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왕실음식
정 청로 교수 ( 영산대학교 )
kjchung@ysu.ac.kr
조선왕실 음식 대장금 요리와 더불어 근자에 신라왕실음식이 식문화 전문인들과 식도락 마니아들 간에 경향에서 빈번하게 회자되고 있다. 이에 대한 필자의 우견을 몇 가지 밝히고자 한다.
식문화 권별로 다양한 특색은 분명 있지만 공통적으로 인간이 음식을 찾는 매력은 2가지로 대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하나가 영양이고 다음이 맛에 대한 기억인 미억(味憶)이다. 식생활 수준이 낮은 상황에서는 우선적으로 배고프니 먹어야 한다는 영양에 대한 매력이 지배적이고 식생활이 향상되면서 자연적으로 맛에 대한 식도락적인 매력인 미억이 압도적으로 강하게 작용한다.
따라서 음식의 대중적 가치는 맛 가치와 영양 가치로 대별된다. 그러나 서민들이 추구하는 음식의 가치와 달리 왕실음식은 대중적, 보편적 기본가치 외에 플러스알파 가치가 바로 식인병을 예방하는 왕실 식치문화(食治:음식치료)적 가치이다. 그러므로 왕실의 질병을 음식을 통하여 예방하고자 하는 것이 왕권의 안위를 최우선하기 위한 식치음식(약선:藥膳)개념이다. 식치음식 개념은 왕실 음식제작 과정의 중요한 요소로 설정되었고 목표를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조리방법이 연구되고 담당 관리가 왕실 내에서 선임되었던 것이다.
한편 신라 왕실의 경우 국제교류에 있어서 중국과 제도, 천문, 기술 등 중국의 문물과 문화를 적극적으로 교류하면서 중국, 서역 등과 국제적인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였는데 시기적으로 당나라 시대의 교류가 활발하였고 종교, 정치, 식생활면에서도 영향을 많이 받았다. 당시 당의 왕실에는 황제의 건강관리를 위해서 식의(食醫: food doctor) 제도를 두고 황제의 건강을 음식을 통하여 관리하는 직무를 담당하게 하였던 것이 중국왕실 약선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당시의 국제적인 상호교류 관계에서 중국의 왕실 식의제도는 신라,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조선시대의 대장금으로 발전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신라와 교역이 많았던 당나라의 식치 문화를 신라왕실에서 실용한 결과는 우리민족의 약식동원 사상으로 발전하였고 후일 한국약선의 근간을 유지하는 역사성과 이론적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다양한 왕조의 변천에도 불문하고 왕실의 수라간에서는 음식의 대중적 가치인 맛과 영양을 기본으로 하되 화려하고 값비싼 식 재료만을 사용하여 음식을 제작하는 조리목표를 지양하였다 반면에 왕실의 건강유지와 질병예방을 위한 식치음식 즉 웰빙 음식인 약선음식이 결국 시대를 불문하는 왕실음식의 지존 개념으로 자리메김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왕의 용변을 대변은 매(梅) 소변은 우(雨)라고 하여 세밀한 관찰 후 다음 음식 결정에 참고하였던 것이다. 왕실의 물 역시 소중하게 다루었다. 왕에게는 아침의 양의 기운이 강한 새벽 정화수를 왕비에게는 음기가 있는 저녁 샘물을 음용수로 제공하여 식치문화을 철저히 실용화하였던 것이 왕실음식제작의 이론적 배경인 것이다.
조선 대장금의 인기를 진화시킬 후속 한류 식문화 콘텐츠로 신라의 이사금을 신라왕실음식으로 이미지화하여 식문화 트렌드를 리더해가는 지역음식 연구도 구상하여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일전에 건강 관련 통계에서 우리국민이 1년에 평균 10번 정도의 약을 복용하는 것으로 보고 된바있다. 일상에서 하루 세 번, 연간 대략 1000번 먹는 음식물과 10번 먹는 약물 중에서 어느 쪽에 의존적으로 시민건강을 관련지어야 할지는 역사 속에서 왕실음식의 약선 역할과 식치 개념에서 교훈을 얻고 해답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