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친구·후배·동료·동지들 한 자리에 모여 축하
호박돌 김윤근 선생 정년퇴임
“몰라서 못하는 것은 부끄럽지 않지만 알고 행하지 못함은 부끄러움이라 생각하고, 아는 것을 행하여 부끄럽지 않게 살고,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고……부족한 나와 만남의 인연을 가졌던 제자들아 열심히 노력하여 좋은 운명으로 좋은 자리에서 또 다시 만나자”
배우고 익힘에 주저하지 않으셨고 가르치고 행함에 늘 최선을 다하셨던 김윤근 선생(62. 경주공고)이 정든 교정을 떠났다. 그러나 선생의 정년퇴임은 또 다른 선생만의 길이 있다는 것은 제자들과 선생을 존경하는 지인들은 모두 알고 있다.
“나 태어나 이 강산에 교사가 되어”를 제자들과 후배들에게 가슴깊이 심어준 김윤근 선생의 정년퇴임 잔치가 열린 지난 24일 오전 11시 30분.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마련한 잔치가 벌어진 경주공고 강당에는 교육계 어떤 고위직을 지낸 정년퇴임식보다도 아름답고 마음이 찡했다.
지난 71년 첫 부임지였던 내남중학교에서 처음 만났던 제자들, 한림야간학교 제자들, 선생의 카리스마를 가슴에 담고 살았던 셔블독서회 제자들, 선생과 동고동락을 함께하며 경주의 문화를 지켜온 신라문화동인회원들, 해직교사시절 선생과 함께했던 동지교사들 등등.
평교사로 교단을 떠나는 김 선생을 뵙고 싶어 천리길을 마다않고 한 걸음에 달려온 이들은 선생이 30여 년 동안 걸어온 과거 속으로 동행하며 아름다운 축하를 보냈다.
이날 김 선생의 퇴임잔치를 축하하기 위해 참석했던 제자와 친구, 후배, 동료, 동지들은 강당 무대 위에 선생이 마련한 전시회로 또 한 번 감동의 선물을 받았다.
김 선생은 경주어린이박물관, 경주청소년박물관학교, 셔블독서회, 학교 제자들과 함께했던 30여년간의 기록과 가족이야기 등을 눈부신 보석으로 다듬어 그를 따랐던 이들에게 선물했다. 마치 선생의 삶이 우리 인생의 보석 상자였던 것처럼.
정년퇴임하시는
김윤근 선생님께 드리는 글
‘참으로 오랜만에 졸업 앨범 속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졸업 한지 34년째 되나요, 촌스러워서 풋풋한 우리 친구들도 만날 수 있었고요. 열정으로 가득한 선생님의 눈빛이 얘들에게 무얼 해줄까 골똘한 생각에 잠겨 계셨지요.
……
내남중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은 첫 부임해 오신 새파란 총각이셨습니다. 선생님은 처음으로 학교 도서관을 열어 산과 들, 농사 밖에 안 보고 자란 우리들에게 다른 세상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학교 책을 다 본 친구들에게는 경주시립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주셨습니다.
……
실험도구가 없어서 시내의 학교에서 빌려서라도 체험적인 수업을 해 주셨습니다. 내남중학교에서는 처음으로 웅변대회나 백일장 같은 대외 행사에 저희들을 데리고 나가셨습니다. 겨울에 천룡이라는 문집을 처음 만드시느라 손가락이 동상 걸려서 푸르딩딩하게 죽어있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
시골이라 영화 한 편 볼 수 없었던 우리들에게 ‘벤허’라는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다 더 박진감 넘치고 흥미진진하게 몸으로 동영상해 주셨습니다 .
……
일요일에는 남산이나 경주 고적지에 데리고 다니면서 신라문화에 대한 현장 공부와 긍지를 심어주시는 등 백지같이 깨끗한 우리들 가슴 속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주셨습니다. 세상에 나가서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지 숙제를 심어주셨습니다.
……
졸업 후에도 오랫동안 선생님이 힘들고 어려운 일을 앞장서서 하시는 소식 듣고도 도움 한 번 못 드렸습니다. 전화조차도 자주 못 드려 늘 죄송하면서도 몸으로 실천하는 교육을 생각하면 저절로 고개가 수그러졌습니다. 가슴 뭉클하고 그득해졌습니다.
……
누구든 가슴 속에 우리 선생님 같은 은사를 품고 계신 분 그분은 행운입니다. 오늘 현직에서 퇴임하시지만 우리들 가슴에 영원히 퇴직하지 않으신 선생님. 늘 건강하십시오. 선생님 사랑합니다’
김광희(작가. 내남중학교 22회 졸업생)씨의 ‘아직도 못다 한 숙제’중에서.
김 선생은 지난 24일 사랑하고 아끼고 따르는 이들의 축하 속에 교단을 떠났지만 쉼 없이 거침없는 날개 짓하는 선생의 길은 끝이 없으리……