구) 아릿각단 신을 아랫마을로 이씨 집성촌이다. 숲이 많아 ‘숲각단’이라고도 한다. (20가구) 동제 이 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이 되면 동제를 지낸다. 당목 마을 가운데에 오래된 느티나무가 당목으로 있었는데 최근 고속철도 공사로 없어지고, 지금은 100여년 된 다른 느티나무를 새로 당목으로 정했다고 한다. 인재 많이 난 ‘현동’ 현동(玄洞) 경덕왕릉이 있는 쇠비산이 소가 누워있는 형국인데 이 마을은 소의 젖 부위에 해당하는 명당이라고 한다. 그래서 인물이 많이 난다고 한다. 남성미, 숯가마골, 골안, 매미골 등 5개 마을로 이루어 졌다. 숯가마골에서 유래해 ‘현동’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숯가마골 신라 때 숯을 굽던 가마가 있었기 때문에 ‘숯가마골’, ‘수가마동(藪可馬洞)’, 또는 ‘현동’이라 불렀다고 한다. 또 이 마을의 안 골짜기에 신라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전해오는 오배지(烏背池)라는 못에 연유해서 마을이름을 그렇게 불렀다고도 한다. 평해 황씨 집성촌이다. (12가구) 남성(南星) 성부산 남쪽 끝자락에 있는 마을이라 ‘남성(南星)’, ‘남성미(南星尾)’라고 했다고 한다. 또 이 마을에서 보면 남쪽 하늘의 별이 유독 꼬리가 달린 듯이 보인다고 하여 이렇게 불렀다고도 한다. 구왕리 북동쪽에 있다. (20가구) 골안 숯가마골 안쪽에 있는 마을로, 신라 때 유리가마터가 있다. (5가구) 새비산 새비산 밑에 있는 마을이다. (9가구) 매미골 숯가마골 동쪽의 현재 공사 중인 경부고속철도 터널 부근 마을이다. (1가구) 동제 이 마을은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에 동제를 지낸다. 당목 마을 앞 거랑 가에 있는 오래된 포구나무이다. 이상한 별 뜬 ‘소두방산’ 성부산(星浮山) 덕천리와 화곡리 경계에 있는 솥뚜껑을 엎어놓은 것 같은 산으로 ‘별뜬산’, ‘소두방산’이라고도 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때 어떤 사람이 벼슬을 얻으려고 아들을 시켜 밤에 이 산에 올라가 횃불을 쳐들게 하였다. 밤하늘에 갑자기 이상한 별이 나타나자 백성들이 술렁거렸다. 급기야 왕이 이 별을 없앨 사람을 공모했고 횃불을 들어 올리게 했던 그 아버지가 응모했다. 그런데 일관(日官)이 왕에게 아뢰기를 “이것은 큰 변괴가 아니라 단지 어느 한 집의 아들이 죽고, 아버지가 울게 될 징조일 뿐”이라고 하여 공모를 그만두었다. 그날 밤 그 아들은 산에서 내려오다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고, 그 아비는 슬피 울었다고 한다. 또 한 이야기는 신라가 백제의 잔적을 추격하여 한산성에 진을 치고 있는데 고구려와 말갈 군사들이 포위하여 매우 위태로운 상태였다. 왕이 그 대책을 고민하자 김유신(金庾信)이 나서서 성부산에 단을 세우고 신술을 베풀었다. 그러자 큰 불덩어리가 단 위로부터 나타나더니 북쪽을 향해 날아가 적의 무기를 모두 쳐부숴 버렸다. 적군은 놀라 달아나고 신라군은 무사히 돌아왔다고 한다. 동보산 구왕 서쪽 산으로 해가 뜰 때 바위들이 모두 불상처럼 보인다고 해서 ‘동불산’이라고 했었는데 변해서 ‘동보산’이 되었다고 한다. 나발산 나발 같이 생긴 산으로 곧 ‘쇠비산’을 말한다. 이 산이 남성미, 숯가마골에서 보면 나발모양이고, 부지 쪽에서 보면 소 형국이라고 한다. ‘새비산’, ‘쇠비산’, 혹은 뱀 같이 생겼다 하여 ‘사비산’이라고도 한다. 새비산 모양이 마치 소 같이 생긴 산으로 ‘쇠비산’이라고 한다. 혹은 뱀 같이 생겼다 하여 ‘사비산’이라고도 한다. 능고개 동쪽에 있다. 선녀 내려와 배 짜고 능고개 현동에서 부지로 넘어가는 고개로 그곳에 능이 있다고 한다. 대문다리 양쪽 어귀에 산이 마주 보고 높이 솟아 있어 마치 대문 같다고 한다. 덕천에서 화곡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오뭇골 서쪽에 있다. 본래 이곳이 인재가 날 명당인데 당나라 장수 이여송이 혈을 끊은 자리라고도 한다. 대밭너미 신을 남쪽에서 월산리 너죽골로 넘어가는 고개로 고개 너머에 대나무밭이 있어서 붙인 이름이다. ‘대밭니미’ 라고도 한다. 독숫골 구왕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송아지 머리 같이 생긴 바위가 있다. 이 일대의 아홉 골짜기를 통칭해서 ‘독숫골’이라고 한다. 선작골 구왕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선녀가 내려와 배를 짰다고 한다. ‘선녀골’, ‘서녘골’이라고도 한다. 서당골 서당이 있었다고 하는 골짜기로, 신을 남쪽에 있다. 방아골 신을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아이를 업고 방아를 찧는 형국 가운데 방아처럼 생긴 골짜기이다. 호박골 동쪽에 있다. 