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종훈의 1대간 9정맥
두걸음
지난날 제자들과의 추억을 더듬으며
천왕봉-제석봉-연하봉-촛대봉-영신봉-벽소령
꿈에도 그리던 ‘백두대간’ 종주 첫발을 힘차게 내딛는 가슴 벅찬 순간이다.
첫 구간인 천왕봉에서 성삼재로 이어지는 주능선은 제석봉, 촛대봉, 영신봉, 칠선봉, 덕평봉, 형제봉, 명선봉, 토끼봉, 삼도봉, 반야봉, 노고단, 종석대 등 고산 준봉들이 연이어 솟아있다.
지리산 제1경인 천왕일출은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고 할 정도로 행운이 따라야 하는데 오늘은 그 행운이 주어지지 않는다.
장거리 산행이라 일출 전에 출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필코 완주를 하겠다는 굳센 각오로 4시 45분 힘찬 출발을 하는데 지난날 학생들과 이곳을 오르기 위해 고생한 기억이 떠오른다.
1994년 여름 방학 때 경주정보고등학교 등산부 학생 18명과 함께 대원사를 출발하여 치밭목 산장을 거쳐 천왕봉에 올랐다.
치밭목 산장에서 1박을 하고 식수를 구해 정상을 향해 오르는데 날씨가 더워 물을 아껴 먹도록 했다.
그러나 어린 학생들이라 갈증을 참지 못하고 우선 먹고 보자는 식으로 모두 마셔버리는 바람에 출발한지 30여분만에 거의 바닥이 났다.
한 학생은 탈진한 상태라 힘이 드는데다 갈수록 더위는 심해지고 가뭄이 심한 상태라 등산로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천왕샘은 물이 말라 버렸다.
하지만 모두들 인내심으로 타는 목마름을 참고 견디면서, 한 걸음 한 걸음 힘들게 올라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정상에 선 것이다.
최악의 상태에 대비해 남겨둔 500ml을 꺼내 플라스틱 뚜껑으로 한두잔 씩 목만 축인 후 우리나라 3대 계곡이며, 지리산 마지막 비경인 제9경의 칠선계곡으로 하산 한 고통스러웠던 추억이 회상된다.
부정한 사람은 오르지 못한다는 하늘에 오르는 길목 통천문을 통과해 5시 20분 제석봉을 지나는데,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고귀한 생명이 탄생하듯 주위의 어둠을 밀어내는 불덩어리 하나가 서서히 얼굴을 내민다.
바로 천지개벽을 알리는 장엄한 일출의 순간이다.
장터목산장을 지나 연하선경으로 유명한 연하봉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세석철쭉으로 유명한 촛대봉을 지나니, 9정맥 중 우두머리인 낙남정맥 분기점으로 지리산에서 가장 신령스러운 봉우리인 영신봉이다. 이곳 영신봉은 후에 낙남정맥 졸업식 때 폭설을 만나 엄청 고생을 한 봉우리이기도 하다.
칠선봉을 지나 도착한 곳이 선비샘이다.
옛날 평생 가난하고 천대 받으며 살아온 노인의 유언이, 죽어서라도 제대로 사람대접 받아보는 것이었다. 자식들은 샘터 위에 무덤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샘에서 물을 뜰 때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므로 이 노인의 무덤에 절하도록 했다는 씁쓸한 전설이지만 지금은 무덤도 보이지 않고, 샘도 파이프로 연결되어 잊어진 전설이 되었다.
벽소령은 빨치산 토벌을 위해 닦았다는 화개에서 마천을 잇는 작전 도로가 지나는 곳으로 바로 지리산을 동서로 구분하는 기점이며, 이 고갯마루에서 바라보는 밝은 달은 동양화처럼 아름답다해 벽소명월로 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