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건천 지나다가   이태수 매일신문 논설주간 꿈길에 보이던 맑은 눈의 청노루가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며칠째 황사. 보랏빛 산이 저만큼 물러선 자리에 위태로운 검은 바위, 그 아래 흐르던 물도, 돌던 구름도 말라붙고 멎었다. 한반도에 봄이 다시 오는 동안 시샘 심한 바람이 산수유꽃을 지우고 목월 선생이 그 그늘에 앉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끌어안던 목련꽃들을 무더기로 떨어뜨린다. 그래 그래 그래, 그 무뚝뚝한 듯 다정한 경상도의 사투리도 때 이른 가랑잎처럼 굴러다니고, 짓이겨지고, 내 마음의 아물지 않는 상처들도 짓이겨진다. 굴러다닌다. 봄이 와도 봄이 오지 않는 이 한반도의 청노루가 안 보이는 이 봄날에는, 시작노트 경주로 갈 때마다 목월 선생이 아름답게 노래했던 건천의 ‘보랏빛 석산’에 눈길이 머물곤 한다. 길가에 자동차를 세우고 한참 바라볼 때도 없지 않다. 지금은 그 산 아래서 언제나 선비처럼 꼿꼿한 이근식 선생이 시의 밭을 정갈하게 갈고 계셔서 더욱 그럴는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이 어지럽고, ‘심한 시샘’들 때문에 마음이 아플 때도 적지 않다. 어느 날 경주 가는 길 위에서 목월 선생의 시편들과 겹쳐져 마음에 비친 풍경, 그 안타까운 느낌 한 자락을 소박하게 떠올려보았다. 약  력 △경북 의성 출생(1947) △‘현대문학’으로 등단(74) △시집 ‘그림자의 그늘’, ‘우울한 비상의 꿈’, 등 9권 출간. △대구시문화상(문학부문-86),동서문학상(96) △한국가톨릭문학상(2000),천상병시문학상(2005) 수상. △대통령표창(2004),매일신문 문화부장·편집부국장·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대구한의대 국문과 겸임교수, 대구시인협회 회장 등을 지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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