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를 만날 수 있는 곳 ‘삼선방’
또 하나의 유물 ‘복제품’
전설 속에 존재하는 황금의 도시 엘도라도.
경주시 하동에 위치한 경주민속공예촌 내 ‘삼선방’은, 금관이 5점, 금귀고리만 해도 700여점이 출토된 동방의 황금나라 신라를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입구를 들어서면 여러 공예품과 함께 작고 앙증맞은 금관이 눈길을 끈다.
1921년 경주 금관총에서 100여개의 금엽과 곡옥 장식의 순금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형식을 갖춘 금관(국보 제87호)이 우리나라 최초로 발견됐다.
테두리 위에 입식을 세우고 금판을 오려서 만들고 출(出)자형과 녹각(鹿角)형이 주종을 이룬 입식은, 금실을 꼬아 규칙적으로 매단 곡옥[曲玉]이나 금제달개[金製瓔珞] 장식 등 타 지역의 금관과 구별되는 뚜렷한 특징이 있다.
이런 금관을 소중히 해야 하는 현세대의 책임감을 대신해 주고 있는 유물복제 전문가 김진배(46)씨. 그는 현재 대학에서 만난 부인 김정희씨와 함께 함안박물관 유물복제 작업을 하고 있다.
작업실의 한쪽에는 송곳, 망치, 정, 끌 등 손때 묻은 공구들이 정갈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고 작업대에는 얇은 은판에 그린 밑그림이 마지막 손길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일은 억지로 강요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관심과 재미가 있어야 하지, 하기 싫으면 못하는 작업이다. 하루 종일 일하다보면 아내와 싸운 사람처럼 말 한마디 안하게 된다. 그만큼 시간 가는 줄을 모를 때가 많다”는 그의 말을 들으며 유물복제가 천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김씨가 유물복제 전문가가 된 것은, 70년대 초 신라금관을 최초로 복제한 금속명장(제91-5호)이었던 선친 김인태씨의 역할이 컸다.
어릴 적부터 고고학에 관심이 많아서 선친과 함께 전국의 박물관을 돌며 유물들을 접하면서 그 시대의 장인정신과 혼을 경험했고 고등학교 때부터 작업에 참여 했으며 이론적인 공부를 위해 1989년 동국대 국사학과를 졸업, 1993년 선친의 타계로 본격적인 작업에 매달렸다.
지금까지 복제한 유물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보통 한번 작업에 들어가면 1건당 5~60점씩 납품하게 된다.
김씨의 복제품은 국립문화재기관의 주문을 받아 제작, 검증 받는데 금관, 장신구(허리띠, 귀고리 등), 청동기, 철기, 기와, 토기 등 그가 만든 수천 점의 복제품은 현재 전국의 박물관에 소장, 전시중이며 설명하는 글이 없다면 일반인들은 진품인지 복제품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실물에 가깝다.
가장 힘들었던 유물은 경주 부부총에서 출토된 금제태환이식, 즉 금귀고리였다는 김씨는 “장식 하나에도 혼을 불어넣어야 제대로 된 복제품이 탄생한다던 아버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 지금도 노력 중”이라며 “판매하는 것은 마지막 마무리 시에 새것처럼 보여야 하므로 컬러를 덜 들어가게 하고 복제품은 오래된 세월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니 옛날 것처럼 보색 처리한다”고 했다.
1993년 일본 시마네현 금관총 금관 외 다수 제작을 시작으로 국립부여박물관 무령왕관식(1993), 국립중앙박물관 부부총 귀걸이(1999), 국립경주박물관 천마총 목관모형(2002), 국립부여박물관 백제금동향로 제작과정 모형(2003), 국립민속박물관 황남대총 금관(2001), 국립중앙박물관 개관전시유물 금동용두 등, 발해유물과 백제금동대향로(2005), 국립중앙박물관 요시노가리 특별전 12점 등 수많은 유물 복제품에서 보듯이 전국의 박물관들이 그를 찾고 있다.
천년의 세월을 겪은 것은 비단 신라만은 아니었다. 그것조차 미리 느끼고 찾아다닌 그를 고구려도 백제도 필요로 하고 있다. 그가 만드는 것은 단순한 유물 복제품이 아니라 또 하나의 소중한 유물이 될 것이다.
황재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