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사 9층목탑 터와 코린토스 아고라 유적 얼마전에 황룡사지에서 열린 제3회 폐사지 음악회에 가 보았다. 아름다운 음율에 달빛이 춤을 추고 환호하는 관객들의 박수소리를 뒤로한 채 혼자 9층목탑터 심초석 가까이 서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주최 측에서 준비한 풍선에 바람에 넣어 일으켜 세운 황룡사 9층목탑의 모형이 불빛에 제법 운치를 자아냈다.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황룡사지 9층목탑터의 주춧돌은 사방 8열인데, 모형탑의 기둥은 6열로 되어 있었다. 아무리 모형이라도 기둥 숫자는 조금 맞추어 만들었으면 좋았을텐데... 경주박물관 미술관 2층에 가면 황룡사지 모형전시물이 있다. 역사에 조예가 깊은 사람은 주춧돌만 보아도 이곳에 석탑이 어떤 모습으로 서 있었는지를 상상 할 수가 있다. 그러나 평범한 방문객이나 답사객들에게 주춧돌만 보여 주는 것은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황룡사지 9층목탑을 복원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당시의 도면이 없는데 원형을 모르니 복원을 할 수가 없다는 의견과 어차피 황룡사를 비롯한 많은 사찰이 창건과 중건을 거쳤으니 현대의 관점에서 재중건 한다는 의미로 다시 복원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월정교는 당시 설계도가 없어도 전문가들이 의논하여 추정해 복원 되리란 소식이다. 지난 5월 21일 오후에 그리스 코린토스 아고라광장을 답사 한 적이 있다. 서기 51년과 52년경 ‘사도바울이 로마집정관 앞에서 귀족들에게 설교를 했다(사도행전 18장)’는 그 역사적 자리에 내가 서 있었다. 아고라는 고대 로마시대 시장터라고 보면 된다. 시장터 가게의 둥근천장 지붕 하나는 아직까지 잘 보존되어 있는데, 처음엔 마치 월성의 석빙고(정말 청도에 있는 석빙고 유적 입구와 유사)와 구조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 위엔 도리스식 기둥이 7개만 남아 있는 건물의 일부만 우뚝 서 있다. 유적해설가의 설명이 없었다면 이 곳이 무엇을 하던 곳인지 짐작하기가 어려웠고 설령 해설을 들어도 짐작만 할 뿐 그 당시의 정확한 건축물 구조에 대해선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유적복원도가 함께 포함된 안내책자를 사 보곤 그제서야 궁금증이 풀리고 그 유적을 다시 돌아 보고픈 마음이 샘 솟았다. 로마나 폼페이, 아테네 코린토스 등 로마와 그리스 유적지에 가면 황량한 벌판에 기둥만 몇 개 있어도 고대 당시의 건축물을 추정 복원도를 그려서 투명한 셀로판지에 칼라로 그리고 뒷면의 지면엔 현재의 사진을 붙여 복원도를 겹치면 현재의 유적터 위에 옛 사진이 나타나는 정말 문화재 답사의 묘미를 높여주는 유적안내책자가 잘 만들어져 있다. 귀국해 황룡사지를 다시 찾아 보았다. 넓은 폐사지 이곳 저곳을 걸어다니면서 디카로 사진을 찍고 서서 상상을 해보았다. ‘이 자리에 서서 9층 목탑을 바라보면 어떤 모습일까? 저 멀리 미탄사지 3층탑도 보일까? 분황산 보일까?’ 하는 물음을 던지면서 이 곳 또한 로마나 그리스 유적 복원안내책자처럼 현재의 모습에 추정 복원도(현재의 모습은 주춧돌 등은 제외하고 없는 부분만의 추정그림)를 셀로판필름등에 칼라로 그린 것을 앞 뒤 페이지로 철하면 황룡사를 찾는 답사의 즐거움도 의미도 더 크지 않을까 싶다는 기대를 해 보았다. 우리 주위엔 발굴된 유물에 대한 해설전문가는 수북하지만 정작 창의성으로 고대의 복원도를 연구하는 전문가가 없는 것이 아쉽다. 황룡사지도 바라보는 측면마다 그 모습이 다를 것이다.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황룡사지의 배경은 남산, 낭산, 선도산, 소금강산 등 다양한 모습으로 바뀐다. 우리 모두가 아끼는 유적지. 주춧돌만 남은 그곳에 상상의 나래를 펼쳐 원래의 모습을 복원하고 그 복원도를 경주를 알리는 안내책자에 넣어보자. 코린토스 아고라 광장 복원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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