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종훈의 1대간 9정맥 다섯걸음 남원과 운봉을 연결하는 여원재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 정령치-고리봉-가재마을-수정봉-여원재-고남산-매요마을-사치재 정령치 휴게소 샘터에서 시원한 냉수를 한잔 마시고 정신을 가다듬으니, 이곳은 지리산 역사의 첫 장을 연 달궁의 마한 왕조가 펼쳐진 곳으로 급경사 길을 20여분 올라서니 고리봉(1,304.5m)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은 삼각점과 정령치 0.8km, 바래봉 8.8km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며, 길 주의 지점이다. 여기서 직진 능선은 세걸산과 철쭉으로 유명한 바래봉, 덕두산으로 이어지는데 요즈음 유행하고 있는 지리산 태극종주는 수양산에서 웅석봉과 천왕봉을 거쳐 덕두산까지 연결하는 약90여km구간을 말하며, 대간은 반드시 이곳 고리봉에서 좌측 능선을 따라 내려서야 한다. 고리봉에서 고촌까지는 고도를 700여m 낮추어야 하는 계속된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60번 지방도로에 도착하니 7시 13분이다. 이제 신선들의 천상세계에서 벗어나 속세의 인간세상으로 내려선 느낌이며, 지리산 자락을 완전히 벗어나는 순간이다. 해발 6~700m의 포장도로를 따라 고촌, 주촌 마을로 이어진 1km정도 되는 도로 자체가 대간의 마루금인데 이곳 들판에는 안개꽃을 많이 재배하고 있으며, 다시 산으로 오르는 길목격인 가재마을이 나온다. 가재 마을에는 옛날 우물이 그대로 남아 있어 길손들을 맞이하고 있지만 식수로 마시기에는 곤란한 것 같으며, 마을 뒷산에는 노송 네그루와 비석에는 당산제전, 노치라는 글씨가 씌어 있으며 희사한 사람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아침을 먹은 후, 계속되는 오르막을 오르니 8시 55분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는 수정봉(804.7m)이다. 정상은 잡목으로 인해 주위 조망이 불가능하고, 입망치를 지나 다음 봉우리에 올라서니 안양서 왔다는 백두대간 단독 종주자 한분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열흘간 연속 종주를 할 계획이라 한다. 10시 12분 도착한 여원재는 남원과 운봉을 연결하는 고개로 백제와 신라의 국경지대여서 숱한 전쟁을 치른 곳이며, 그후에도 전쟁이나 민란, 반란 등이 있을 때마다 항상 쟁탈의 대상이 되던 곳이다. 특히 1894년 1월 반봉건 반외세를 외치며 일어선 동학 농민운동 세력은 이 여원재 전투에서 패하는 바람에 영남지방으로는 한걸음도 들여 놓지 못했다. 그리고 동편제의 탯자리인 운봉읍 화수리 비전마을은 판소리 동편제의 창시자인 송홍록과 동생 송광록, 판소리의 여류 명창 박초월이 태어나고 소리를 가다듬은 곳이다. 해학과 풍자와 특유의 음조로 가장 한국적인 음악인 판소리는 원래 열두 마당 중 오늘날은 신재효가 정리한 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수궁가, 적벽가, 변강쇠가 등 여섯 마당이 전해지고 있으며, 이를 부르는 명창의 출신지역, 창법, 조의 구성에 따라 크게 동편제와 서편제로 나누고 있다. 고남산 오름길은 산불 피해를 입었으며 고남산 암릉에 도착하니, 바람도 없는 무더운 날씨에 계속되는 오르막으로 피로는 더해지는 가운데 12시 30분 846.4m의 고남산에 올라선다. 북쪽으로 88고속도로가 보이기 시작하고 점심을 먹은 후 매요마을을 향해 출발한다. 포장길과 지름길을 따라 매요마을 상점(줄을 쳐서 산악회 리본을 걸 수 있도록 배려해 둠)을 지나고 운성초등학교(폐교)에 도착하니, 부산과 순천에서 홀로 대간을 하시는 두 분을 만나는데 고촌마을에서 이곳까지가 오늘 일정이라 한다. 큰 도로를 따르다 삼거리에서 삼거리 목기공장 옆 절개지를 오르면 능선 마루금은 몇 개의 낮은 봉우리를 오르내리다 15시 25분 오늘의 종착점인 88올림픽 고속도로상의 사치재(499m)에 도착하고, 다음 구간 들머리를 확인하면서 뽕나무에 매달린 검붉은 오디를 맛있게 따 먹는다. 오늘 산행은 시간이 흐를수록 컨디션은 많이 좋아졌지만, 초반의 몸살과 한낮의 작렬하는 태양 아래에서 흐르는 땀과 차오르는 숨을 참고 견디면서 진행한 힘든 산행이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염려해 주시고 특히 산행대장님은 직접 집으로 전화를 해서 걱정하고 있을 가족들을 안심시켜 주신 덕분에 11시간 55분의 산행을 무사히 마무리 한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