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타고 다닐 때 역이 있던 ‘노곡(蘆谷)’ 노곡(蘆谷)이 ‘노곡(路谷)’, ‘노곡(奴谷)’으로도 표기 내남면 노곡1리(蘆谷一里) 노곡은 경주의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마을이다. 경주남산의 남쪽기슭에서 울주군 두동면 봉계리까지의 미역내 동쪽 일대에 펼쳐진 마을이다. 북쪽은 내남면 이조리와 용장리에 맞닿아 있고, 동쪽은 정래동, 도동동과 경계를 이루며, 서쪽은 기린천의 상류인 미역내를 사이에 두고 월산리와 마주하고 있다. 남쪽은 불고기단지로 유명한 봉계에 인접해 있다. 노곡은 ‘노곡역’이 있었던 곳으로, ‘역말’, ‘역촌’이라고도 불리던 마을로 옛날부터 교통의 중심지였으며 장터를 지닌 물류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울주군 봉계와 경계를 이루는 남쪽 지역에 위치한 노곡·미역골이 노곡1리, 경주남산기슭 일대에 자리한 백운대·별내·오가리·제궁마을이 노곡2리를 이루고 있다. 노곡1리는 국도 35호선이 마을을 가로질러 지나고 있다. 최근에 새로 만든 4차선 도로도 역시 마을을 관통하고 지나간다. 경주에서 언양으로 연결된 새로 난 국도 35호선을 타고 가다가 이조를 지나 봉계에 이르기 직전에 아주 짧은 터널을 만난다. 이곳이 노곡마을이고, 터널을 지나 다리 건너서 좌회전하면 미역골이다. 경주시청에서 15km, 20분 거리이다. 옛날 교통과 물류의 중심 노곡1리는 국도가 지나는 도로변에 자리한 마을로 116가구에 총 250명의 주민이 생활하고 있다. 주로 벼농사에 의존하고 있고, 그 외에 한우를 15가구에서 100여두 기르고 있고, 표고버섯을 40동(100평 기준) 재배하고 있다. 이 마을 최고령자는 황인순(96·화산댁)할머니로 훤칠한 키에 허리조차 굽지 않은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눈, 귀도 총명하고 목소리도 아직 힘이 넘친다. 마을회관에서 고스톱 치면 돈은 거의 황 할머니가 다 딴다고 한다. 7살 때부터 담배를 피웠다는 할머니는 어릴 때 배앓이를 하자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라고 해서 그때부터 피운 담배를 45살에 교회에 나가면서 끊었다고 한다. 민물에서 미역이 난다? 노곡(蘆谷) 옛날 이 마을에 갈대가 많았으므로 ‘노곡(蘆谷)’, ‘노실’이라 불렀다고 한다. 노곡역이 있어 ‘역마(驛馬)’, ‘역촌(驛村)’이라고도 하며,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교통의 요충지라 ‘노곡(路谷)’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역촌이라 노비들이 많아 ‘노곡(奴谷)’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미역골 북쪽에 있다. (80가구) 동제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에 지낸다. 당목 마을 서편 들판에 있는 포구나무로, 잎이 늦게 피면 늦가뭄이 들고, 빨리 피면 올가뭄이 든다고 한다. 미역골 미역내골, 멱내골, 곽동(藿洞)이라고도 하며 원래 ‘명례골(明禮谷)’이라고 불렀으나 발음이 변하여 ‘멱내골’, ‘미역골’로 부르게 됐다고 한다. 멱(목욕)을 감던 거랑(미역내)이 있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다고도 한다. 또는 실제로 미역이 났다는 말과 동해(포항)에서 형산강을 거슬러 이곳까지 배가 들어와 이곳에서 미역을 내륙에 공급하던 곳이라서 그렇게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마을 서쪽 건너의 월산2리에도 ‘미역내’라는 마을이 있다. 노곡 남쪽에 있는 마을로, 앞에 미역내가 흐른다. 경주최씨 집성촌이다. (36가구 50여명) 동제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동제를 지낸다. 당목 마을 앞에 있는 300여년 된 느티나무로 밑둥치의 몸 둘레가 5m에 이른다. 35번 국도에서 미역내 둑을 따라 미역골로 들어가기 위해 미역내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마을 어귀에 서 있다. 1982년 시 보호나무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옛날 관샘(우물) 아직도 남아 있어 관터 옛날 역의 관사가 있던 터로 노월초등학교 앞, 현재 노곡1리 마을회관이 있는 자리이다. 장터 매월 5일, 10일 노실에 섰다고 하는 노곡장의 터, 이 장은 후에 용장에서 이조리의 용산으로 옮겨갔다. 노곡역(蘆谷驛) 터 모량역과 잉보역을 연결해주는 노곡역이 있었던 곳으로 지금의 폐교된 노월초등학교 부근이다. 노곡역은 황산도찰방(黃山道察訪)에 속하였다. 관샘 관터에 있는 우물로 지금도 남아 있다. 마을회관 뒤쪽 길가에 위치한 이 우물은 큰 시멘뚜껑으로 막아 놓았다. 노월초등학교 노곡리에 있는 노월초등학교는 1962년 12월에 개교했다가 1995년 3월 내남초등학교에 통합되면서 폐교되었다. 현재 실버타운이 들어서 있다. 