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곡면 오류1리(五柳一里)
오류는 현곡면 지역으로 아파트단지 조성 공사가 한창인 금장리에 인접한 마을이다. 금장 아파트 단지의 북쪽(주공아파트) 일부와 신축공사 중인 금장초등학교, 금장중학교는 이 마을에 들어섰다. 남쪽은 금장, 북쪽은 나원, 서쪽은 소현과 맞닿아 있고, 동쪽은 형산강을 사이에 두고 황성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다섯그루 버드나무 ‘오목(五木)골’→오류(五柳)
진덕여왕릉과 천연기념물 등나무
이 마을은 오래된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가 있어 ‘오목(五木)골’, ‘오묵골’, ‘오목곡(五木谷)’이라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경양연탄 등 연탄공장이 들어서있는 ‘섭들’을 병합하여 오류리가 되었다.
신라 제28대 진덕여왕릉과 가슴 아픈 사랑의 전설이 얽힌 천연기념물 등나무가 이 마을에 있다.
오목골(1반), 개바대(2반), 버들(3반), 홍골(4반)이 오류1리, 섭들이 오류2리를 이루고 있다.
오류1리는 93세대 262명이 거주하고 있으나, 실 거주는 78가구라고 한다. 이 마을은 주로 벼농사에 의존하고 있고, 한우는 15가구에서 500두, 닭은 7천수를 기르고 있다. 옛날에는 사과를 많이 재배했으나 지금은 거의 없다고 한다.
이 마을 최고령자는 정범용(95·천오어른) 할아버지로 거동이 다소 불편하지만 아직 술과 담배를 즐길 정도로 건강한 상태였다.
서래술 먹는 ‘나다리’ 이어오고
오목골 마을 앞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 고목이 있어서 ‘오목(五木)골’, ‘오묵골’, ‘오목곡(五木谷)’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당나무 마을 어귀에 서 있는 수백 년 된 땅버들을 당나무로 섬기고 있다.
동제 이 마을은 해마다 정월보름날에 동제를 지냈으나 약 60년 전부터 지내지 않는다고 한다.
나다리(서래술) 정월보름과 6월 보름날 등 2회에 걸쳐 마을주민들이 술과 음식을 장만해 마을잔치를 베푸는 ‘나다리’라는 풍속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30가구)
개바대 야생깨밭이 있었던 곳에 마을이 들어서 ‘깨밭’이라고 부르다가 변하여 ‘개바대’라고 한다. 또는 개울가에 버드나무가 있는 곳이란 뜻으로 개바대라고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16가구)
버들 옛날 이 마을에 큰 버드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고 하여 ‘버들’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지금도 마을 입구에는 수백 년 묵은 것으로 추측되는 땅버들이 당나무로 모셔져 있다. 진덕여왕릉이 이 마을 뒷산에 있다.
당나무 마을 입구에 약 400년 된 땅버들이다. 이 마을은 버드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고 했으나 지금은 다 없어지고 이 나무만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동제 90년대까지 해마다 음력 12월 말경에 동제를 지내오다가, 지금은 지내지 않고 있다. (20가구)
홈거리 개울 건너들 논에 물을 대기 위하여 나무에 홈을 파서 만든 수로(홈통)를 걸어 놓았던 곳에 마을이 생겨 ‘홈거리’, ‘홍골’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금장초등학교와 금장중학교를 짓는 곳이다. (5가구)
자매는 등나무 총각은 팽나무
진덕왕릉(眞德王陵) 버들마을 뒷산 기슭에 자리한 신라 제28대 진덕여왕릉은 12지상으로 조각한 호석으로 꾸민 원형토분(圓形土墳)인데,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24호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진덕여왕의 재위는 8년이지만, 김춘추를 당나라에 보내고 김유신을 중용하여 신라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았다.
