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근 2007경주시민상 문화부문 수상자
“내가 원하는 곳보다 그들이 원하는 곳에서 일하라”
열정으로 향토문화와 애절한 사랑을 하고 있는 ‘김윤근’
“내가 원하는 곳보다 그들이 원한 곳에서 일하라”는 좌우명처럼 김윤근(63) 2007경주시민상 문화부문 수상자의 삶은 결코 순탄치 않았던 37년간의 교직생활과 44년간의 향토문화사랑은 시민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올해 초 정든 교정에서 물러난 김 수상자는 변함없는 열정으로 이제 향토문화와 애절한 사랑을 하면서 우리들에게 삶의 지표를 제시하고 있다.
역사는 우리에게 지혜와 교훈 줘
올바른 교육 통해 역사관 정립을
초여름의 싱그러운 풀 향기가 마음을 맑게 하는 13일 오전 경주문화원에서 김윤근 선생을 만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문화는 무엇이며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 줄 문화는 어떤 것인지에 대해 거침없이 쏟아내는 경주를 향한 사랑의 내공을 가슴에 담았다.
김 선생은 “정신문화이던 물질문화이던 문화는 삶의 질을 높이는 것과 직결된다. 질 높은 문화, 앞서가는 문화일 때 사회는 건전한 발전을 하게 된다. 지도자들은 이러한 시발점에서 행정을 펼쳐나갈 때 시민들의 삶이 풍부한 복지사회가 된다”며 “이 시대에 사는 우리도 즐거워야 값진 것을 남길 수 있으며 비록 우리가 어렵더라도 미래를 위해 이 시대에 남길 것은 남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문화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김 선생은 “경주는 1천200여년전에 이스탄불이나 장안 등과 함께 세계문명을 좌우했던 곳이다. 경주가 온 인류에게 부각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경주의 위상은 세계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조차 소외돼 1년에 고작 6~700만명에 불과한 관광객만이 찾고 있다”며 “우리 조상들이 세계문화를 이끌어 왔듯이 우리도 경주를 역사문화도시로 이끌어 지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선생은 “사람들이 좋은 생각하고 좋은 환경을 누리기 위해서는 좋은 교육과 만남이 있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가치기준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며 “역사와 교육의 만남을 통해 좋은 것은 계승 발전시키고 잘못된 것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역사는 지혜와 교훈을 주기 때문에 올바른 교육을 통해 역사관을 정립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선생은 또 “신라는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이를 극복하고 삼국을 통일했으며 통합의 문화를 만들었다. 이는 통일 전이나 통일 이후에도 늘 준비하고 염원했기 때문이다”며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는 신라통일과 화합정신에서 통일정신을 찾아야 하며 바로 이 같은 정신이 있는 경주에서 더 큰 문화를 창조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문화단체 서로 격려하고
함께 어우러질 때 발전 할 것
김 선생은 경주에서 흩어져 활동하고 있는 각 문화예술단체가 서로를 격려하고 관심을 갖고 참여해주는 것만이 지역문화가 활성화되고 발전될 수 있다고 진단하고 현재 경주의 관광이 살아나는 길은 경주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문화행사를 해야 한다고 지적도 잊지않았다.
김 선생은 “경주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역사문화도시로서 교육과 정신, 혼을 일깨우는 패러다임으로 가야한다. 다른 도시에서 다 하는 것이 아닌 역사의 뿌리를 바탕으로 다른 도시에서 할 수 없는 것을 해야 한다”며 “예를 들어 호국정신이 배여 있는 동해바다나 관광객이 많이 찾는 보문호에 세계적인 규모의 호국 용놀이를 하는 것이 맞지 예산을 푼푼이 쪼개어 특징 없는 문화행사를 하면 경쟁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주만이 갖고 있는 역사성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논의 구조가 필요한데 신라문화제의 경우만 보더라도 행정에서 다 짜놓고 이해를 구하는 논의만 반복하고 있다”는 김 선생은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문화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민간전문인들에게 문화행사를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경주시민 모두가 경주를 아는
자질을 갖추고 자부심을 가져야
김 선생은 지난 80년 교육지도력개발공로를 인정받아 한국청년회의소 회장으로부터 한국청년대상을 받은 뒤 대만(82년)을 방문했을 때 그들이 하고 있는 ‘민족혼 심어주기 교육’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경주시민들도 경주를 잘 알고 자부심을 갖기 위해 향토문화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선생은 “당시 대만을 방문했을 때 그들이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민족혼을 심어주기 위해 고궁이나 박물관 등에서 공부를 가르치는 것을 보고 우리도 경주시와 경주교육청, 국립경주박물관이 협의해 우리문화의 보고인 경주에 대해 교육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특히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이 경주를 떠나기 전에 경주의 역사문화에 대한 교육을 실시해 이들이 다른 지역에 가더라도 경주의 문화를 가슴에 품을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선생은 “공무원들도 경주를 알아야 행정을 할 수 있고 경찰, 택시기사, 모든 시민들이 경주를 알고 자부심을 가져야 역사문화도시 경주는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며 역사문화도시 시민의 역량강화를 주문했다.