이인좌 난 평정한 모백당 미역내 노곡 앞으로 흐르는 거랑으로 곽천(藿川)이라고도 한다. 동쪽의 마석산, 남쪽 치술령, 서쪽의 언양 백운산에서 각각 발원한 물이 다. 미역골 서쪽에서 합류하여 미역내를 이룬다. 이 물이 흘러 이조에서 다시 박달천(양삼천)· 별내가 합수하여 기린내가 된다. 기린내는 다시 남천과 모량천을 만나 형산강의 상류인 서천이 된다. 임천정(臨川亭) 조선시대에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경주인 모백당(慕白堂) 최경노(崔慶老)가 지은 정자로 본래 거랑 가에 있었으나 큰물에 떠내려가고, 50여 년 전에 후손들이 다른 건물을 옮겨와 다시 세웠다. 공은 영조 때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분무공원종이등(奮武功原從二等)이 되었고, 기로소(耆老所-고관을 우대하기 위해 설치한 관아)에 들었다. 평생을 말 한필로 다녔으며 공으로 인해 위로 3대가 증직을 받았다. 만년에 이곳에 임천정을 지어 시가를 읊으며 지냈다. 미역골 부체소 동편 거랑 가에 있는 이 정자는 누마루를 갖춘 3칸접집으로 팔작지붕이다. 지금은 미역골 노인회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관듬방의 거대한 바위 지난해 깨내 관듬방 관이 있던 곳에 거대한 바위가 거랑으로 튀어나와 생긴 큰 물웅덩이(듬벙)로 이 바위가 물을 막아 주어 학교와 마을이 잘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해 이 큰 바위를 깨어 내고 물길을 바꿔 놓았다. 지금 그곳에는 수백평에 이르는 바위를 쪼아낸 자국이 거랑바닥에 남아있다. 부체소(부체듬방) 돌부처가 있던 곳에 만들어진 깊은 웅덩이로 미역골 초입에 있다. 35번 국도를 타고 봉계로 들어가기 직전에 있는 다리의 동쪽 거랑에 막아 놓은 보와 산모롱이 아래 푸른 물웅덩이가 부채소다. 이곳에 부처가 있었다고 전하지만 지금은 없다. 진상골들 논공단지 앞들로 진상품을 올린 곳이라고 한다. 못밑들 학교 앞에 있는 들로 불선골 못 아래에 있다. 부체소보 부체소에 막은 보로 노곡마을 앞 부체소들에 물을 댄다. 혈 잘린 까치고개 까치고개 까치가 많이 살았다는 마을 뒷산으로 노곡마을 북편을 막아주는 산모롱이였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일제시대 국도 35호선 도로를 내면서 허리를 잘랐고, 학교가 들어서면서 도로서편을 없앴고, 도로 동쪽도 황토 재질이 좋아서 파내다보니 지금은 산이 없어졌다. 비록 산은 없어지고 마을도 황량해졌지만 이 일대에 지금도 까치가 많다고 한다. 댕댕잇고개 부근에 자손대대로 복과 영광을 누릴 명당이 있다고 전해지는 고개로, 두들배기 남쪽에 있다. 당대현이라고도 한다. 1리와 2리 경계에 있는 등성이로 일성김씨들의 산소가 들어서 있다. 불선골 마을 동쪽의 바위로 된 산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부터 영험 있는 바위가 있어 불을 밝히고 치성을 드렸던 골짜기이다. 그리 깊지 않은 골짜기의 어귀에는 일제시대에 막았다는 못이 있다. 메주골 묘가 메주덩어리처럼 많다고 한다. 칼치등 칼치처럼 길게 생긴 등성이로 부체소 북쪽에 있다. 새이골 송이가 많이 났다고 하는 골짜기이다. 비룡상천의 명당 옛날부터 풍수설에 의하면 이 마을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영의정이 난다는 비룡상천(飛龍上天)의 형세라 대명지라고 한다. 경주 남쪽으로는 가장 명당이라고 알려져 비룡상천(飛龍上天)의 명당을 찾으려고 풍수들이 전국에서 몰려들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주민들은 마을의 북쪽을 막아주던 까치고개의 훼손으로 혈이 끊어졌다고 믿고 있다. 그 후로는 마을에 인물도 안 나고 어렵다고 한다. 여느마을이나 사정은 다 마찬가지이지만 이 마을에도 젊은이들이 없다고 한다. 65세 이상의 주민들이 대부분이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야 하지만 특별한 소득원이 없으니 그것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다. 벼농사 외에 소득원 개발이 절실하다고 한다. 한미FTA와 고령화로 농촌의 어려움은 갈수록 더할 텐데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라도 농촌 살리기를 위한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마을 인물로는 김상철(65·전 국정원 서기관), 최병식(65·예비역 공군 대령), 김인선(65·예비역 육군 중령), 김태홍(56·법무부 교정직 서기관), 박재식(51·육군 중령), 이종욱(38·부산 해경 경감) 등이 있다. 특히 김태홍 씨는 동제 경비를 10년이상 찬조하는 등 마을 일에 물심양면으로 협조해 주민들의 칭송을 받고 있다. 마을취재에 협조해주신 노곡1리 박효상 이장을 비롯한 주민들의 따뜻한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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