오류리 등나무(五柳里 藤木) 옛날 서라벌 점량부(漸粱部) 현실마을에 의좋은 자매가 살고 있었다. 자매는 마을의 한 총각을 동시에 사모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 총각이 전쟁터로 떠날 때, 마을 밖으로 배웅 나간 그녀들은 비로소 같은 남자를 둘이서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남달리 다정했던 자매였기에 언니는 동생에게, 동생은 언니에게 서로 양보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얼마 후 총각이 전사했다는 슬픈 소식이 들려왔다. 자매는 자주 가던 연못가에서 서로 얼싸안고 울다가 물에 몸을 던졌다. 그 후 연못가에 두 그루의 등나무가 자매의 넋인 양 자라났다. 그 후 죽은 줄 알았던 총각이 훌륭한 청년이 되어 돌아왔고, 자매의 애달픈 사연을 전해 듣고는 스스로 연못에 몸을 던져, 팽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두 그루의 등나무가 팽나무를 얼싸안는 채 천년을 살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팽나무가 죽고 없고, 등나무도 그 후계목이 4그루가 있으나 그 모양이 볼품없게 변해있다.
이 등나무는 천연기념물 제89호로 지정 되어 있으며 지금은 네그루의 등나무가 두그루씩 엉켜 사방 20여미터에 걸쳐 등나무숲을 이루고있다.
진덕여왕릉 있는 능산
능산(陵山) 진덕여왕릉이 있는 산으로, 능갓이라고도 한다.
안산 버들마을을 안고 있다고 해서 안산이라고 하며, 마을 앞에 있는 산이라고 해서 앞산이라고도 한다. 일본인들이 혈을 잘랐다고 하는 돌곡재가 있는 산이다.
단딧발 진덕여왕릉이 있는 능산의 하단부에 있는 산으로, 임진왜란 때, 전사한 이천서씨 현남공 서득천(俔南公 徐得天) 부자묘를 비롯하여 20여 기의 묘가 있다. 묘 주위에 잔디가 잘 가꾸어져 마치 잔디밭 같이 보이므로, 지명이 잔디밭에서 단딧발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분등 버들 서북쪽에 있는 등성이이다.
탕간만딩이 동녘골못 서북쪽에 있는 산으로 산 정상이 탕건처럼 뾰족하다고 하여 ‘탕건만데이’라고도 한다. 삼각처럼 생겼다고 하여 ‘삼각산’이라 하기도 하고, 주민들은 ‘바르배기’라고도 한다.
상듬이 버들 서쪽에 있는 산으로, 동쪽에는 대탁곡이 있고 서쪽에는 오류천이 있다. 진덕여왕릉을 기준으로 우백호(右白虎)의 끝이 됨으로 ‘상대미’라고도 한다.
세평숲 오목골 남쪽에 있는 숲으로, ‘시평숲’이라고도 한다. 보를 따라 포구나무 숲이 형성되어 있었으나 사라호태풍으로 많이 소실되고 이후 50년 전부터 소멸되어 현재 몇 그루만 남아 있다.
새갓뻔디기 새터갓의 늪지에 억새풀이 집단서식하며 뻔데기를 이루었으므로 ‘새갓뻔디기’라 하였다. 경주에서는 억새를 ‘새’라고 한다.
홍수 때 철교따라 등하교
대탁골 버들마을 서쪽에 있는 골짜기. 진덕왕릉 왼쪽 골짜기로 ‘뱉탁골’이라고도 한다. 양지바른 곳이다.
대탁고개 대탁골에서 오목골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돌곡재 버들에서 섭들로 넘어가는 고개로 일정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안산의 혈을 끊기 위해 땅을 파서 골이 생겼다고 한다. 금장다리가 놓이기 이전에 현곡지역의 학생들이 홍수로 인해 형산강을 건널 수 없을 때 나원철교를 건너 학교로 가기 위해 이 고개를 많이 넘나들었다고 한다.
동녘골 버들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진덕왕릉의 동쪽(오른쪽) 골짜기라서 ‘동녘골’이라고 한다.
