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차를 몰아 사적지 제26호인 원성왕릉(일명 괘릉)을 찾았다. 최근에 보물 제1427호로 지정된 ‘괘릉 석상 및 석주 일괄’의 조각상이 따스한 햇볕에 단잠을 깨고 있었다. 특히 눈에 띄는 양 사방으로 고개를 돌려 왕릉을 수호하는 사자상의 깜찍스럽고도 엄숙한 자태는 볼수록 정이 들고 어쩌면 저렇게 정적인 미와 동적인 미의 조화가 잘 이루어지게 만들었는지 감탄사가 그치질 않는다.
아마 왕릉 중에 미술사적인 측면에서 원성왕릉(괘릉)만큼 높은 점수를 받는 곳도 찾아보기가 어렵고 국내외 문화답사자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이유는 바로 왕릉 주위의 난간석과 12지신상 혼유석 그리고 네 마리 사자상과 석인상 4점과 화표석 2점의 주위환경과 잘 어울리는 공간배치와 아무리 보아도 부조화는 찾을 수가 없는 신라왕릉 조각예술의 완결품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내가 유독 괘릉의 사자상을 더욱 자주 찾는 이유는 동·서양 종교문화사 유적에서 단골 메뉴로 나오는 사자상의 의미에 대해 늘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기 때문이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 가도 사방을 지키는 사자석상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불교의 발생지인 인도의 불교유적에 있는 수많은 불탑에 가도 거의 단골 메뉴로 사자상이 조각되거나 아쇼카 석주의 상부에서 불법을 지키고 있다. 아마 불법과 왕권의 절대적인 수호신의 의미를 가지고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불교를 부흥시키고 다른나라에 까지 포교시킨 아쇼카 대왕의 사르나트 아쇼카 석주 4마리 사자상이 힌두교도가 전 국민의 80%인 현대 인도의 국가상징이라것으로 볼 때 고대나 현대나 사자석상이 가지는 종교나 문화사적 수호신의 의미가 얼마나 강한지 알 수가 있다.
그 유명한 산치대탑의 동서남북 토라나 조각을 자세히 보면 사방을 지키는 일반사자상도 있고 날개를 달고 사방을 지키는 사자석상도 볼 수가 있다.
그런데 신라천년(B.C57-A.D935)의 역사동안 수도로 있었던 서라벌에 비해, 서양의 로마제국(B.C27아우구스투스제정-A.D476서로마 멸망)도 수도였던 로마는 불과 500여년의 영광밖에 지키지 못했고, 동로마인 비잔틴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이 A.D395년에서 A.D1453년까지 거의 천년의 상처입은 영광을 유지했을 뿐이다.
그러나 비록 왕국은 아니지만 A.D697년 초대총독을 뽑고 11세기 십자군원정의 기지이기도 하고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로 1866년 이탈리왕국에 편입되기까지 베네치어공화국의 영광을 누린 척박한 습지대 바다위에 건설된 물의 도시 베네치아가 차라리 동양의 신라 서라벌과 같이 천년여의 오랜 영광을 누린 역사도시가 아닌가 싶다.
세익스피어가 지은 베니스의 상인으로도 잘 알려진 베네치아에 가면 기독교 성인의 대열에 올려진 성 마르코( 복음서를 쓴 네 분의 성인(마테오, 루가, 마르코, 요한)중 한 분)의 유해가 모셔진 성 마르코 성당이 있는데, 베네치아 공화국의 국가원수였던 프란체스코 포스카리가 성서에 오른 발을 올린 날개달린 사자상 앞에 무릎 꿇고 있는 조각상을 볼 수가 있다. 국가원수가 사자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면 이 사자는 원수보다도 더 높은 지위임을 알 수가 있고, 날개 달린 사자가 성서 위에 발을 올려 있는 것이 바로 복음서를 쓰고 기독교에서 예수님 12제자 다음으로 성인의 반열에 올려진 성 마르코를 비유한 조각상이다.
베네치아 상인이 이슬람의 공격위기에 처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한 수도원에 안치되었던 성 마르코의 유해를 베네치아로 옮겨온 이후로 성 마르코 성당은 기독교인의 성지중 하나가 되었다.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불사리를 가져와 창건한 통도사와, 복음서를 쓴 성 마르코의 유해를 모신 베네치아의 성마르코 성당은 비록 불교와 기독교의 종교차이에도 불구하고 양 종교의 성지라는 측면에선 유사하다고 할 수가 있다.
괘릉의 사자석상이나, 인도 아쇼카 석주의 사자상이나, 인도 산치대탑 토라나에 있는 날개달린 사자조각상이나, 베네치아 성 마르코 성당의 성서를 지키는 날개달린 사자상 등을 볼 때 동.서양의 종교나 문화사에서 밀림의 왕자 사자조각상이 주는 의미는 절대적인 권력 및 절대적인 믿음 혹은 불교나 기독교에서의 절대자의 가르침을 지키는 수호신의 의미로 종교문화조각예술가들에게 자주 애용되는 동물모델이라고 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