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황금유산’ 이라는 책과 신라금관
문화재답사를 다니면 다닐수록 느껴지는 그 무엇인가를 한 글귀로 정리하라면 “백문이 불여일견(百問而不如一見), 백견이 불여일감(百見而不如一感), 백감이 불여일전(百感而不如一傳)”이라고 말하고 싶다. 조상들이 남겨준 소중한 문화유산에 대해 백번 듣는 것보다는 한번 가 보는 것이 중요하고, 백번을 본들 그냥 지나쳐 보는 것 보다는 한번이라도 제대로 진지하게 감상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또 백번이나 제대로 감상하였더라도 그 느낌들을 혼자만의 지식으로 간직하는 것 보다는 단 한번이라도 글이나 사진으로 잘 정리하여 주변사람들이나 후손들에게 전(傳)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삼국사기 삼국유사가 없었다면 우리나라의 역사를 우리가 알 수가 있었을까? 역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진다. 역사는 꼭 과거의 것만 중요하지 않다. 현재의 역사와 문화재에 대한 논문 한 편, 답사기행문 한 편이 먼 훗날엔 그 때의 시점에서 보면 과거의 역사가 된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사건,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한 고구려사 왜곡 등에 우리가 흥분하는 이유는 지금 이대로 방치한 상태로 수 십 년이 지난 뒤 다음 세대에 갔을 때 우리의 역사는 지금의 생각과는 전혀 엉뚱한 쪽으로 변질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삼국사기, 삼국유사도 중요하지만 오늘날 각국의 공인된 문화역사관련 책자에 실린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재에 대한 잘못된 기록은 방치하는 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있는 수많은 문화유산 및 유적을 잘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계 각국의 역사교과서나 문화재관련 책자에 소개되는 우리나라문화유산에 대한 왜곡된 점이나 누락된 부분을 찾아내어 국제적인 노력을 통해 교정시키는 것도 문화유산을 아끼는 일이다.
경주박물관과 용산중앙박물관을 관람하면서 가장 자랑스런 것은 역시 신라금관이다. “황금의 나라! 신라!” 세계 각국의 수 많은 문화유산이 아름답고 가치있지만 우리나라 신라금관처럼 아름답고 더 값진 보물이 있을까? 라는 자긍심을 늘 가졌었다. 또 세계인들이 “황금하면 신라”라고 인정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 5월 21일 고대 그리스문명 중의 하나인 고린도(코린토스)유적을 방문하던 중 난 큰 충격을 받았다. 세계 3대 운하인 고린도 운하도 있는 고린도엔 사도 바울이 왕성한 전도활동을 한 초기기독교 성지이기도 하고 로마시대의 건물유적이 많이 있는데 고린도유적지 한편에 고대의 토기를 비롯하여 로마시대의 여러 가지 유물이 많이 전시된 고린도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 서점에 “THE GOLD OF THE WORLD"라는 두꺼운 책의 제목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책장을 넘겨보았다. ‘세계의 황금유산’이라면 가장 눈에 잘 띄는 페이지에 ‘신라금관’이 있겠지 하는 기대로 책 갈피를 넘겼는데, 아니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인류가 석기 청동기시대를 거치면서 금의 존재를 발견 그 소중함을 인식하고 제사나 종교의식의 장식품으로부터 권위의 상징으로 사치품으로 사용해나가는 황금의 세계사에 대해 체계적인 연구논문격의 글과 세계 각 곳의 황금유물에 대한 상세한 사진자료집으로 문화재답사객이라면 누구나 탐낼만한 유럽등지에서는 많이 판매되는 권위있는 책인데도 신라금관이 빠져 있었다.
기원전 14세기 중엽의 이집트 신왕국 투탕카멘의 황금미이라관을 비롯하여 고대이집트, 그리스 에게해문명권의 황금유물과 중앙아시아의 유목민들의 황금유물 등 보기만 보아도 시선이 잘 떨어지지 않는 중요한 황금유산들인데 그 중에 신라금관이 빠졌다니... 얼마나 허탈하나?
그 책을 보면서 두 가지를 느꼈다. 첫째는 세계사에서 신라만큼 황금을 잘 다루고 많은 장식품을 남긴 왕국이 없다는 속 좁은 우물 안 개구리식 지식에 부끄러웠다. 그 책자를 보니 신라금관보다 2000여년 시대가 앞서서, 신라금관과 비교하여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가치의 황금유물들이 고대문명지에서도 많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둘째는 유럽에서 제법 권위있는 책에 우리 신라금관이 안 실릴만큼 우리가 우리문화의 뛰어남을 잘 홍보하지 못한 잘못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황금의 나라 신라’라고 아무리 외치면 뭐하나? 세계 각국의 문화유산관련 책자에 이 것이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리유산을 지키는 것 못지않게 중요함을 깨달았다.
“百見而 不如一傳 ”이다. 백번 보는 것보다 제대로 느끼는 것이 소중하고, 우리문화의 우수함을 아무리 느끼면 뭐하겠는가? 고린도 서점 주인에게 이 책자에 신라금관이 빠졌다고 이야기 했지만 ,말로는 몇 사람밖에 전하지 못하지만, 유럽에서 권위있고 많은 사람이 보는 그 책에 신라금관 사진 한 장만 실려 있었더라면 수 억의 유럽인이 보고 감탄 할텐데.... 고린도에서 통탄의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