결코 순탄치 않았던 교직생활
목 놓아 토해내는 교육의 열정
68년 영남대 화학공업과를 졸업한 김 선생은 원래 목표는 서울로 가 돈을 많이 벌어 배움에 굶주린 이들에게 학교를 세워 다니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대학 졸업 후 부모님의 반대로 경주에 머물던 김 선생은 내남중고등학교 설립자였던 고 김육만 교장과 인연이 되어 71년 과학선생으로 교직에 첫발을 내딛게 되며 89년 교육민주화운동으로 해직될 때까지 제자들에게 “내가 원하는 곳보다 그들이 원하는 곳에서 일하라”는 삶의 길을 역설했고 자신 또한 그 길을 걸었다.
94년 영주공업고등학교에 평교사로 복직한 김 선생은 올해 초 경주공고에서 정년퇴임을 할 때까지 37년(해직 5년 포함)간 배움을 갈구하는 학생들의 곁에 있었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온몸으로 향토문화를 가르치며 누구도 할 수 없는 족적을 남기고 있다.
밤과 낮을 모르고 뛰어다니는 김윤근
아내 박미자에게 보내는 사랑은 계속된다
37년간의 교직생활, 가정 형편이 어려운 이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준 한림무료야간중고등학교 교사 생활(현 교장), 44년간 신라문화동인회 회원으로 쏟은 향토문화 사랑, 40여년간의 경주어린이박물관학교·청소년학교 강사시절, 셔불독서회 지도교사시절, 수십년동안 계속하고 있는 문화유산지키기운동, 김 선생의 삶은 한마디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다.
김 선생을 존경하는 많은 제자들과 동료, 선후배들은 ‘오늘의 김윤근은 아내 박미자 여사(57)가 있었기 때문이다’고 말하고 있다. 그만큼 어려운 길을 선택했던 김 선생의 뒤에는 부인 박씨의 이해와 뒷바라지가 있었기 때문일 게다.
요즈음 김 선생은 공개적인 장소에서도 곧잘 부인 박씨의 고마움을 당당하게 선생의 방식으로 사랑고백을 하고 있다. 그것도 가슴 뭉클한 솔직 담백한 어투로......
피는 못 속인다고 했던가? 김 선생의 큰 아들 대환군은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영남대학교대학원을 졸업해 현재 영남대박물관학예사로 근무하고 있고 며느리 윤영심씨도 영남대 역사학과를 졸업한 재원으로 작년 7월에는 김 수상사자에 손자 준서를 안겼다. 둘째 아들 대원씨는 환경공학을 전공해 환경기사로, 딸 양지씨는 간호학과를 졸업해 서울현대중앙 아산병원에 근무하고 있다.
김윤근, 결코 멈춤이 없는 경주사랑
향토문화사랑, 경주의 자연 사랑
김 선생은 향토문화 사랑과 교육에 대한 열정을 열거하기에는 끝이 없다. 최근 김 선생은 37년간 교사로 근무하면서 학생과 학부모, 동료교사에게 환경보호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실천한 일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특히 경주교육공동체 시민의 모임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내 고장 뿌리알기와 청결운동 사업을 계획하여 지역 청소년들에게 환경보호와 문화 사랑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김 선생이 바라는 경주·경주인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경주가 세계 속에 으뜸가는 문화천국이 되고 경주인의 가슴 속에 경주에 대한 사랑이 깊이 자리 잡아 더불어 함께하는 세상이 되는 날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이성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