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드벌룬 앞 베란다에 봄 햇살이 비듬처럼 떨어지던 날, 일곱 살 배기 아들 녀석의 성화에 못 이겨 봄나들이를 나섰다. 꽃잎들 여럿 우수수 길 위에 떨어져 있고, 벚꽃들은 눈꽃처럼 흩날린다. 눈물처럼, 촛농처럼 떨어져 누운 꽃 진 자리를 보니 문득 가슴이 아련해져서 아들의 손을 슬며시 잡아끌었다. “아, 어머니, 저기 좀 보세요. 하늘에 큰 풍선이 떠 있어요” 아들은 한껏 들뜬 목소리로 높은 건물 위를 가리켰다. 내가 살던 아파트 근처에 한창 공사 중이던 빌라가 드디어 담장을 짚고 불쑥 일어서 있었다. 공사 완공을 축하하느라 건물위엔 색색의 큰 애드벌룬이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었다. “그래, 애드벌룬이구나. 끈이 있으니 애드벌룬이지, 묶여 있으니 훨훨 춤을 출 수 있는 것이지. 줄도 끈도 없으면 저것은 한낱 고무에 불과하단다” 아들은 내 말의 의미를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그저 신이 나서 박수를 치며 애드벌룬을 쳐다보았다. 아들 녀석과 애드벌룬을 번갈아 바라보다 나는 몇 해 전 하늘 속으로 영영 날아가 버린 큰 애드벌룬 하나를 떠올렸다. 아버지, 오랜 투병 생활 끝에 돌아가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피안의 세계로 애드벌룬처럼 날아가 버린 날은 내가 아들을 출산한 바로 그 다음날이었다. 나는 딸 둘을 난산 끝에 낳고 셋 째 아이를 가졌는데 유산기와 조산기가 있어 열 달 내내 살얼음을 걷듯 조심조심 생활했었다. 그즈음 아버지께선 예전 공직 생활 중에 다치셨던 다리 수술을 두 번이나 받으셨고 또 한 번의 다리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셨다. 난산 끝에 제왕절개 수술로 아들을 출산한 그날 밤, 나는 이승과 저승의 문을 오며 들며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나는 가느다란 산소 유리관으로 세상과 소통하면서 생(生)의 끈을 놓지 않았다. 아직 아들 녀석을 한 번도 품어보지 못했는데 이대로 줄을 놓아 버릴 순 없었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둘째와 다섯 살 배기 첫째가 내 명줄을 바투 쥐고선 놓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생사고비를 넘긴 다음날 아침, 아버지께서 병실로 찾아오셨다. 목발을 짚으신 채로 아주 힘겹게 병실 문턱을 넘으셨다. “고생했다. 요즈음 세상이 아무리 변했다 해도 이서방 집은 워낙 아들이 귀한 집이다. 이젠 어깨 펴고 살아라” 그리곤 장미 꽃 한 송이를 건네 주셨다. 순간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평소 그렇게 무감하시고 엄하시던 아버지께서 장미꽃이라니. 그것이, 바로 그 말씀이, 생전에 내게 주신 마지막 선물이요, 마지막 말씀이 되실 줄이야……. 그리고 그 날 저녁 한 통의 소식이 날아들었다. “아버지, 돌아 가셨다” 그 비보는 예리한 칼날이 되어 내 늑골 사이사이로까지 깊숙이 찔러댔다. 내가 열 달 내내 새 생명과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안간 힘을 쓰는 동안, 당신 생의 끈은 서서히 풀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께선 암이 재발되어 손을 쓸 수조차 없게 되었고, 예전에 다친 다리는 점점 악화되어 걷는 것조차 힘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은 당신의 엄명으로 오남매 중 막내인 나만 모르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날 아침, 생사의 고비를 막 넘긴 막내딸을 보기 위해 그렇게 힘겨운 걸음을 병원으로 옮기신 것이었다. 아버지께선 막내딸을 보지 않고선 도저히 생(生)의 끈을 놓지 못하셨던 것일까? 아버지! 훨훨 날아서 하늘 끝까지 가신 아버지. 큰 산이었다가,큰 애드벌룬이었다가, 한 점 점이 되어 버린 아버지. 아버지 가신 그 외로운 길, 언젠가 나도 가야 할 먼 길, 그러나 나는 아직은 큰 애드벌룬에 생의 끈, 사랑의 끈을 꼭꼭 묶어 놓는다. 아들 녀석의 개구쟁이 웃음과, 딸내미들의 목젖이 보일만큼 크게 웃는 경쾌한 웃음과 남편의 넉넉한 웃음을 애드벌룬에 함께 실어 높이높이 띄워 보내본다. (2007 동리목월백일장 수상 작품) 약력 영남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학과 졸업 청송중학교 및 내남중고등학교 교사 역임 경주문예대학 수료 경주대학교 사회문화원 시창작과, 수필창작과 수료 현, 경주시 청소년수련관 방과후아카데미 국어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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