골안골 오목골 안쪽에 있는 골짜기로 골안 못이 있다.
밤남골 버들의 사당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밤나무가 많은 골짜기이다. 지금도 밤나무 많다.
보갓골 버들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 홍수로 버들보가 유실되면 이 골짜기의 나무를 베어 보를 막았다고 한다.
산막골 버들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산막(山幕)이 있었다고 한다.
서당골 버들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에 서당이 있었다고 한다.
엄창골 오목골 동쪽 음지에 있는 골짜기로 ‘밤남골’을 말한다.
칼치골짜기 동녘골에 있는 골짜기로 칼치처럼 길게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잉어배미에 주공아파트
버들들 버들 마을 앞에 있는 들이다.
버들보 오류천의 개바대에 있는 보로 버들들에 물을 댄다.
부채웅굴 삼밭골에 있는 옹달샘이다. 경주에서는 우물을 웅굴이라고 한다. 부채웅굴이면 불상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데 주민들은 내용을 모른다.
삼밭골 오목골 북쪽의 골짜기로 옛날 이곳에 삼밭이 있었다.
어시밋질 오목골 북쪽 산허리에 걸쳐 있는 길이다. 산 중간 6부 능선으로 비스듬히 길이 나 있다고 하여 ‘어시미길’이라고 부른다.
잉어배미 세평들의 맨 끝에 있는 들이다. 홍수로 형산강이 범람하면 논에 잉어가 올라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이곳에는 주공아파트가 들어섰다.
샘받이 동녘골 들 중간에 위치한 들로, 물이 새어 나오는 시불(물구덩이, 샘)이 많다. ‘샘빼미’라고도 한다.
우등굴 버들 마을 뒤(서쪽)에 있는 우물로 여간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청정 버들마을 앞에 있던 우물로 물이 맑아 ‘청정’ 또는 우등골 아래쪽에 있다고 하여 ‘아래웅굴’이라고도 하였다. 경지정리 후 우물은 없어졌다.
동역골 못 동녘골에 있는 못으로 몽리면적이 10ha된다. 언제 막았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개바대보 개바대들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든 보다.
청정끗테 청정 앞으로 나 있던 오솔길로 옛날 마을사람들이 이 길을 통하여 경주시내에 장을 보러 다녔다. 경지정리 후 길이 없어졌다.
새로운 전원주택지로 주목
금장이 대단위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면서 신흥도시로 발전하고 있어 그 이웃한 이 마을이 새로운 전원주택지로 주목 받고 있다. 도심과 가까운 지리적인 여건과 사통팔달로 연결되는 편리한 교통망, 산 좋고, 물 좋은 자연환경으로 인해 이곳에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전점득 현곡면장에 따르면 “소현천 둑에 국화길을 조성해 놓아 가을이면 만발한 국화가 아름답고, 금장에서 소현다리까지 자전거도로 및 산책로를 개발할 계획이다. 지금도 금장에 주민들이 늘어나면서 산책을 위해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등나무 방치한 채 주민생활만 불편
이 마을 주민들은 천연기념물 등나무가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이로 인한 각종 제한 때문에 불만이 많았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만 해 두고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등나무가 상태가 안 좋은데 따른 불만도 많았다. 제대로 관리를 하든지 아니면 천연기념물을 해제해 주민들이라도 불편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마을회관이 낡고 좁아서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회관이 단층이고 전체가 한 칸으로 만들어져 사용에 불편이 있다. 이를 새로 지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소현천이 하천정비를 하다가 하류 500m가량이 아직 정비가 안 되어 병목현상으로 비만 오면 범란우려에 불안하다고 한다.
이 마을 출신으로는 이상윤(72·전 동아대학교 총장), 김용래(60·현곡농협조합장), 이복득(57·현곡새마을금고 이사장)등이 있다.
친절하게 마을안내를 해주신 이인형 이장님을 비롯한 마을주민들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바쁘신 중에도 마을취재에 동참해 성원해주신 전점득 현곡면장님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