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많은 명물 중 하나인 장군교는 시내와 형산강(서천)을 가로 지르는 유서깊은 다리이다. 경주에서 서울로, 그리고 안동과 강원도로 가는 구 철길위에 보행자를 위해 만든 장군교는 길이 390m에 폭 4m로 속이 확 트이는 산책로이며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특히 서산의 아름다운 봉우리 아미봉을 잇는 교량이라서 이른 아침부터 등산객들이 보이는 곳이다.   일제시대에 만들어져 민족의 역사와 함께한 슬픔을 간직한 다리 장군교는 80여년의 세월이 말해주듯 민족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유적지이다.   다리 끝자락에는 여래사라는 사찰이 있고 그 정상에 서면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와 그 풍광의 아름다움이 극치에 달한다.   왼쪽 신도로 야산 기슭엔 흥부공원이 있고 거기엔 삼국통일의 주역인 흥무왕 김유신 장균묘가 있어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지는 푸른산 송화산이 시내를 포근하게 안고 있다.   나는 거의 매일 한 두번씩 애기봉을 오르는데 안타까운 일을 발견한 것은 지난 늦가을이다. 등나무가 소나무나 참나무를 휘감아 멀쩡한 나무를 고사(枯死)시키는 것이었다.   등나무는 콩과의 활엽수로 줄기가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가며 봄에 자색 또는 흰꽃이 피는 관상용으로 정원에 심기도 하고 산과 들에 저절로 자라는 나무다.   생명력이 강하면서 주위에 있는 언덕이나 바위에 잘 걸치고 가까이에 있는 나무에 붙어 의지하며 사는 억척같은 식물이면서 감기게 되는 나무는 언젠가는 말라 죽고 만다.   함께 등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기는 잘 살면서 근처에 있는 다른 나무들을 죽이는 등나무를 자르기로 하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휴대용 접는 톱(saw)을 샀다.   야산을 오를때마다 운동삼아 톱질을 하면서 그 후의 상황도 눈여겨 보았다. 더러는 이미 몸통이 오래전부터 휘감겨 죽은 나무도 있었다. 높은 키를 따라 올라가며 못 살게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도 그런 현상이 주위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열심히 수고하여 떳떳하게 살지 못하고 남에게 의존하거나 남을 괴롭히며 사는 불량자나 조직폭력배들이 등나무와 비슷한 존재이다. 이런 것들은 올라오는 뿌리 가까운 쪽에 줄기만 잘라버려도 몸 전체가 죽고만다. 우리말에 발본색원(拔本塞源)이란 말이 있는데 "폐단의 근원을 아주 뽑아버리거나 완전히 없애버린다"는 뜻이다.     몇 달을 지켜보니 먼저 잘라버린 등나무 자체는 힘을 잃어 말라 죽었고 소나무는 청청한 대로 원상을 찾아 힘차게 자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도 조금만 신경을 쓴다면 우리 고유의 소나무가 아름다운 숲을 이루면서 잘 자라고 있을텐데하고 아쉬워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마음속에 여러가지의 욕구가 동시에 일어나 갈피를 잡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사정이나 상태, 일이 복잡하게 뒤얽혀 풀기 어려운 형편이나 견해나 의견 따위에 차이가 생겨 불화를 일으킬 때 갈등을 느낀다는 말을 쓴다. 바로 칡나무와 등나무에 비유된 말이다.   한자로 칡나무를 갈(葛)이라 하고 등나무의 등(藤)을 붙여 갈등이라고 하는 것은 두 나무의 성장과정이 너무도 흡사하기 때문이이다. 남에게 의지해 피를 빨아먹으면서 남을 못살게굴고 자신은 활기차게 자라는 습성이 같다. 갈등을 느끼는 사람의 심정을 이해하고 해결하려는 마음으로 오늘도 몇 그루의 등나무를 자르고 나니 오히려 내속이 더 시원하다. 약한 나무를 살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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