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분계선을 넘어
손 경 호
수필가/교육행정학 박사
북측 개성시를 향한 우리 일행의 버스가 군사분계선을 넘어서자 바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양국가의 국기였다.
우리측 문산 대성동 마을에 높이 게양된 태극기와 북측의 인공기가 서로 얼마간의 거리를 두고 매우 높은 곳에서 거센 바람에 힘차게 펄럭이고 있었다. 지척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영토임을 굳게 알리듯 그 위용이 대단하다. 반세기가 지난 금년에 비로소 금강산에 이어 육로, 철로가 열려 그야말로 남과 북이 더불어 한반도의 미래를 여는 평화와 번영의 길이 뚫린 셈이다.
방북에 앞서 몇가지 유의사항을 듣기도 했지만 특이한 사항은 양국가의 호칭문제다. 나라를 지칭하는 건 이름을 생략하고 반드시, 북측, 남측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0월 두 정상의 회담이 열린것도, 결실을 맺은 것도 모두 7천만 겨레의 뜻이 모여 함께 이룬 성과에는 국민 모두가 찬성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아무런 의의가 없다. 이로 인해 통일의 밑거름이 되고 한반도의 평화와 행복을 이끄는 힘이 되도록 양국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대한 진실성에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금단의 벽을 넘어 신뢰로 이어지는 만남에는 반드시 하나의 목적밖에는 더 이상의 기대는 시간이 해결할 것으로 믿는다.
잘 정리된 포장도록를 따라 20여분 쯤 지나자 초록색 철망이 눈에 띄고 넓은 들판에 드문드문 세워진 작은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으며 국도와 철도가 평행선을 이루면서 북쪽으로 2차선 도로가 한산하기만 했다. 공동으로 북측 사람들이 사는 인가가 대체로 똑같은 건축양식으로 공공건물과 차이를 두고 있으며 개발사업에 많은 인부가 동원되어 추운 날씨에도 작업은 계속되고 있었다. 잠시도 차창에 눈을 떼지 않고 숨소리만 들릴뿐 아무도 얘기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버스안은 조용했다.
곧 우리나라 건축 형태가 들어오자 개성공단에 진입했음을 육감으로 느꼈고 조립식 건물들이 황량한 들판에서 우리를 반겼으며 건물 이름도 낯익은 글씨라서 긴장속에서도 안도의 마음을 가졌다. 맨 처음 도착한 곳이 가장 큰 건물을 유지하고 있는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가 자리하고 있는 본관에 들어섰다.
북측 안내원들의 다정한 영접을 받으면서 관리위원회 우리측 대표자의 정감어린 안내와 소개 그리고 질의응답이 계속됐다. 낯선 이방인을 맞이하는 것처럼 서먹한 분위기였으나 환영사의 내용에 우리 모두는 승리자의 기쁨으로 방안의 열기는 아주 고무적이었다.
“개성은 고려왕조의 500년 도읍지로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유서깊은 곳입니다. 서울에서 60여키로 거리에 있는 가까운 곳이지만 50년 넘게 왕래하지 못한 금단의 땅이었습니다. 특히 분단이후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팽팽한 긴장이 흐르던 이 지역이 개성공업지구로 다시 태어나 민족화합과 공동번영을 한단계 도약시킬 상생의 산업현장으로 변모했습니다. 개성공업지구는 남북근로자가 한 공장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일하는 새로운 형태의 경제협력의 하나입니다”라는 관리위원장의 인사와 더불어 쉽게 선전할 수 있는 자료들을 나눠주면서 다과도 권하면서 궁금한 것들을 성의있게 설명하는 분위기 속에 방문의 첫 시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