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포읍 전촌1리(典村一里)
경주에서 보문호와 덕동댐 언저리를 돌아 황룡골짜기와 관해동재를 넘어 동해로 가는 길은 계절에 상관없이 언제라도 장관이다.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 아름다운 호수와 맑은 계곡물이 어우러진 풍취의 멋스러움이 가히 절경이다. 추령터널이 뚫리고, 보문호수 주변의 길이 곧고, 넓은 길로 확장되면서 그 맛이 다소 줄어 아쉬웠는데 최근엔 황룡골짜기에서 관해동재로 오르는 꼬불꼬불한 길 중 일부구간을 직선화 공사를 하고 있어 계곡의 멋진 경관이 훼손당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법을 잘 지키는 ‘법동’에서 ‘전촌(典村)’
좋은 인심 대문 없이 살아
전촌은 감포읍 지역으로 동해의 청정해역을 끼고 있는 해안마을이다. 경주에서 국도 4호선을 타고 감포로 가다가 팔조리를 지나면 짙푸른 동해바다와 함께 소나무숲을 만난다. 이곳이 전촌이다. 경주시청에서 32km, 38분 거리에 있다. 동해 바다를 안고, 서쪽은 팔조리, 북쪽은 전동리, 남쪽은 나정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전촌은 본래 ‘법동’에서 유래한 말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에 가장 중심이며 큰 마을이었던 법동에 착안하여 ‘전촌(典村)’이라 한 것으로 보인다. ‘성두마을’·‘고성마을’·‘구름마을(운촌)’·‘거마장(소바짐)’이 전촌1리, ‘장진’·‘새마을’이 전촌2리를 이루고 있다.
“원카 오래 살아 나도 모린다”
전촌1리는 전촌삼거리에서 감포방면으로 약 300m 지점(전촌교)에서 왼쪽으로 전골거랑 둑을 따라 난 길로 들어서면 거랑 좌우로 산기슭에 펼쳐진 마을이다. 거랑 서남쪽에 있는 마을이 마을회관이 있는 ‘성두골’이고, 그 북쪽에 위치한 마을이 ‘고성’, 거랑 건너편 군부대가 있는 마을이 ‘구름마을’, 고개 넘어 감포 입구의 바닷가에 자리한 마을이 ‘거마장’이다. ‘법동’은 마을회관이 있는 일대에 있는 마을이지만 최근에는 그냥 ‘성두골’로 같이 불리고 있다. 법동은 법을 잘 지킨다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전촌1리는 총 127가구가 있지만 실제 거주는 100가구이며, 주민 수는 270명으로 남자 134명, 여자 136명이다. 벼농사 외에 특용작물이나 축산도 없는 실정이다. 바닷가에 있는 거마장의 경우 횟집들이 많다.
이 마을 최고령자는 “원카 오래 살아가 나도 모린다”면서도 ‘무신생(1908년생)’이라고 말한 구름마을에 사시는 올해 100살의 정무연 할머니로 허리가 굽고, 귀가 좀 어둡지만 아직 바깥출입을 하실 정도로 건강하시다.
신라시대 이전의 토성
성두(城頭)마을 옛날 토성의 어구에 있는 마을이라 ‘성두(城頭)’라 하였다고 한다. 신라시대 이전에 이미 이 일대에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성이 있었다고 전한다. 최근까지도 이곳에는 성의 일부가 남아 있었으나 농로를 내면서 모두 훼손되고 그 흔적만 남아 있다. ‘성두말’, ‘성두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53가구)
동제 해마다 음력 3월 1일에서 3일 사이에 날을 받아 지내는데 주로 초하루에 지낸다고 한다. 복(服)을 입지 않은 마을사람 중에서 제관을 정한다고 한다.
당목 마을 가운데에 있던 오랜 고목이 죽고, 후계목을 새로 심은 수령 30년의 느티나무이며 마을회관에 있다.
구름마을 성두마을 북쪽 마을로 뒷산 형국이 마치 구름같이 생겼다고 하여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또 옛날 이곳에 굴과 같은 큰 우물이 있어서 ‘굴마을’로 불리다가 변하여 ‘구름마을’이 되었다고도 한다.‘구름말’, ‘운촌(雲村)’이라고도 한다.(23가구)
동제 매년 3월 초에 동제를 지내고 있다.
당목 마을 어귀의 쉼터에 노송과 함께 서 있던 느티나무로 태풍 매미 때 쓰러져 죽은 것을 베려고 했으나 사람이 다쳐 베지 못하고 그대로 두고 있다. 쓰러져 말라죽은 나무가 그냥 방치되어 있다.
거마장(巨馬場) 산세가 마치 큰 말이 누워 있는 형국이라 하여 ‘거마산(巨馬山)’, ‘거마장(巨馬場)’이라 불렀다고 하며, 신라 때 왜군의 침입을 경계하기 위해 병마(兵馬)가 주둔해 있던 곳이라고도 전한다. 장진의 북쪽 감포로 들어가는 어귀의 해변에 있다. (35가구)
고새마을 옛 성터의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고성(高城)’ 이라고 했다고 하며 또는 상여집이 있었던 곳이라 ‘고새’라고도 한다. 성두마을 북쪽에 있다. (6가구)
임금 죽자 3년간 삼베옷
전촌리 충효각(典村里忠孝閣) 영일정씨 효자 정돈익(鄭敦翼)의 충효를 기리기 위해 조선 고종 21년(1884)에 세운 정려각이다. 정공은 아버지의 병구완을 하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3년 동안을 여막에서 시묘를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국상을 당하자 3년 간 삼베옷을 입었고, 순조(純祖) 인산(因山)때에는 자진하여 사역에 참가했다. 전촌리 328번지 구름마을에 있다.