숯가마골 남성 동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숯을 굽던 가마가 있었다고 한다. ‘현동(玄洞)’이라고도 한다. 신을바대 신을 뒤에 있는 들로 덕천과 이조 사이에 있다. 아릿짐골 짐골의 아래쪽 골짜기로 신을 남쪽 서당골과 어분골 사이에 있다. 어분골 신을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아이를 업고 방아를 찧는 형국인데 호박골 동쪽에 있다. 호박골, 어븐골, 방아골이 나란히 있다. 오뭇골 현동 숯가마골 뒷산에 있는 골짜기로 산이 다섯각으로 이루어져 ‘오뭇골’이라고 한다. 능고개 서쪽에 있다. 왜배실 숯가마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왜뱁실’이라고도 한다. 웃짐골 짐골의 위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짐골 서당골의 서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호박골 신월의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아이를 업고 방아를 찧는 형국 가운데 호박(방아를 찧을 때 곡식을 넣는 도구)에 해당하는 골짜기이다. 방아골 서쪽에 있다. 마을에 맑은 물 공급한 ‘동보’ 동봇들 동보가 있는 들로, 신을 서쪽에 있다. 모래물 홍수로 떠내려온 모래로 이루어진 들로, 남성미 앞에 있다. 새들 신을 남쪽에 새로 형성된 들. 상수보가 있어 ‘상수보’라고도 한다. 왜빌들 오배지의 물을 받아 농사를 짓는 들로 남성 서쪽 쇠비산 아래에 있다. ‘왜빌못받이’라고도 한다. 동보 동보산 아래에 있는 보로 이조거랑의 거랑바닥 300여m를 잘라 홈을 파고 찰흙을 발라 집수로를 만들고 그 위를 천개돌로 덮어 거랑 물을 끌어와 만든 보다. 이 보로 인해 사시사철 맑은 물이 마을 가운데로 흘렀고 이 물을 식수와 생활용수, 농업용수로 사용했다고 한다. 노영경고택 본래 왈(曰)자 모양의 큰 집이었는데 지금은 3채의 건물만 남아 있다. 조선말 경주부윤을 지낸 노영경이 사서 들어온 집이었다고 하니 100년은 훨씬 넘은 집이다. 지금은 거의 허물어지고 폐가가 된 채 방치되어 있다. 신을바댓보 신을바대에 있는 보이다. 광석초등학교 덕천리에 있던 광석초등학교 터. 1949년 10월 개교하였다가 1999년 3월 내남초등학교에 통합되었다. 2008년 2월에 경주시에서 국제규격의 축구장을 비롯한 내남면 체육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교사를 헐었다. 오배지(烏背池) 숯가마골 안쪽에 있는 못이다. 왜배실에 있는 못이라 ‘왜배실못’, ‘왜빌못’이라고도 한다. 불선바우 매우 영검하여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바위로 신을 서남쪽에 있다. 최근에도 촛불을 밝히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가마바우 선작골에 있는 바위로 선녀가 가마를 타고 내려온 바위라고 한다. 총각바우 신을 남쪽 산기슭의 이조거랑 가에 있다. 지금의 고속철 터널 동쪽 아래에 있다. 그 아래(동쪽) 이조와의 경계에 처자바우가 나란히 서있다. 이조거랑 제방 자주 터져 불안 성부산 정기를 받아 인재가 많이 난다고 알려진 이 마을은 이조천 제방이 비만 많이 오면 상습적으로 터져 주민들이 늘 불안하다고 한다. 이조천이 이 마을에 이르러서는 물길이 급하게 굽어지는데 그 부위의 제방이 물살을 견디지 못해 자주 터지고 범람해 물난리를 자주 겪는다고 한다. 지금까지 돌망태로 제방공사를 하지만 계속 터져 불안하니 아예 옹벽을 쳐서 홍수피해를 근본적으로 막아야한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그리고 최근 수세식화장실이 많이 늘어나는데 하수시설이 되어 있지 않아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하수구나 오수관을 설치해 환경오염을 막아야 한다. 또 농수로정비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한다. 이 마을 출신으로는 최정호(85 전 연안초등학교 교장), 정해택(75 전 동아대 교수), 최해욱(74 전 위덕대학교 이사장), 황정식(71 전 순천교도소 행정과장), 정일락(70 예비역 육군중령), 문상식(70 전 울산경찰서 교통과장), 이한주(65 전 도로공사 부사장), 이만수(64 예비역 공군중령), 황수원(63 전 국세청 차장), 황인동(62 전 청도부군수), 김경태(62 전국육아협회회장), 권오정(60 성동동장), 김태환(58 감포읍장), 황영목(57 대구지방법원 지원장), 문상락(56 선도동장), 최병순(56 동아제분 이사), 이종구(43 변호사) 등이 있다. 사진 최병구 기자/ 정리 이채근 기자 자문 허계수(족보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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