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나무 이준락 울산남구문화원 부원장1953년은 뜻 깊은 해였다. 아버지께서 오랫동안 사시던 낡은 집을 허물고 집을 새로 지은 해이다.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소년가장이 되신 아버지는 36년이란 긴 일제 치하에서 홑 어머님을 모시고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면서 살았다. 해방의 기쁨이 채 가시기 전에 6.25전쟁이 일어나 삶을 너무나 찌들게 만들었다. 큰형님은 6.25전쟁터에서 생사의 고비를 넘겨야 했고, 둘째형님도 군에 가야할 나이였다. 그래도 흔들림 없이 집안을 일구어 다섯 아들을 학교에 보내면서 새집을 지었다. 이산저산 다니면서 백년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을 기둥나무를 구하고 아름드리 대들보에 서까래를 올려서 네 칸 안채와 세 칸 사랑채를 지었다. 목수는 이 고을에서 가장 이름난 대목수를 모셔서 지었다. 나는 목수가 나무를 깎아 집을 짓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나무를 다듬는 목수와 흙을 바르는 미장이의 손놀림을 구경하면서 연장을 챙겨주는 심부름을 시켜주면 마냥 즐거웠다. 이렇게 훌륭한 목수가 집을 지었으니 우리 동네에서 우리 집이 제일 크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중에 알았지만 우리 집 보다 훨씬 더 큰 기와집도 있었다. 새로 지은 집에서 잠을 자니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세 살 터울인 넷째 형과 이방 저 방을 뛰어 노느라 밤을 새기도 했다. 그해 나는 고대하던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십리가 넘는 통학거리가 마냥 즐거웠다. 신작로를 걸으면서 자전거도 구경하고 자동차도 구경했다. 어쩌다가 소달구지를 만나면 뒤꽁무니를 따라가면서 주인 몰래 올라타기도 하였다. 미군 트럭을 만나면 손을 흔들면서 “오케이, 할-로”하고 소리쳤다. 가난에 찌든 우리를 본 미군은 어쩌다가 껌과 비스켓을 던져 주기도 하였다. 그런 날이면 운수 대통이었고 하루 종일 얘기 거리가 되었다. 아버지는 새집을 지은 기념으로 울타리도 고치고 담장도 다시 치면서 대문 왼쪽에는 엄나무를 한그루 심으셨다. 엄나무는 대문에서 우리 집을 지켜주는 수호신이 될 거라고 하셨다. 1m 정도 되는 묘목을 심었는데 온가족이 정성을 들였더니 엄나무는 무럭무럭 자라서 2~3년이 지나자 제법 큰 나무로 자랐다. 엄나무의 가시는 송곳처럼 날카롭다. 송곳 같은 엄나무 가시는 전염병도 피해간다고 한다. 엄나무는 우리 집을 잘 지켜주었고 육손이로 갈라지면서 넓적하게 피어나는 잎은 향긋한 향기를 뿜으면서 봄나물이 되어 입맛을 돋우어 주었다. 봄나물이 된 잎은 이웃집과 나누어 먹기도 하였다. 처음 우리 집을 찾는 사람에게 엄나무 집이라고하면 누구나 쉽게 찾아왔다. 엄나무는 우리가족과 함께 살면서 우리 집의 자랑거리요 상징이 되었다. 엄나무는 꽃이 피고 가을이 되면 그 씨앗이 바람에 흩날렸다. 흩날린 씨앗은 이듬해 울타리 밑에서 그리고 장독대 옆에서 새싹으로 돋아났다. 해마다 봄철이면 집안 곳곳에 엄나무 새싹이 돋아나서 자라났다. 새싹으로 자라난 엄나무는 어머니께서 잘 찾으셨다. 새끼 엄나무를 찾으신 어머니는 아침식사 시간에 주의를 주곤 하셨다. “장독대 오른쪽 귀퉁이에 엉개나무 하나 찾았으니 조심 하거라” 그때부터 우리는 새끼 엄나무가 다칠까봐 주변에 사각으로 기둥을 세우고 새끼줄을 치고 출입을 통제하였다. 2세 엄나무는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귀여운 만큼 정성을 더욱더 드렸다. 어머니께서 찾으신 엄나무는 10여 그루나 되었다. 3년쯤 자란 엄나무는 두 그루만 남기고 이웃집으로 분양했다. 어미나무로부터 떨어진 씨앗에서 자란 어린 나무가 자라서 제법 어미나무의 구실을 해가고 있었다. 아버지가 집을 새로 지은 지 37년이 되던 해였다. 어머니는 팔십 다섯의 나이에 서울에 살고 있는 넷째 아들 집을 다녀오셨다. 고령에 무리한 여행이었는지 몸져누우시면서 급격히 떨어진 체력을 영영 회복하지 못하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3년 뒤 아버지께서도 어머니 곁으로 가셨다. 40여년을 함께한 엄나무는 그해 여름 태풍에 큰 가지 하나가 부러졌다. 그리고는 이듬해 봄에는 밑 둥이 썩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생기를 잃기 시작했고, 가을에 불어 닥친 태풍에 힘없이 밑 둥이 부러지면서 쓰러졌다. 엄나무를 심고 가꾸면서 일생을 같이했던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돌아가시자 엄나무는 자기에 역할을 다 마친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2세 엄나무 중 튼튼한 놈을 골라서 어미나무가 있었던 자리로 옮겨 심었다. 옮겨 심은 엄나무는 어미 엄나무와 똑같이 자랐다. 생긴 모습이 어미와 너무 닮았고 역할 또한 똑같이 하고 있다. 엄나무, 그 번식에 철학이 장엄하게 보인다. 잎이 피어나는 엄나무를 볼 적이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생각난다. 새끼엄나무처럼 아버지와 어머니의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이 죄송할 뿐이다. 약력 경주출생 문학공간으로 수필 등단 현재 울산남구문화원 부원장 (주)인산시스템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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