회암재(晦巖齋) 조선시대에 증 가선대부예조판서에 추서된 김해인 김용검(金用劍)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그 후손들이 1941년에 거마장에 세운 묘재(墓齋)로 최근에 중수하여 서까래와 지붕 등이 새 단장을 했다. 동해가 내려다보이는 거마산기슭에 세운 이 재실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가운데 2칸은 마루를 양쪽은 방을 배치했다. 여재문(如在門)이라는 현판이 붙은 문간채의 관리사에 현재 관리자가 생활하고 있었다.
기마산 산 모양이 큰 말이 누워 있는 형국이라 해서 ‘거마산(巨馬山)’, ‘거마(巨馬)’라고도 부른다. 마을 동북쪽에 있다.
귀창 성두성 위의 성만리에 있는 작은 산으로 귀의 형국을 하고 있고, 귀 구멍에 해당하는 곳에서 물이 난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영일정씨 포은공파 전촌 도암종중의 선산이다. ‘긴창’이라고도 부른다.
달본고개 전촌에서 감포로 넘어가는 고개로, 한가위 때면 해마다 마을사람들이 모여 달맞이를 했다고 한다. ‘달방고개’라고도 한다. 현재 국도 31호선 해안도로가 이 고개를 지나간다.
달맞이하던 ‘달본고개’
강난짓골 범의 새끼인 개호주(강가지, 갈가지)가 살았다고 하는 골짜기로, 까끔골의 서북쪽에 있다. ‘강가짓골’이라고도 한다.
까끔골 까끔(말림갓)이 있었던 골짜기로, 하닛골의 서쪽에 있다. 다람쥐가 많이 산다고 한다.
무듬실 무덤이 많이 있는 골짜기로 분곡(墳谷)이라고도 하며, 소바짐 서남쪽에 있다. 지금의 동아사 건너편 골짜이다.
석탄골 석탄을 캐냈다고 하는 골짜기로, 강난짓골 동쪽에 있다.
모구장골 옛날 일본인들이 묘포장을 했던 산의 골짜기이다.
애비미골 죽은 아기를 위해 그 어미가 비를 세웠다는 묘가 있는 골짜기이다.
큰절골 옛날에 큰 절이 있었던 골짜기로, 강난짓골의 서쪽에 있다. 최근에도 기와조각들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행골 성두마을의 서쪽 너머에 있는 큰 골짜기로, ‘한이곡’이라고도 한다.
전촌천(典村川) 마을 가운데로 흐르는 거랑으로 감포읍 오류리 서쪽 숯구디이에서 발원하여 호동리와 전동리, 전촌리를 거쳐 동해로 흘러들어가는 거랑이다. ‘전골거랑’이라고도 한다.
꾸불꾸불한 ‘구붓들’
감나무들 감나무가 있었던 들로, 구름마을 앞에 있다.
구붓들 지형이 꼬불꼬불하게 형성된 들로, 성두마을 동남쪽에 있다. 경지정리하기 전에는 논둑이 10m도 똑바른 게 없을 정도로 구비가 잦았다고 한다.
샛들 감나무들과 장진뒷들의 사이에 있는 들이다.
샛들보 샛들에 있는 보를 말한다.
거마장끝 거마장이 바다와 닿는 땅 끝부분으로, 양배끝(바위)이 있다. 지금의 해안초소가 들어선 곳을 말한다.
거미끝 거미산의 아래에 있는 바위로, 강개돌 북쪽에 있다. ‘거매끝’이라고도 한다.
양배끝 거마장 끝에 있는 바위로, 옛날 이 바위 위에서 배가 오가도록 횃불로 신호를 했다고 한다. 1, 2리 경계다.
얹힌돌 거마장 동쪽에 있는 바위로 썰물 때만 돌이 드러나므로 지나는 배가 좌초하여 자주 얹히므로 ‘얹힌돌’이라고 한다.
마을안길 포장
전촌은 바닷가 마을이지만 1리의 경우 들을 끼고 있는 농촌마을이다. 법을 잘 지키라는 뜻에서 마을이름을 법동이라고 했다고 했듯이 사람들이 법답게 반듯하게 살고 인심이 좋은 마을이다. 그래서일까 이 마을에는 대문이 없다고 한다. 최근에 들어선 집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대문이 없는데, 집을 비워두고 몇일씩 외국여행을 다녀와도 아무 일이 없다고 한다. 그만큼 마을에 인심이 좋다는 반증이다. 또한 이 마을은 식수원이 지하수인데 1급수로 물맛도 좋고 오래 동안 보관해도 변질이 없다고 한다.
이 마을은 마을 안길이 좁고 노면이 고르지 않아 이에 대한 조치와 하이곡들에 들어가는 농로의 포장을 주민들이 바라고 있다.
이 마을 출신으로는 김용석(69·전 안강초등학교 교장), 장성기(50·울산 용성계전), 허남기(58·예비역 육군 소령), 정순교(58·영천소방서장), 김영태(40·육군 소령) 등이 있다.
취재에 협조해 주신 정대권 이장과 감포읍사무소 손석옥 여사님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